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6 01:23
1.라스트 제다이는 못 만든 영화예요. 나는 '그럼 네가 한 번 만들어 봐라.'라는 말을 좋아해요. 이런 내가 못 만든 영화라고 단언한다면, 내가 만들었다면 확실하게 더 잘 만들 자신이 있다는 뜻이예요.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각본에 한해서는 내가 썼다면 이보다는 잘 썼을 거예요.
2.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의 의도와 이 영화가 제시하는 방향성을 설명하며 잘 뽑힌 영화라고들 말하지만 그런 건 무의미하죠. 아무리 고득점으로 떡칠된 안무를 짜온 피겨 선수라도 점프할 때마다 넘어지고 스핀할 때마다 회전수가 부족하면 절대 좋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잖아요?
3.라스트 제다이는 자신이 대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자신이 대가가 되어야만 한다고 믿는 평범한 바이올린 연습생을 보는 것 같아요. 악보 한 소절을 끝낼 때마다 이쪽을 돌아보며
'어때요 선생님? 이번엔 선생님의 연주와 덜 비슷했죠? 이번엔 저만의 연주를 해낸거죠?'
...라고 인정을 구걸하는, 재능 없는 가엾은 소년을 보는 것 같단 말이예요.
4.휴.
5.어떤 사람들은 라스트 제다이가 기존 시리즈와 차별화된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반대예요. 이건 마치 위에 쓴 재능 없는 소년처럼 스승과 차별화되는 연주에만 골몰하다 보니 누구보다도 스승의 연주에 예속되어 버린 거예요. 누군가를 의식하는 데 사로잡혀서 자기자신의 연주를 전혀 해내고 있지 못하고 있는 지망생처럼..
라스트 제다이를 보는 내내 구 시리즈에서 자유로워진 게 아니라 사로잡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자유로워지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자신에게 어깨를 빌려준 거인조차 쓰러뜨려 버리죠.
라스트 제다이를 보는 내내 내가 본 건 가엾은 지망생이었어요. 착실한 모방자가 되기엔 야망이 너무 컸고 마음대로 질주하기엔 재능이 너무 작았던 지망생.
경어를 쓰고 싶은 건지 하대하고 싶은 건지 아리까리해서 재밌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