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도박, 남여)

2016.03.20 09:08

여은성 조회 수:754


 1.현실에서는 도박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물론 도박이 재미있다는 건 알지만요. 확실한 건 나는 한번 도박에 손을 대면 파멸할 때까지 절대로 도박을 끊지 못할거예요. 던전앤파이터에서 강화를 실패하기 시작하면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몇억씩 꼴아박는게 연례행사거든요. 물론 던전앤파이터의 몇억은 현실의 돈으로 얼마 안 되니 문제는 없지만...이게 현실의 돈이라고 생각해보면 오싹해요. 게임머니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원하는 강화수치가 뜨기 전엔 뭔가에 홀린 상태처럼 되어버렸던 나 자신에게 오싹한 기분이 들죠.


 그래서 게임머니로 미친듯이 강화를 달리고 난 후엔 늘 깨달음을 얻죠. 절대, 절대로 도박을 하면 안된다는 거요. 이건 돈에 관한 게 아니거든요.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한 문제예요. 만약 도박에 한번 손댔다가 져버리면? 거기서 털고 일어나면 내 인생 자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에 도박으로 플러스가 날 때까지 도박을 하겠다는 마음이 분명히 들 수밖에 없겠구나 싶어요. 그리고 뭔가에 홀린 그 상태가 진짜 도박을 할 때 찾아온다면...휴, 상상만 해도 소름끼쳐요. 


 게임머니랑 게임 속의 무기일 뿐인 물건으로 도박을 할 때도 마치 시간이 삭제된 것 같은 느낌인데 진짜 돈으로 도박한다면 시간이 아니라 인생이 삭제될 것 같아요. 도박은 절대 안하려고요.



 2.사실 전 이 글을 쓰기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예요. 도박을 안하니까요. 하지만 프로듀스 101이나 알파고vs이세돌에서도 그랬듯이 현상 자체보다는 그 현상을 대하는 사람들의 리액션이 늘 궁금하거든요. 프로듀스 101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더 재미있게 구경하기 위해 본방을 시청하고, 바둑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이 경악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알파고vs이세돌전을 보는 거죠. 여름에 밤새워 보게 될 2016올림픽도 경기를 보려는 게 아니라 열광하거나 탄식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서 보게 될 거예요. 


 언젠가 말했듯이 이 세상은 재미가 없지만 뻔한 것 같으면서도 뻔하지 않은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은 너무 재밌어요. 그러나 사람들의 재미있는 면은 그냥 끌어내지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그걸 끌어내지도록 하는 이벤트를 쫓아다니곤 해요. 


 

 3.그런데 도박은 내가 굳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만연해 있다는 느낌이 상당히 들어요. 


 예전에 강원랜드 얘기를 썼었죠. 강원랜드에 갔는데 신분증을 안가져가서 그냥 강원도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왔던 얘기요. 그 뒤로 준비물을 챙겨서 가봤는데 별 재미는 없었어요. 일단은 도박하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딱히 비약이나 기대감을 가지고 뭘 한다는 느낌이 안들었거든요. 슬롯을 굴리거나 카드를 돌리는 게 일상의 비타민이 아니라 일상의 주식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몇 명 보고 나니까 이건 내가 보고싶던게 아니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누군가에겐 열광이나 흥분을 가져다주는 것도 누군가에겐 일상의 담담함, 고단함이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위에 만연해있다는 말을 썼는데 농구 경기나 축구 경기를 볼 때 도박하는 사람들의 채팅을 보는 게 너무 재밌어요. 그냥...그들의 간절함이 말이죠. 도박하는 사람들이 저 바다 건너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을 응원하거나 저주하는 걸 보고 있으면 저것이야말로 흐리멍텅한 상태에서 벗어난 열정적인 상태가 아닐까 싶어요. 잘은 모르겠는데 농구는 그냥 승패를 맞추는 게 아니라 쿼터 별로 이기고 있거나 지고 있는 걸 맞추는 도박을 하나 봐요. 그러니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 경기가 아니면 그들은 경기 내내 집중을 하면서 게임을 보는 거죠. 감독이 조금 이기고 있다고 주전 선수를 빼거나 하면 쌍욕을 하고...하여간 심심할 틈이 없는거예요. 그들을 흐리멍텅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똑바로 집중하도록 만드는 어떤 것을 보고 있으면 저도 즐거워요. 


 

 4.흠.



 5.그걸 보고 있으면 도박도 만원, 이만원 정도씩 하면 인생의 마약이 아니라 비타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긴 해요. 물론 저에게는 아니죠. 저는 '후후. 만원, 이만원짜리 비타민은 너무 약해'라고 중얼거리며 배팅을 하다가 정신차려보면 비타민이 아니라 마약을 하고 있을 인간이거든요. 안 봐도 알아요. 이곳에서의 나는 아니지만 평행세계에서 우연히 도박에 손댄 버전의 내가 분명 있겠죠.



 6.남자와 여자...잊을 만하면 나오는 얘기지만 사실 비교대상은 아니라고 봐요.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이 확실히 갈린다고 여기거든요. 강점과 약점에 있어서는 교전지역을 어디로 정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거지 절대는 없는 거죠. 


 다만 어떤 축구 감독의 얘기가 인상적이예요. '여자 선수들은 감독의 지시대로 플레이하기 위해 노력한다. 남자 선수들은 어떻게든 감독의 지시대로 플레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부분이요. 물론 이게 모든 상황에서 적용되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면 꽤 많은 비율의 남자아이들은 학교라는 바운더리 안에선 멍청해 보이고, 뭘 모르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거죠. 어딘가 다른 곳에서 다른 매뉴얼을 제공한다면 달라 보일 수도 있을 거거든요.



 7.이 글도 도박에서 출발해서 이상한 곳에서 끝을 맺는데...뭐 그래요. 사람마다 강점이 다르다고 보거든요. 잘못된 교전지역에서 잘못된 매뉴얼을 가지고 싸워나가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한 거라고 봐요. 물론 이런 말도 교전지역과 매뉴얼을 선택할 수 없는, 선택이 강제된 사람들에게는 짜증나는 소리겠지만요. 하지만 어쨌든 평균적인 한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비용을 감안해보면 대체로 그보다는 더 좋은 선택이 있을 거란 말이죠.


 언젠가 말했듯이 요즘은 할 일이 없어서 예전에 둔 수들을 복기해보곤 하는데...어렸을 때 잘못된 훈수를 받아서 두었던 수들은 정말 생각할수록 짜증나요. 왜 내가 강점을 드러낼 수 없는 곳에서 내 강점을 살려주지 못하는 매뉴얼을 들고 살았을까...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멈춰서서 생각해봤다면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고요. 


 아 이런, 또 징징거렸네요. 징징거리는 건 좋아하지만 똑같은 걸 반복하는 건 별로같아요. 뭔가 새로운 징징거릴 거리를 찾아야겠어요. 



 8.농구 경기를 볼 시간이네요. 농구도 보고 다른 인간의 엔돌핀이 솟구치는 것도 보려고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먹는 날이 있긴 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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