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윅4에 대해서

2023.06.11 12:50

skelington 조회 수: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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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로의 원인


존윅4가 지난 금요일 저녁에 쿠팡에서 풀렸습니다.

불금, 열시쯤 무알콜 맥주캔 하나를 꺼내 놓고 엄청 기대하며 시청을 하다가 30분도 안되서 잠들었습니다.

토요일, ‘이번 한주 참 피곤했지..’하며 아홉시쯤 다시 텐구부대의 습격 장면을 보다가 또 잠이 들었습니다. 사나다 히로유키의 생사를 저는 지금도 모릅니다.

전날 9시부터 꿀잠을 잔 탓에 일요일 아침에 알람도 없이 6시에 일어났습니다. 빈 속에 에스프레소 한 삿을 때리며 생각에 잠깁니다.

‘뭐지? 몸이 안좋나?’

컨디션 최상에 각성 상태로 다시 남은 영화를 시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피곤함의 정체를 찾아냈습니다.

“범인은 바로 너닷!”


존윅 1편의 결말 이후 2, 3편은 바로 시간적으로 연결되는 사건들입니다. 2편의 시작부터 전편에서 도난당한 차를 훔쳐오고, 의뢰를 거절하다 집이 폭발하고... 3편도 전편의 파문의 결과로 킬러 동료들의 습격을 받으면서 시작하고 마지막엔 총을 맞고 높은 건물에서 떨어집니다. 그리고 4편에선 킹의 도움으로 지하에서 겨우 휴식을 취하는 오프닝으로 시작합니다. 주먹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나무판을 두들기는 그런 휴식말입니다.

“Somebody get this man 선두!“


생각만해도 피곤한 스토리에, 그 연기자가 피곤함 연기의 마에스트로 키아누 리브스입니다. 그는 마이에미 최고급 별장의 최고급 침대에서 푹 자고 일어나도, 의사 처방된 프로포폴 맞고 일어나서도 곧바로 피곤에 찌든 연기를 메소드로 할 사람입니다. 평범하게 길을 걷고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차문을 여는 연기조차 어색하지만 피로한 얼굴 표정을 짓고 피곤에 지친 몸을 끌고 힘겹게 발걸음을 떼는 연기는 보는 사람도 공진단 짓게 하고 싶어하는 피곤함의 화신 그 자체인 존재입니다.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도 문제이지만 초반 오사카 컨티넨탈의 텐구부대 장면은 관람 포기를 유발하는 가장 큰 허들입니다.

철갑으로 온몸을 감싼 후작의 특수부대에게 더 이상 권총으로는 상대가 어렵다는 무력감을 주는 위기장면도 아니고 여전히 존윅은 CQC와 방탄수트로 꾸역꾸역 적들을 쓰러뜨립니다. 좀 더 많은 탄환과 시간, 또 더 많은 그라운드 기술을 이용해서 말이죠.

눕거나 굴러서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기술이 키 크고 팔다리가 긴 그에게 진짜 효과적인건지는 격투기를 1도 모르는 제가 뭐라할 수는 없지만 되게 우스꽝스러울 때가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그냥 앞의 피로감 이론과 연결시켜 사실은 잠시라도 좀 편히 눕고 싶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쌍절곤을 두손으로 휘두르면 분명 더 타격이 클겁니다. 때린 후 목에 두르면 허리춤에 끼운 것보다 손쉽게 다시 쓸 수 있겠구요.

멋지지 않다는 아주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지만요.


2. 구조적 모순


시간을 되돌려서 8,90년대의 기관총을 갈기고 카체이스를 하던 헐리우드에 1998년 매트릭스와 원화평이 제대로된 액션 코레오그라피 연출과 배우들의 액션훈련같은 걸 정립시켰다면, 2천년대 중반의 본 시리즈는 극도로 짧은 컷 편집을 통해 발차기 하나 못하는 일반 연기자들도 액션히어로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멧 데이먼(본 시리즈), 리암 니슨(테이큰 시리즈), 덴젤 워싱턴(이퀄라이저 시리즈)같은 정극 배우나 늙은 배우, 혹은 밀라 요보비치(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같은 여성 배우들도 엄청난 액션훈련 없이 그럴듯한 권격액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4년 존 윅은 십수년간 헐리우드를 지배했던 본 아이덴티티 스타일과 정반대의 액션 연출을 보여주며 액션영화의 새 시대를 엽니다.

http://www.djuna.kr/xe/board/13179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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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레지던트 이블 마지막편 보고 쓴 글인데 그 시절의 액션씬 컷에 비교하면 존 윅의 그것은 영원에 가까운 롱테이크입니다.

엄청난 수준의 액션훈련과 연출, 그리고 리허설을 통해 만들어진 롱테이크의 액션씬은 분명 저를 비롯한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업계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2000년대 이후 헐리우드의 액션영화란건 주먹질과 발차기를 하는 홍콩식의 권격영화가 되었고 본 스타일의 연출로 누구나 액션배우가 되는 세상이 되었는데 새롭게 트렌드가 된 롱테이크 액션은 앞선 환경과 충돌한다는 점이에요.

넷플릭스 영화로 나왔던 케이트(2021)는 그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듯한 정권 지르기조차 못하는 엘리자벳 윈스테드가 열댓번의 액션 합을 지속하는 존 윅 스타일의 액션씬을 연기합니다.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한 끔찍한 재앙같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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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쿠팡에 감사


새롭게 합류한 견자단은 로그원에 이어 또 맹인으로 나오는데 생각해보면 나름 합리적인 핸디캡인것 같습니다.

오른손엔 권총, 왼손엔 칼을 쥐고 있는 눈뜬 견자단을 무슨 수로 이기겠어요?


러닝타임이 너무 긴 탓에 중복되는 액션이 많고 컷과 편집으로 충분히 더 좋은 리듬감을 줄 수 있는 장면들이 있어보입니다.

롱 테이크 액션이란 건 액션영화의 역사 속에서 나온 신선한 반작용일뿐 이 시리즈가 러닝타임 내내 지켜야 할 황금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좀 더 신선하고 완성도 있는 액션 연출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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