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주] 넷플릭스 봤습니다

2022.07.12 15:25

Sonny 조회 수: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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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고 프롤로그 격의 영상을 보여주는 동안 저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주인공 루오난은 자신이 어떤 종교적 금기를 건드렸다면서 카메라로 자신을 찍으면서 그 영상을 볼 사람들에게 말을 겁니다. 이렇게 모큐멘터리 장르를 선언하는 듯한 영화는 뜬금없는 편집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부모님들도 자신이 받은 저주에 휘말렸다면서, 무려 자기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영상을 직접 틀어서 보여줍니다. 내가 받은 저주를 설명하겠다, 나의 부모님도 이 저주 때문에 죽었다, 내 부모님이 죽은 영상을 보여주겠다. 현실의 인간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이 괴상한 선택을 영화는 천연덕스럽게 실천합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생각하면 루오난은 미친 여자입니다. 세상 어떤 자식이 자기 부모가 죽은 영상을 간직하고 있다가 그걸 모르는 사람 다수에게 온라인으로 보여주나요. 


이걸 설명하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영화가 파운드 푸티지라는 장르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촬영을 위한 카메라로 찍은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현실적 용도의 CCTV나 개인용 핸드폰으로 찍힌 영상으로 어떤 끔찍한 장면들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보는 사람들은 영화라는 허구를 보는 게 아니라, 영화 바깥의 리얼한 장면을 목격한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주]는 이어서 경찰서 CCTV를 통해 저주받은 영상을 본 경찰들이 총으로 자살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 영상을 어떻게 구했는가. 혹은 그 영상을 지금 틀어주는 것은 누구이며 보는 것은 누구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영화는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끔찍한 장면을 굉장히 생생하게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만이 목적이니까요.


영화로 틀고 있지만 영화가 아니라 실제다, 라고 말할 때 그 설득력은 이 파운드 푸티지라는 형식에서 비롯됩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현장을 꾸미고 배우를 기용해서 허구를 실제처럼 찍는다는 작업의 전제가 있습니다. 이 작업과정을 뒤집어버리면 어떨까요. 여러 사람이 찍은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찍었다, 영화촬영 카메라가 아니라 조악한 개인용 카메라로 찍었다, 시나리오를 써서 허구를 찍는 게 아니라 실제 일어나는 현상을 찍었다, 편집과 믹싱을 거친 게 아니라 찍은 날 것 그대로의 거친 영상만 남겼다... 프로페셔널리즘을 뒤집어서 아마츄어리즘을 찍으면 리얼리티가 생긴다는 이 조건이 파운드 푸티지의 규칙입니다. 문제는 [블레어 위치] 이후로 세상의 모든 파운드 푸티지 장르는 다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입니다. 장르의 시초격으로 불리는 이 영화는 '영화과 학생들이 실종되었고 우리는 그 영상만을 찾아냈다'는 마케팅을 하면서 이 모든 영상이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 일을 담은 것처럼 홍보했으니까요. 이건 딱 한번만 써먹을 수 있는 영화적 기만이었습니다. (20년이 거의 넘은 지금 와서 [블레어 위치]를 보면 더 이상 놀랍지 않습니다) 그래서 파운드 푸티지는 영화적 장르가 되었기 때문에 딱히 무슨 사실성을 확보하기는 어렵습니다. 역동적인 현장감을 담을 수는 있지만요.


그러니까 영화를 전체적으로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빌려 찍는다는 건 역으로 영화의 리얼리티를 떨어트리는 일이 됩니다. 영화 속의 파운드 푸티지가 실제로 찍힌 영상일 리가 없으니까요. 이 장르는 얼핏 보면 생생해보이지만 '누가, 왜, 이 상황에서 저렇게 열심히 무언가를 찍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들게 만듭니다. 영상의 형식이 담고 있는 생동감이, 그 영상이 만들어진 과정과 목적을 계속해서 상기시키기 때문에 보는 사람은 영화 바깥으로 계속 밀려납니다. 그래서 잘만든 파운드 푸티지 영화들은 나름의 변명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R.E.C]같은 경우 카메라맨과 인터뷰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건물 안에 갇혔습니다. 이들의 직업적 소명이 뭔가를 찍고 남기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은 계속 찍습니다. 그게 아니면 딱히 할 일도 없습니다. 이렇게 영화 설정 안에 파운드 푸티지의 형식에 대한 근거가 이미 마련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는 어떨까요.


경찰들이 죽는 영상을 보여주고 난 뒤 영화 속에서 주오란은 이 기호를 외워달라고 합니다. 이 때 재미있는 건 영화적 편집으로 화면에 바로 그 기호가 뜬다는 것입니다. 이 영상은 파운드 푸티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영화적 편집이 가능할까요? 영화 외부에서 편집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 파운드 푸티지의 형식 안에서 벌어집니다. 만일 이 영화의 장르를 좀 더 생각해봤다면 이런 식으로 진행을 할 리가 없습니다. 루오란이 지금 자기 카메라를 통해서 찍고 있는 화면을 송출하고 있는 거니까, 루오란이 그 기호를 종이에 그려서 자기 카메라에 비추면 됩니다. 그렇게 해야 이 영화의 장르가 성립이 됩니다. 놀랍게도 영화는 이 기호를 보여주고 난 다음에 자막을 띄워주듯이 '화불수일 심살무모'라는 문자를 화면에 띄워놓습니다. 이것도 루오란이 종이에 써서 보여줘야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합니다. 그냥 영화 화면이 보여줘버립니다. 바로 뒤이어서 화불수일 심살무로를 외우는 수많은 사운드들이 영화에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삽입됩니다. 이것 역시 루오란이 컴퓨터든 핸드폰이든 그 소리를 직접 틀어서 보여줘야 파운드 푸티지가 되고 모큐멘터리가 됩니다. 이런 걸 봤을 때 [주]는 장르적 완성도를 별로 신경쓰지 않는 영화입니다.


영화 전체가 이 무성의한 프롤로그의 형식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영화는 실제로 찍은 영상들을 보여주고 있는 태도를 취합니다. 그런데, 영화가 놀랍게도 플래시백을 합니다. 보는 사람의 시적이 과거 시간대로 날아가버립니다. 허구적 영화에서라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건 파운드 푸티지를 빌려온 모큐멘터리 아닙니까? 영화 전체가 이런 식입니다. 자기가 어떤 장르를 찍고 있는지 전혀 생각이 없습니다. 있는 건 딱 하나입니다. 사람이 피를 흘리고 인체가 박살나는 장면들을 눈 앞에서 직접 찍은 것처럼 보여주겠다는 원초적 욕망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다른 것들이 설명이 안됩니다. 영화를 보면서 모두가 짜증을 냈을 장면을 떠올려봅시다. 루오난은 6년전에 미신타파 특공대 영상을 찍는 영상팀이었습니다. 안경을 쓴 전위안과, 그나마 상식적인 리둥과 함께 셋이서 팀을 꾸려 뭔가를 찍으러갑니다. 이후 전위안은 계속해서 뭔가를 찍으러가자고 말합니다. 영화는 이 인물이 왜 이렇게 뭔가를 찍고자 하며 금기를 가볍게 여기는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기능적으로 금기를 어기는 트리거 역할이니까요. 이 영화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전위안이란 인물이 왜 그렇게 동굴 안을 찍고자 하는지,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지 어떤 이유를 붙여놓았을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모든 인물들이 어떤 장면을 찍어서 송출하기 위한 자동인형 같은 존재들입니다. 인간들이 움직이는데 그 동기가 현실적이지 않으니 상황에 전혀 몰입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영화는 루오란이 왜 셀프카메라를 찍고 있는지 마지막에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게 이 영화의 반전트릭입니다. 이 반전이 짧은 언어적 텍스트에서라면 텍스트를 감상하는 행위 자체가 작품 안에서 밖으로까지 전염된다는 상상을 훨씬 더 강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이야기의 장르가 영화라는 것입니다. 영화는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대단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되고 뭔가를 보여주는 순서도 중요합니다. 영화 내내 영화의 내적인 개연성을 마련해놓지 않고 기능적 캐릭터들이 사고를 친다거나 자기희생의 리스크를 아무렇지 않게 지는 식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이 영화의 현실성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한 장면을 생각해봅시다. 루오난이 자기 딸 둬둬의 저주를 치유하기 위해 어떤 도사님들에게 가서 일종의 처방을 받습니다. 둬둬에게 일주일간 물도 먹을 것도 주지말라고 합니다. 이 가혹한 금기를 듣는 순간 무조건 깨지겠구나 하는 걸 관객은 당연히 압니다. 그 다음 도사님이 설명합니다. 이게 실패하면 자기들의 목숨이 위험해진다고. 여기서 질문. 이 도사님들은 왜 굳이 목숨을 걸고 실패하기 딱 좋은 저주처방을 해주는 건가요. 영화는 이걸 설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금기가 실패한 다음 찾아온 이들의 끔찍한 죽음을 담는 것만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파운드 푸티지라는 장르적 효과만을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별 다른 의미나 공포를 자아내지 못합니다. 역으로 [주]는 넷플릭스가 어떤 영화들을 만들고 있는지 그 경향성을 생각해보게 하는 재료입니다. 현실의 매체들이 차마 담지 못하는 재료를, 리얼하게 구현해내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지금 세태가 추구하는 영상의 재미일까요. 뭔가 굉장한 것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려하지만 그 만듦새는 조악하기 짝이 없는 결과물들을 보면서 좀 복잡해집니다. 윤리적으로도 거슬리지만 재미조차도 없는 이 영상이 어떻게 보면 넷플릭스 세대의 저주인 것 같습니다. 히치콕이 이미 [이창]에서 다 이야기한 것을 이렇게 저렴하게 동어반복하는 걸 보자니 씁쓸합니다. 눈 앞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는데 누가 막 죽어나가고 신체가 으깨져나가는 게 "쩌니까", 그게 전부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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