- 검색하면 자꾸 서예지 주연의 한국 호러 영화가 나오는데(이거 재밌어요!), 1999년에 나온 두기봉제 밀키웨이 스릴러물입니다. 속편은 2001년에 나왔구요. 당연히 스포일러는 없도록 하겠습니다.


 - 먼저 1편 이야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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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가 시작되면 병원에서 검진을 받는 유덕화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제 목숨이 길어야 4주 남았대요. 우리의 덕화씨는 쿨한 표정으로 진통제 4주분이나 챙겨달라 그러고 그 자리에서 약을 받아 (의약분업은!!?) 의사에게 작별을 고하죠. 그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상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장면이 바뀌면 또 다른 주인공 유청운이 나와요. 인질극이 벌어지는 은행 현장에 나타나 '내가 협상 전문가다~' 하고 들어가 쏘쿨하게 순식간에 상황을 해결하고 나온 후... 좀 어벙해 보이는 상사와 함께 살짝 개그를 선사하죠. 이렇게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보여준 후...

 유덕화가 갑자기 영문을 알 수 없는 좀 괴상한 인질극을 벌여서 유청운을 끌어 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프로페셔널 유청운씨는 유덕화에게 농락을 당하고 현장 체포에 실패하죠. 그래도 굴하지 않고 집요하게 유덕화를 쫓는 유청운!! 하지만 여전히 유덕화가 이런 일들을 저지르는 목적은 짐작도 가지 않는 가운데 유덕화는 도망가긴 커녕 유청운 주변을 알짱거리며 뭔가를 꾸미는데...



 -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나와서 능력 대결을 벌이는 차가운 도시 스릴러... 비슷한 겁니다. 홍콩 영화 뽕이 많이 남아 있는지라 뒤로 가면 좀 감상적인 분위기로 흐르지만 초중반까진 대략 그래요. 다만 대등한 전문가들이 치열하게 치고 받는 내용은 아니구요. '다 계획이 있는' 초고수 유덕화의 큰 그림 안에서 유청운이 나름 애를 써보지만 결과적으론 이용당하는 이야기... 에 가깝죠. 극중에선 유청운 역시 매우 유능하다고 강조되고 실제로 그에 걸맞는 활약으로 그 유능함을 입증하지만 애초에 그 유능함 자체가 유덕화 캐릭터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한 밑밥일 뿐이라는 것.


 뭐 좀 쉴드를 쳐주자면 극중에서 유청운은 애시당초 불리한 입장이니까요. 유덕화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가 거의 결말부에 다 가서야 드러나고 유청운은 그걸 짐작 조차 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상대의 계획을 앞질러갈 방도가 봉쇄되어 있고. 덤으로 동료들의 탁월한 무능함이 옵션으로 붙어 있습니다. 시종일관 개그 캐릭터로 활약하는 이 분 상사가 있는데 꽤 잘 쓰여진 캐릭터 같습니다. 덤덤한 이야기에서 활력소 역할도 하고, 동시에 유덕화의 압도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유청운의 캐릭터가 유능하다고 관객들을 설득하는 역할도 하는 거죠.



 - 이런 이야기에서 결국 제일 중요한 건 이 '능력자'가 저지르는 신묘한 범죄를 어떻게 설득력 있게 보여주느냐... 하는 건데. 그게 대체로 괜찮습니다. 현실에서 그런 상황이 가능할 거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영화 속에선 그럭저럭 가능할 것처럼 꾸며서 잘 보여줘요. '흔한 동네 훈남 같지만 현실에선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수준으로 잘 생긴 외모의 배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ㅋㅋ


 캐릭터 묘사도 좋습니다. 주기적으로 쿨럭쿨럭 피를 토하며 처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천재 범죄자 유덕화의 캐릭터는 그 분의 리즈 시절 미모 속에서 홍콩 느와르의 전형적 영웅으로 꽤 근사하게 완성되구요. 그를 뒤쫓는 집요한 형사 유청운의 캐릭터도 적당한 현실성을 부여하는 그 분의 비주얼(죄송합니다;)과 함께 꽤 매력적으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둘의 합이 좋아요. 막판에 둘이 홍콩 느와르의 전통대로 정서적 교감(!!)을 나누게되는 부분이 느끼하고 부담스럽지 않았던 건 유청운의 불독 같은 캐릭터 덕이었다고 봅니다. ㅋㅋㅋ



 - 전체적으로 가볍게 즐기기 좋은 범죄물입니다. 각본은 영리하게 잘 짜여져 있고 캐릭터도 좋구요.

 살벌한 악당들도 등장하지만 극중에 등장하는 폭력 장면은 또 별로 없어요. 그러면서 적당히 긴장감도 주고 관객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면서 런닝 타임 내내 빠르게 달려가는 이야기입니다. 쏴나이들의 뜨거운 우정!!! 과 파삭파삭하게 건조한 전문가들의 범죄 이야기... 의 중간 정도에서 균형을 잡는 이야기라는 건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겠지만 전 그냥 괜찮았구요.

 큰 야심 같은 건 없어서 보는 입장에서도 빅재미를 느끼긴 어렵지만 여러모로 날렵하게 잘 빠진 이야기입니다. 재밌게 잘 봤어요.



 + 여자 캐릭터가 솟아날 구멍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지만 딱 한 명 나름 비중 있는 캐릭터가 나오긴 합니다. 다만 그냥 유덕화 캐릭터에게 낭만적인 정조를 더해주기 위한 기능 이상은 없어요. 그 캐릭터를 맡은 배우는 나중에 정이건과 결혼했다는데 이 영화 속편에 정이건이 나오죠. ㅋㅋ

 


 - 그럼 이제 2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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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거리 소개는 생략합니다. 유덕화는 안 나와요. 설정상 다시 나올 수가 없는 분이라... 그래서 1편과 거의 비슷한 구도를 재현하는 가운데 유덕화의 자리를 정이건의 캐릭터가 대체하는 구성입니다. 그걸 그냥 대놓고 강조를 해요. 1편의 첫 장면들을 배우만 정이건으로 바꿔서 패러디하다시피 보여주는 장면들이 도입부에 나오거든요. 그리고 전개도 거의 같습니다. 바람처럼 나타난 수수께끼의 범죄자 정이건이 인질극을 벌여서 유청운을 불러들이고, 이후로 신묘한 계획과 능력들로 유청운을 희롱하듯 자신의 계획을 진전시키면서 둘이 교감도 나누고 뭐 그러는 이야기요.



 - 근데 정말 더럽게 재미가 없... (쿨럭;;)


 일단 전편과 구성이 지나칠 정도로 비슷한 가운데 정이건의 캐릭터가 격하게 비현실적이에요. 유덕화의 캐릭터가 영화적으로 능력이 과장된 전문가 캐릭터라면 2편의 정이건은 그냥 초능력자입니다. 하늘을 날고 손에서 불을 뿜는 건 아니지만 그냥 시종일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상태거든요. 그래서 긴장감 같은 게 아예 없는 건 기본이고 정이건이 뭔가 한 건씩 터뜨릴 때마다 실소가 나옵니다. 특히 마지막의 1:1 접선 장면 같은 건 정말 웃기라고 찍은 게 아닌가 의심하다 못 웃고 말았...

 그리고 그 와중에 이 캐릭터의 신비로움과 유능함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정이건에게 '늘, 언제나 함박웃음'을 요구한 것 같은데, 그래서 3배로 우습습니다. 진짜 그냥 계속 웃어요. 항상 웃고 늘 웃습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중에도 웃고 대화 중에도 웃고 그냥 화면에 잡힐 때면 늘 만면 미소 가득. 좀 미친 놈 같았어요(...)


 스토리도 정말 괴상합니다. 전편의 유덕화의 경우엔 후반쯤 가면 범행 동기도 나오고 목적도 나와요. 어떻게 타겟을 선정했고 왜 그랬는지 다 밝혀지면서 깔끔하게 이야기가 마무리가 되죠. 근데 정이건의 경우엔 그게 전혀 없습니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왜 타겟이 그들이었는지, 왜 주인공을 골랐는지 등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이 그냥 쌩뚱맞게 시작해서 그냥 끝나요. 그래서 마지막의 훈훈한 결말을 보고 나면 뭐랄까... '암전' 이라는 티비 시리즈의 크리스마스 특집 에피소드를 본 듯한 기분이 듭니다. 왜 멀쩡하게 현실적인 드라마인데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갑자기 쌩뚱맞게 초현실적이면서 유머러스한 에피소드 하나 만들어 넣는 거 있잖아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시청자와 눈을 마주치며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외쳐야할 것 같은 기분. =ㅅ=


 

 - 결론은 정말 간단합니다.

 정이건, 유청운의 열혈!! 팬만 보세요. 끝.




 + 정말 전편 대비 속편의 만듦새 꼬라지가 너무나 불가사의해서 전 영화를 보는 내내 '두기봉이 누군가에게 암전 속편을 만들지 않으면 삼족을 멸하겠다는 협박이라도 받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 중간에 진짜 불가사의한 구간이 있어요. 유청운과 정이건의 추격전인데요. 이게 90분짜리 영화에서 거의 15분 정도를 잡아 먹는 것 같습니다만. 그 내용이 진짜 레알 괴상한 코미디입니다. 인적 없는 홍콩의 밤거리를 함박웃음 정이건이 허허허 웃으며 뛰어서 도망가는 걸 유청운이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게 섯거라!!'고 외치며 따라가는 모습 걍 대략 15분 동안 보여주는 건데... 이렇게 기이한 볼거리는 정말 오랜만이었네요. 무슨 대단한 것이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너무 무의미한 걸 끝도 없이 계속해서 보여줘서요. 특히 마지막을 장식하는 자전거 추격씬은 범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로테스크한 체험이었어요. 아아 두기봉 당신은 도대체...;


 +++ 1편에도 2편에도 딱 한 번씩 아주 짧게 동성애 뉘앙스를 풍기는 개그씬이 나옵니다. 뭐 그렇게 티가 나거나 어떤 혐오 감성 같은 게 드러나는 건 아닙니다만. 두 편에 연달아 한 번씩 나오니 조금 신경이 쓰이더군요. 뭐 80~90년대 홍콩 영화들에 그런 류의 개그씬이 워낙 자주 나왔다 보니 그 연장선상이 아니었겠나 싶구요.


 ++++ 암튼 그래서 갑자기 두기봉 영화들에 꽂혔네요. 뒤져보니 제가 쓰는 iptv 서비스에는 대사건, 엑사일 같은 거랑 오래된 작품 중엔 흑사회... 뭐 이런 게 있는 것 같은데 또 이 분 영화들 중에 국내에서 구해서 볼 수 있는 것들 중 추천작이 뭐가 있을까요. 듀게에 이 양반 팬이 얼마나 계실진 모르겠지만 혹시나 싶어 도움을 요청해 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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