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좋아합니다.

재미있게,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 반복적일 수 밖에 없는 실내운동에는 큰 매력을 느끼질 못해요. 

산을 올라가고 내려가는 일은 단조롭지 않아서 좋습니다.

산에 따라, 등산로에 따라, 높이에 따라 순간순간 변화하는 풍경과 소리를 음미하는 것도 좋아하고, 산길의 경사, 돌, 계단, 바위에 따라 몸 움직임이 달라져야 하는 상황도 맘에 들어요.


그래서 가끔 혼자서라도 등산을 하는 편입니다. 가까운 북한산 정도.

북한산은 등산로가 여러갈래라 유명 코스에는 사람들이 몰리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코스는 일요일 낮이라도 한산합니다.

많이들 단체 등산객들의 무례함? 혹은 소란함을 싫어하시죠. 저처럼 혼자 다니는 사람도 그런 소란스런 모임 근처에는 되도록 안가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빨리 앞질러 지나쳐 버리거나, 힘들면 그냥 아예 뒤쳐져 천천히 가면서 소란함이 멀어지길 기다리죠. 

그게 아니면 아예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코스를 택합니다. 

전에는 그렇게 사람이 안다니는 등산로를 아무 생각없이 잘 다녔습니다. 혼자 만끽했죠.

내 발소리와 숨소리가 점령한 고요한 숲길, 가끔 바람에 나무들은 파도소리를 흉내내고, 딱따구리가 나무 찍는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를 눈으로 좇아보고, 낙엽 사이에서 바스락 거리는 청설모에게 쭈쭛거리기도 하고... 그런 순간들이 마냥 좋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다른 등산객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인사 한 번 하고.


그것이 알고싶다 많이들 얘기하시는데, 저는 이번 회차만 특별히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미스터리한 살인 케이스들은 항상 무서웠죠. 

산길이 무서워지기 시작한 건 몇 개월 전 등산로에서 살해당한 어느 여자분 케이스가 나온 후부터입니다. 정황상 범인이 거의 확실한 용의자는 전에도 등산로에서 강도짓을 한 전과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아침운동 나간다고 동네 뒷산에 간 여자분을 별 이유도 없이(아침운동 나가는 사람이 무슨 귀중품이 있겠습니까) 가지고 있던 칼로 수차례 찔러 살해하고 도주했죠.


전에는 등산 중 넘어지거나 다치는 일을 무서워 했었는데, 그 회차를 본 이후로 등산로에서 혼자 오는 누군가를 마주치게 되면, 특히 혼자인 남성이기라도 하면 머리가 쭈뼛쭈뼛 서곤 했어요. 

사실 실제 등산의 고수들은 혼자 다니는 아저씨들입니다. 정말 산을 좋아하고 자주 가는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전에는 그런 아저씨들이 가는 루트를 무작정 따라가기도 하고 경사가 급한 커다란 바위에서도 산양처럼 사뿐사뿐 지나가는 분 흉내도 내보려 하고 그랬었는데, 이젠 그저 아무도 안마주치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아무도 없는 길을 하산할 때는 정말 뒤에서 누군가 붙잡을까봐 도망치는 것처럼 꽁지가 빠지게 내려옵니다.

그래도 등산을 끊을 수 없어 요즘도 일주일에 한 두번은 홀로 등산을 합니다. 여전히 사람 많이 안다니는 등산로를 택합니다. 그냥 별 일 없겠거니, 뭔 일이라도 나면 그게 내 운명이려니 하며 혼자 속으로 호기롭게 등산을 시작하고서도 여전히 혼자 가는 남성을 마주치면 간이 철렁하곤 하죠, 흐미... 순간 식은 땀을 흘리면서도 등산을 끊을 수가 없어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 뭐 그런 속담같은 심정으로, 오기로 갑니다.


요즘엔 아파트 아래를 지나갈 때도 괜히 정수리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해하는 사건들을 너무 많이 접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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