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듀게 여러분!

잘 지내고 계시죠?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저를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 얼마나 계실지는 모르겠네요.

예전에 저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관련해서 이 게시판에 세 개의 글을 올렸었습니다.

http://www.djuna.kr/xe/oldmain/10160113

http://www.djuna.kr/xe/oldmain/10166404

http://www.djuna.kr/xe/oldmain/10174152

그때 듀게분들은 수많은 댓글을 달아주시면서 저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댓글들이 사라진 건 좀 아쉽네요. 스크랩이라도 미리 해두었으면 좋았을텐데. ㅠ)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제가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6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뭔가 울적한 마음에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먼저 올렸는데 저에게 특별한 이 공간에도 글을 올려서 여러분들과 같이 나누고 싶었습니다.

부디 저 같이 못난 자식이 되지 마시고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꼭 잘해드리세요.

뒤늦게 후회하면 늦습니다.

'어버이 살아신 제 셤길 일란 다 하여라'라고 했던 송강 정 철의 말은 정말 진리였습니다.

청개구리와 같은 심정으로 불효자는 웁니다..

 

(다음이 어제 쓴 글입니다.)

 

7월 3일, 오늘은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6주기가 되는 날이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글을 쓰기로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머니 산소에 못 갔다. 누나와 매형도 조카 두 명 때문에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늘 어머니 자랑을 했다. 돌아가신 후에도 그랬다. 늘 그럴 자격이 있는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어머니를 기쁘시게 해드린 적은 별로 없었다. 97년부터 영화에 미치기 시작한 이후로 더욱 그랬다. 어머니와 영화 보러 다니는 문제로 수도 없이 다퉜다. 밥도 제대로 안 챙겨먹고 나가서 하루에 세 편씩 영화만 보고 있었으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하셨다. 그때는 영화를 운명이라고 생각했는지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고 어머니의 걱정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영화를 볼 때만큼 행복한 일이 없어서 그랬는지 병적으로 집착하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지금 당장 영화 보기를 중단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영화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과격한 표현도 쓰곤 한다. 영화와 관련해서 나 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어머니가 앓으셨던 불치병의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진 적이 없고 다만 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내가 영화 때문에 얼마나 어머니의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죄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영화가 없었다면 어머니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그렇지 못했던 게 너무 후회되고 슬프다. 그렇게 영화에 미쳐서 뭔가가 되었다면 하늘에 계신 어머니 앞에 그나마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었을텐데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냥 대책없이 혼자 영화에 미쳐있었던 사람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는 실질적으로 영화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이다. 내가 영화와 관련이 있어 보이려고 코스프레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냥 속이 비어 있는 게 들킬까 두려워 괜히 멋진 문장을 쓰려고 흉내내고 있을 뿐이다. 어머니는 이제 내 옆에 계시지 않는데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게 너무 슬프다. 물론 이건 다 내 잘못이다. 갑자기 <슬픔이여 안녕>의 진 세버그가 떠오른다. 진 세버그도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질 걸로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때의 치기, 열정이 그녀를 망쳤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바로잡을 수는 없다. 내 눈 앞에 보이는 온갖 DVD와 영화 관련 도서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영화란 과연 나에게 무엇일까. 누가 그런 말을 했다. 영화를 사랑하기 전에 먼저 영화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그 질문을 나는 진작 했어야 했다. 나는 영화를 짝사랑한 것이 분명하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사랑한 방식도 너무 잘못되었다. 밀당도 하지 않고 너무 어리석게 사랑했다.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대상에게 제발 나를 알아달라고 혼자 애걸복걸했다. 그러고 있다가 정작 내 옆에 계시던 소중한 어머니는 잃고 말았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미친 놈처럼 영화에게 애걸복걸하고 있다. 내 주변 사람들도 나에게 말한다. 이제 그만 영화를 놓아주라고. 나도 영화를 놓아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은 걸까. 참 실속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영화 때문에 내가 쏟아부은 시간이 얼마인데 하는 보상심리가 작동하는 걸까. 모르겠다. 마음이 복잡하다. 어머니에 대한 다큐라도 잘 만들어서 어머니에게 바치고 싶었는데 그럴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진작에 단념하고 영화를 떠날 걸 그랬다. 남들처럼 그냥 적당히 거리를 두고 가끔 생각나면 쳐다보는 정도로만 해도 좋았을텐데 말이다. 내가 영화를 떠나도 영화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영화 그 놈은 나를 향해 한번 1초라도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영화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그게 너무 후회되고 슬프다. 혼자 환상 속에 너무 오랫동안 빠져있다가 그걸 너무나 늦게 알아버렸다는 게 슬프다. 애증의 대상이 되어버린 이 애물단지 영화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집에 어머니 결혼식을 찍은 16미리 필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깜짝 놀랐다. 당시에는 결혼식을 16미리 카메라로 촬영하기도 했었나보다. 필름을 빛에 비추어 살펴보았다. 어머니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수줍게 의자에 앉아계신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는 카메라를 쳐다보고 계셨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머니는 뭔가 설레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지긋이 바라보면서 수줍게 웃고 계셨다. 어머니의 미소가 그립다. 어머니는 웃는 모습이 참 이쁘셨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봤었는데 그때의 어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생전에는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천상의 미소'를 짓고 계셨다. 나는 그때 천국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앞으로 회한을 안은 채 영화와 전혀 상관없이 지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16미리 필름이 발견됨으로써 나에게는 여전히 생전에 영화와 관련되어 꼭 해야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나는 반드시 죽기 전에 16미리 영사기를 구해서 어머니의 결혼식을 보고 싶다. 반드시 보고야 말 거다. 극장에서 결혼식을 보게 된다면 온갖 감정에 사로잡혀 울 것 같다. 어머니는 나를 보면서 미소를 지으실 거다. 그때는 나는 꼭 어머니에게 미소로 화답하고 싶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결혼식 16미리 필름 링크

 

http://youtu.be/QllAK_Y2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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