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진격의 거인을 봤습니다.

2022.02.06 00:50

woxn3 조회 수:430

  만화책 아니고 넷플릭스에서 애니로 봤어요. 특히 최근 시즌에 대한 평가가 좋은 것 같아서 최신 시리즈를 봤는데 묵직한 분위기가 크게 오글거리지 않고 괜찮더군요. 예전에 만화책으로 조금 봐서 오히려 중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던 나머지 시즌 1부터 정주행했습니다. 재미 없는 부분은 중간중간 넘기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만화책을 많이 봤었는지 꽤나 익숙하더라구요. 후반부에 시간이 갑자기 점프하는 부분이 있어서 최신 시리즈에서 내용상 간극이 크게 느껴졌는데 그냥 내용적으로 점프를 한 거더군요. 정주행을 했음에도 다소 어리둥절 해지기는 했지만 스토리텔링 테크닉상으로는 오히려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되기도 했어요. 처음 나왔을 땐 사람 잡아먹는 거인에 집중되어서 일본에서 흔하게 나오는 중2병 잔혹물 쯤으로 느껴져 시큰둥 했었고 엄청난 인기를 따라가지는 못했거든요. 지금도 이게 그렇게까지 크게 인기를 끌만한가는 잘 모르겠지만 재밌기는 했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정주행을 하니까 잔혹물보다는 2차대전 풍의 판타지 배경에 건담을 끼얹고 에반게리온식 중2병 감성을 더해준 걸로 보이네요.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느낌이 더욱 강화된 건지 거인들이 생물이라기보다는 에반게리온 같은 생체형 로봇이더라구요. 사람들이 허무하고 잔인하게 죽어나가는 건 에반게리온 감성이지만 점차 국가 내 세력 다툼이나 인간군상에 대한 묘사로 영역이 확대면서 분위기가 건담스러워집니다. '입체기동장치'를 타고 다니는 인간들은 스타파이터 같기도 하고 스파이더맨 같기도 하고요. 


  만화책 볼 당시에 크게 몰입하지 못했던 이유를 애니메이션을 보니 알겠더라고요. 주인공 녀석에게 도저히 몰입이 안되는 게 그 원인이었습니다. 무작정 고함을 치거나 무언가 거대한 비밀을 간직한 것 같은 어두운 기운을 풍기면서 영문 모를 짓들을 하고 다니는 건 일본 소년 만화의 스테레오타입이기는 하지만 얘는 화내는 거 말고는 유독 하는 일이 없더라구요. 다른 인물들도 얘를 중요인물보다는 위험하기는 한데 버리기는 아까운 위험한 물건 정도로 취급하고 주인공 본인도 그런 대접에 별 불만이 없는 것 같아보였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화를 내거나 아무 말도 안하고 자기 멋대로 주변에 민폐를 끼칠 땐 정말 한심해 보이더라구요. 주인공이 작품 내에서도 물건 취급을 받다보니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건 주변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상자의 시점을 정해주는 캐릭터가 확실치 않다보니 내내 좀 붕 떠서 흘러가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게 시큰둥해질 때 쯤 '이 세계에는 이런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면서 등장하는 역사적 과거가 간신히 흐름을 붙잡구요. 실제로는 주요인물들과 큰 관계는 없어서 그래서 어쩌라고 싶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중간중간 나오는 액션은 화려하고 멋집니다. 게다가 작화나 연출이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좋아져서 확실히 보는 맛 하나는 있는 애니메이션이었어요. 뒤로 갈수록 설정이 덧붙고 그게 좀 어색해서 시시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흥미롭게 풀어간 것 같기는 합니다. 


  시대를 풍미한 인기만큼이나 우익 논란이 꽤나 있었던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히 군국주의적 태도나 과거사를 포장하거나 하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건담스러운 반전물에 가깝고요. 주인공이 속한 인종집단은 일본인보다는 유대인에 가까운 묘사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반에 억울함의 정서가 흐르다 후반이 되어서 한 인물이 '선조들이 지은 죄를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하느냐'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는 장면을 보니 일본 젊은층이 생각하는 반전은 이정도 느낌인가보다 하는 생각은 들었네요. 설마하니 유대인과 일본인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애니메이션은 넷플릭스에 전편이 올라와 있어요. 좀 있으면 일부 시즌은 또 곧 내려간다고 합니다. 한국 내 배급사가 시즌마다 다른 건지 신체절단 부분에서 블러가 생겼다 없어졌다, 이름도 왔다갔다 해요. 이런 게 작지만 좀 거북하기는 했어요. 시즌2는 극장판으로 올라와 있는데 내용을 확인하는 건 큰 어려움은 없구요. 마지막 시즌이 매주 한 편 씩 공개되는 중입니다. 이제 2-3편 쯤 남은 것 같네요. 어쨌거나 그럭저럭 몰입해서 볼 수 있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어요. 마지막 시즌의 작화 품질은 매우 좋은 수준이고 시즌이 거듭될수록 점점 좋아지는 3D 작화를 보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원래 마지막 시즌이 끝나면 감상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기계식 키보드를 처음 샀더니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제대로 타이핑 해보고 싶어서 조금 빨리 올리게 되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94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654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6664
118672 선별진료소 방문 [3] 메피스토 2022.02.06 398
118671 <축구>참 힘빠지네요 daviddain 2022.02.06 397
118670 한국사회에서의 페미니즘 [8] 적당히살자 2022.02.06 879
118669 서울 산책 잡담...... [2] 안유미 2022.02.06 424
118668 어제 간만에 서점 가보니 [11] 어디로갈까 2022.02.06 684
118667 일회용 사랑 한국, 마스크 살균 재사용 위험? 주방 노동자에 입스크를 허용하라 [21] Tomof 2022.02.06 692
118666 비트코인, 페미니즘, 사회주의 [15] catgotmy 2022.02.06 676
118665 텀블러를 샀습니다. [11] 적당히살자 2022.02.06 504
118664 외국어 학습에 대해 [4] catgotmy 2022.02.06 338
118663 괴롭힘(사이버 불링)에 대하여 [5] 예상수 2022.02.06 421
118662 올림픽 이야기 몇개 [1] 사팍 2022.02.06 245
118661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한복 논란 관련 [7] soboo 2022.02.06 860
» 뒤늦게 진격의 거인을 봤습니다. [6] woxn3 2022.02.06 430
118659 여기 듀나게시판하고 딴지일보 비교 [2] 채찬 2022.02.06 895
118658 <지금 우리 학교는> 7,8,9화, K-대학만능주의, 블루투스 스피커가 없다고..? 약 스포 [4] Tomof 2022.02.06 350
118657 [웨이브바낭] '더 와이어' 시즌 2를 봤습니다 [8] 로이배티 2022.02.05 572
118656 듀란듀란 노래에서 한국말. Rock & Roll Hall of fame 후보소식 [4] dora 2022.02.05 407
118655 Coherence 평행이론: 도플갱어살인 [7] dora 2022.02.05 269
118654 [동계올림픽] 여러분 스노보드 경기 봐요(내일 오전) [1] 쏘맥 2022.02.05 184
118653 일일 코로나 확진자 3만6천명 [2] 메피스토 2022.02.05 59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