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분위기도 못 맞추고, 많이들 지겨우시겠지만.. 마지막으로 글 남깁니다.

 

대화상대가 되어 주신 24601님께 감사 드리고

아래의 내용을 님과 (개인적으로) 끝까지 싸워보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이슈에 대해 제가 갖고 있었으나 충분히 밝히지 못했던 생각을 정리하는 것으로 수용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4601. 뒤늦게 답글 답니다. 말씀하신 마지막 문장, K의 글에 대한 판단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그 이견이 '존중'할 만한 것인지에 대해 판단하기 위해선 제가 위 댓글들에서 지적했던 여러가지 전제 조건들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판단과 고민 없이 해당 글만 놓고 '존중' 운운하는 것은 해당 쟁점의 중요성을 놓고 봤을 때 너무 섣부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4601/ (인용)

 

.. 취지에 충분히 동의하지만 보기에 따라서 정반대 입장인 것 같기도 하네요.

 

1. 무죄추정의 원칙, 입증 책임, 1종 오류, 2종 오류

 

제가 처음부터 일관되게 유지한 입장은 <텍스트 K>가 명백한 인종차별인지 판단하기 위해선

24601님이 위 댓글들에서 지적했던 여러 가지 전제조건들” + 다른 분들이 얘기한 조건들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죠. 살펴볼 필요 없이 <텍스트 K>가 인종차별이라고 단정지었죠.

말하자면, ‘무죄추정의 원칙이 아니라, ‘유죄추정의 원칙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해당 쟁점의 중요성에 따라 무죄추정이 유죄추정으로 바뀌지 않고,

해당 쟁점의 중요성에 따라 입증책임이 전환되는 것이 아닙니다.

김길태 같은 흉악범에 대해서도 입증책임은 검찰에 있습니다.

형사사건은 무죄추정이 원칙이고, 입증책임이 기소자에게 있습니다.

사회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 범죄(증오 범죄)도 마찬가지에요.

 

왜 그러냐?

사실 유죄인 사람에게 무죄를 주는 오류와

사실 무죄인 사람에게 유죄를 주는 오류 중

후자를 훨씬 더 심각한 오류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나쁜 놈이 탈없이 멀쩡하게 걸어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심지어 그 가능성을 믿고, 그 틈을 의도적으로 악용해서 나쁜 짓을 하는 놈이 생기더라도,

그 위험(대가)을 감수하고라도 무죄한 사람을 단죄하는 일은 최대한 없어야겠다는 원칙입니다.

더 일반화해서 말하자면 억울하게 단죄받는 것을 최대한 줄여야겠다는 원칙입니다.

유죄는 유죄이되 과실에 비해 과도한 처벌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으니까요.

 

이것이 얼마나 얼마나 중요한 원칙인데, 사람들이 이 원칙을 가볍게 보는 것 같아 놀랐습니다.

텍스트를 인종 차별 텍스트라고 규정하는 것은 텍스트 저자를 인종 차별 주의자로 단죄하는 것이죠.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죠.

인터넷 게시판에서 매우 매우 중요한 원칙이 대세에 의해 쉽게 무시되는 현상은 다반사인 정도를 넘어

매우 매우 중요한 원칙이 끝까지 지켜지는 경우가 거의 없는 정도이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훌륭한 명분에 지젝까지 인용되며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 놀랍다면 놀랍겠지만

그 역시도 사실은 흔한 장면이 아니었나..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24601. 그러니까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은 지문관리가 안 되기 때문인지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폭력적이야"라는 발화가 없었기 때문에 텍스트K는 인종차별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신거죠? “그런데 이토록 자세히 문장을 분해하고 변형하며 논리적 근거를 찾으시는 분이 하는 주장으로는 부족해보입니다. 24601/ (인용)

 

요컨대

<텍스트 K> 를 인종차별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논리적 근거를 제시해야 할 책임이 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은 지문관리가 안 되기 때문인지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폭력적이야"라는 발화 없이 

“외국인은 내국인처럼 신상 정보가 등록되어 있지 않아서 범죄전단에 사진도 없다. 그러니까 외국인도 내국인처럼 관리하자라고 말하는 

텍스트가 (명백히) 인종차별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할 책임이 24601님에게 있는 것이죠.

 

<텍스트 K>이들이불법체류자신분이기에 경찰에 의한 검거가 어려운지 등에 대해 따져 묻지않았다는 것이 

인종차별의 명백한 근거라고 주장하시는 것이라면,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존중할 수밖에 없겠다고 말씀 드린 것이고요.

 

(<텍스트 K> 를 인종차별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제가 텍스트를 분해 변형한 목적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논증 기준에서는 불가능한 작업입니다. <텍스트 K> 가 명백히 인종차별적이라는 입증도 불가능한 것은 마찬가지고요

  이것이 가능하려면 먼저 인종차별의 기준이 명백하게 정의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텍스트를 대조 분석한 목적은 인종차별의 다양한 기준 중 제 포지션을 구체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존중할 가치가 없다는 얘기는 사실상 이견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되겠죠.)

 

무죄추정의 원칙을 타협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철저하게 보장되지 않으면 가장 불비례적으로 타격을 입는 것은 사회적 소수자입니다.

사회적 소수자일수록 억울하게 피고의 자리에 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현실로 인정한다면요.

(무죄추정과 유죄추정이 법적인 맥락에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원칙 간의 충돌은 편견과 차별만큼이나 법원과 일상에서 보편적인 쟁점입니다.)

 

따라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원칙대로 수호(준수)하면서

그 원칙이 사회적 소수자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지 않도록 싸우는 것이 옳은 방향이지

사회적 소수자와 관련된 사안은 유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딜지라도 그렇게 가는 게 맞겠죠”.

명백한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확신에 찬 나머지 이 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2. 온라인의 피상성 (?)

 

2-1.

인터넷 게시판이라서 타인을 (현실에서보다) 쉽게 단죄해야 한다, 해도 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놀랍죠.

별 생각 없이 쉽게 쓴 글이니 쉽게 단죄해도 된다는 말은

단죄도 사실 별 생각 없는, 기계적 단죄라는 것을 모여줄 뿐이죠.

겉으로는 대단한 명분을 얘기하는지 몰라도요.

 

온라인이라서 쉽게 단죄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온라인 편견 공격의 당위와 예방 효과에 대해서 강력한 믿음을 갖고 있는 현상도 재미있네요.

 

 

2-2.

인터넷 게시판의 편견, 편견 공격이 현실의 편견, 편견 공격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믿는다면

인터넷 게시판의 무죄추정, 유죄추정이 현실의 무죄추정, 유죄추정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는 것도 믿는 것이 합리적이겠죠.

 

2-3.

/24601. 듀게는 경찰서도, 검찰도, 재판정도 아닙니다. 잘못된 의견에 대한 항의 자체가 '처벌'을 요구하는 것인가요? 24601/ (인용)

 

네 맞습니다. 동의합니다.

제가 24601님께 묻고 싶은 것은, 그렇다면, 경찰서, 검찰, 재판정의 맥락에서 처벌을 고려하는 상황이라면

 <텍스트 K> 가 명백한 인종차별인지에 대해 다른 판단을 하시겠냐는 질문입니다.

 

만약 YES 라면,

저와 24601님 간의 의견 차이는 어떤 의미에서

인종차별의 기준에 대한 차이가 아니라

온라인 글쓰기/글읽기 기준에 대한 차이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우

저는 온라인 글쓰기에 의한 차별과 오프라인에 의한 차별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고

24601님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되겠죠.

상황에 따라 적절한 기준이 달라질 수 있으니 어느 쪽이 좋은지는 논증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NO 라면,

24601님은 많은 분들과 함께 이미 온라인에서의 처벌을 단행하셨고, 나아가

현실에서도 처벌을 요구하시겠죠. 다른 많은 분들도요.

 

그런데 NO라면 듀게가 경찰서도, 검찰도, 재판정도 아니라는 얘기를 하실 필요도 없었겠죠.

그래서 궁금합니다.

24601님이 그런 얘기를 하신 것으로 보아 인종차별의 기준에 대해 저와 의견이 같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편견(차별)에 대해 

경찰서검찰재판정, 처벌의 맥락에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머지 않아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더 정확히는,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질문들이 단순히 관념적인 논리 싸움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 진영 논리

 

전체적으로 진영 논리가 너무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좀 무섭군요.

 

내가 옳은 (더 정확하게는 옳다고 믿는) 결론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조중동식 왜곡을 해도 OK.

일단, 나와 같은 결론을 말하고 있다면 OK.

나와 다른 결론을 말하고 있으면 무시하거나, 최대한 반대.

 

말하자면, ‘의사소통 합리성은 찾아 보기 어렵고, ‘신념의 재확인까지가 한계인 것 같아요.

 

원래 한국 사회의 담론과 논쟁이 선명성을 전유한 독선적 진보(?)’와 꼴통 간의 평행선 긋기이니

듀게라고 뭐 그리 다르겠습니까만

조중동식 왜곡을 행하고도 당당하게 자신을 합리화하고 그에 대해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것은 놀랍네요.

차별(편견) 타파라는 정의를 독점했다고 믿기에,

, 상대방은 차별(편견) 타파에 관심이 적다고 믿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더 문제인 것이고요.


+) 

법학개론도 수강한 적이 없기 때문에, 미국법은 물론 한국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채로 쓴 글입니다.

문제가 있는 내용은 지적해 주시고, 논의를 더 심화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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