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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 갔다가 싸길래... 한권 샀습니다. 요새 젊은이들(?)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죠. 맨 처음 펼친 부분이 임솔아 작가의 작품이라는 걸 알고 조금 놀랐습니다. 저는 책을 안읽어서 여기 나온 작가들을 거의 모르는데, 그나마 알고 있는 작가가 영화 [최선의 삶]의 원작자인 임솔아 작가였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이 작가에 대한 독자로서의 인연이 있는 건 아닌지 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들어 다른 작가들과의 연도 맺어지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초파리 키우기]라는 제목에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초파리라는 존재일 것입니다. 초파리를 먹이로 하는 동물을 키우지 않는 이상 초파리는 키우는 생물이 아니라 내쫓아야하는 생물에 더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주인공인 원영은 초파리를 키우려합니다. 그는 초파리를 살아있어서 예쁘다고 합니다.


원영은 별다른 전문적 직업의 경험 없이 중년 여성들이 흔하게 내몰리는 일자리에서 돈을 벌며 살아온 여성입니다. 소설은 그의 직업 이동을 다소 섬뜩하게 표현합니다. 많은 이들이 경험없이 편할 거라고 오해하는 '콜센터' 직종에서 원영은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이후 같이 일하던 동료의 추천으로 대학 연구소에서 초파리를 배양하는 직업을 갖게 됩니다. 그는 흰 가운을 입는 것, 그 누구도 자신에게 막되고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것, 일이 규칙적이고 고되지는 않은 것 등에 만족합니다. 중년 여성의 생존과 자기 부양은 생각보다 훨씬 가혹한 중노동으로 채워져있음을 소설은 암시합니다. 그 연구소에서 초파리를 데려온 것은 단순한 애정이 아니겠지요. 바닷가를 가서 소라껍질을 주워오듯, 그 초파리들은 원영이 누릴 수 있었던 존중과 자유에 대한 증거물일지도 모릅니다.


다소 심심하고 지루하게 소설이 진행되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입니다. 대학 연구소는 재정 문제로 문을 닫고 원영은 집에서 주부의 삶을 이어나갑니다. 이후 원영은 머리카락이 갑자기 뭉텅이로 빠지기 시작합니다. 소화력도 급격히 떨어져서 죽이나 아주 가벼운 음식들만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체력도 엄청나게 떨어지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게 됩니다. 읽는 누구라도 그 연구소를 의심할 수 밖에 없지만 원영은 그 때의 좋은 기억을 쉽게 놓진 못합니다. 중년 여성의 신체가 단순한 개인적 터전에서 한 사회와 기업이 휩쓸고 간 계급적 착취의 결과물로 바뀔 때 우리는 개인의 나약함을 통해 비로서 사회의 지독함을 상기하게 됩니다. 초파리를 쓰고 버리듯, 어떤 사람들은 그냥 쓰고 버려집니다.


자신의 친구를 칼로 찔러버리는 소설을 쓴 작가답게 임솔아 작가의 이번 작품이 그리는 고통도 굉장했습니다. 원영이 이 전에는 무리없이 해왔던 것들을 이제는 완전히 하지 못하게 되는 걸 건조하게 묘사하면서 문장의 힘이란 상대를 어떤 거리에서 보는지 결정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 속에 또 다른 등장인물로 나오는 원영의 딸 지유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면서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저 섬뜩해하고 당혹스러워할 뿐입니다. 육체적 불능을 그저 바라보면서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어느 부분에 무관심한지 좀 돌이켜보게 되더군요. 가장 가까이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산재 사망자들이 있을 것이고 다른 곳에서는 조리사들의 산재가 있을 것이고... 작품은 원영이 아픈 이유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그것이 노화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급속한 노화는 자연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며 어딘가에서 혹사당한 원영의 삶에 뒤따르는 부채일 것입니다.


원영은 소설가인 지유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유는 그 이야기를 선뜻 쓰지 못합니다. 원영의 이야기를 행복한 허구로 꾸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논픽션은 작가의 상상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원영의 몸은 낫지 않고 남은 삶을 그저 괴로워하다가 죽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설은 지유가 억지로 써낸듯한 소설 속 소설로 끝을 냅니다. 원영은 로얄젤리를 통해 건강해졌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무책임하게까지 느껴지는, '행복하게 살았다'는 그 문장 속에서 발버둥 비슷한 투쟁심과 어머니의 현실을 감히 꾸며낼 수 없다는 진실의 무력함이 묻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 누구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갑작스러운 그 해피엔딩 앞에서 독자인 저는 떨궈진 펜을 상상합니다. 세계는 이렇게나 무섭고 우리 대다수는 운이 좋게도 아직 밟히지 않은 개미로 분주하게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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