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Her (2013)

2014.05.19 03:12

DJUNA 조회 수:28314


시어도어는 편지대필회사에서 일하는 작가입니다. 아내와는 이혼 수속을 밟는 중이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지요. 새로 여자친구를 사귀어 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도 않아서,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할 게 게임밖에 없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옵니다. 새로 컴퓨터 운영체계를 깔았는데, 이게 바로 인공인격을 가진 최초의 프로그램이었던 거죠. 자기 자신을 사만다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여자 목소리의 프로그램은 순식간에 시어도어의 친구가 되고 결국 둘은 연인으로 발전합니다. 목소리만 있는 상대와 연애를 하는 것이니 플라토닉한 관계라고 상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도 않아요. 일단 폰섹스라는 도구가 있고, 그밖의 다른 방법들도 있거든요.

만약 스파이크 존스가 [그녀]를 인간 여자들과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해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는 남자의 이야기로 그리려 했다면 사만다는 그냥 시리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기계적 목소리에 불과했을 겁니다. 하지만 사만다는 시리가 아닙니다. 자기 학습이 가능한 인공지능이지요.

스파이크 존스도 [일렉트릭 드림]과 같이 이미 고정된 장르 클리셰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로맨스를 그릴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그 클리셰 대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만다의 목소리로 스칼렛 조핸슨을 캐스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조핸슨은 이 영화에서 로봇 연기를 하지 않습니다. 일반 사람과 전혀 구별이 불가능한, 생명력이 넘치고 심지어 육감적인 목소리를 들려주지요.

하지만 과연 그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일단 이 영화의 제목은 '그녀'인데 사만다는 여성이 맞나요? 아니죠. 시어도어의 요구에 따라 인간 여성을 흉내내는 무엇입니다. 그렇다면 사만다의 욕망은 진짜인가요? 사만다와 시어도어의 관계는 어디까지가 진짜일까요?

존스는 이 질문들 모두에 답변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시어도어의 관점만을 허용하지요. 시어도어는 사만다를 오로지 자신을 이해해 수 있고 그런 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자친구로만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영화는 드라마를 채울 온갖 재료를 얻어요.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영화는 사만다가 시어도어의 고정 관념을 넘어서는 무언가라는 것을 잊지 않으며 계속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킵니다. 그리고 어느 단계까지 오면 심지어 시어도어도 사만다가 그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레이 커즈와일의 영역입니다. 단순히 로맨스가 끝나는 게 아니라 인류의 역사가 새로운 영역으로 접어드는 것이죠.

[그녀]는 깊이 있고 울림이 큰 로맨스 영화입니다. 여기엔 스파이크 존스의 역할도 크지만 호아킨 피닉스와 스칼렛 조핸슨의 연기력도 한 몫을 하죠. 하지만 영화의 진짜 장점은 이 로맨스를 철저한 SF적인 세계관과 상상력을 통해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SF의 소재를 빌려 현대인의 고민을 상징화한 로맨스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세계를 지금의 지식과 상상력을 통해 성실하게 정교하게 쌓아올리는 본격 SF인 것이죠. 사람들이 이 장르에서 기대하는 특수효과 같은 건 거의 없지만 최근에 나온 SF 영화 중 [그녀]처럼 이 장르에 진지하게 접근한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14/05/19)

★★★☆

기타등등
이 영화에 나오는 근미래의 LA는 상하이에서 찍었더군요.


감독: Spike Jonze, 출연: Joaquin Phoenix, Amy Adams, Scarlett Johansson, Rooney Mara, Olivia Wilde, Kristen Wiig, Brian Cox

IMDb http://www.imdb.com/title/tt283554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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