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하나만 들어줘 A Simple Favor (2018)

2018.12.15 22:47

DJUNA 조회 수:4180


폴 피그의 신작 [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원작은 다시 벨이라는 작가가 쓴 동명 소설. 2017년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작이더라고요. 작가의 첫 작품인 모양이고. 궁금하긴 한데, 그렇게 좋은 소설일 거라는 생각은 안 듭니다. 영화에서 본 이야기가 그 자체로 좋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으며 계속 호기심을 자극하긴 합니다만 보고 나면 이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골백번은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인공 스테파니는 전업 주부이고 블로거예요. 영화는 블로그 동영상에서 실종된 친구 에밀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시작합니다. 스테파니와 에밀리는 두 사람의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만나 급속도로 친해졌어요. 그런데 에밀리는 스테파니에게 아들을 집에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하고 갑자기 실종되어 버립니다. 스테파니는 친구를 찾으러 나서고 그러는 동안 에밀리의 작가 남편인 숀과 가까워집니다.

그 뒤에 여러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후로는 모두 스포일러입니다. 단지 이 영화가 반전을 만들기 위해 동원한 트릭들이 이미 장르 안에서는 친숙한 것들이며 후반에는 계속 탭댄스추듯 작은 반전들을 쏘아댄다는 건 말해도 될 것 같아요. 관객들은 그 중 일부를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겠죠. 예를 들어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연기하는 에밀리의 비중이 그렇게 작을 리는 없지 않습니까?

1940년대라면 음침하기 짝이 없는 필름 누아르가 되었을 것 같은 이야기입니다. 원작도 영화보다는 어두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폴 피그의 영화는 발랄하기 짝이 없습니다. 화면은 의도적으로 밝고 화사하며 OST는 찰랑거리는 20세기 프렌치 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금기가 깨지는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도 상당히 경쾌한 코미디예요. 등 뒤에서 칼이 긁히는 소리가 들리는 코미디지만요.

영화의 매력도 이 스타일과 내용의 미묘한 부조화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스테파니 역의 안나 켄드릭은 언제나처럼 밝고 화사하고 귀여운데, 이 캐릭터에게 주어진 설정은 그 귀여움을 은근슬쩍 배반하고 있거든요. 영화의 컴컴한 진상이 드러나고 캐릭터의 뒷이야기가 밝혀진 뒤에도 스테파니는 여전히 밝고 열정적인데, 그 차이가 미묘하게 매력적인 불협화음을 만들어냅니다.

스테파니와 에밀리의 관계는 고전 필름 누와르의 탐정 주인공과 팜므 파탈과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엔 억울함과 분노가 없습니다. 굉장히 깔끔해요. 주인공을 여자로 바꾸니까 관계 자체가 달라져버리는 거죠. 여전히 둘 사이엔 강한 성적 긴장감이 흐르며 결과는 어쩔 수 없이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으니 누아르의 공식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그래도 영화는 찜찜함도, 불쾌함도 없습니다.

여기엔 에밀리를 연기한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공이 큰 거 같아요. 관객들은 에밀리에 그렇게까지 공감하지는 않지만 첫 등장부터 아무런 저항없이 매료된 상태입니다. 어두운 진상이 밝혀져도 에밀리는 여전히 궁금하고 매력적인 존재로 남는데, 이게 영화 끝까지 갑니다. 그렇다고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필름 누아르 팜므 파탈의 익숙한 길을 따르는 것도 아니거든요.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이야기만 따지면 야심없는 작품입니다. 캐릭터를 자기 식으로 완벽하게 구축한 두 배우의 매력과 공식 스토리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그들의 화학 반응 그리고 그들을 갖고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낸 폴 피그 덕택에 평범할 수도 있었던 이야기가 독특하게 매력적인 영화로 만들어진 거죠. (18/12/15)

★★★

기타등등
화면비는 2.00:1입니다.


감독: Paul Feig, 배우: Anna Kendrick, Blake Lively, Henry Golding, Ian Ho, Joshua Satine

IMDb https://www.imdb.com/title/tt7040874/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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