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라는 것에 대한 착각

2018.08.29 10:47

가라 조회 수:1274


지금은 다른 일을 하지만, 제가 다니는 회사는 제조 자동화가 꽤 되어 있는 회사고 그쪽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동화를 하면 사람이 줄고, 인건비가 절약되니까 이득이겠지? 라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래 댓글에서도 썼지만) 자동화의 목적은 품질 균질화 입니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품질이 오락가락 하지 않게 하는게 1차적인 목적이것이죠.


물론, 사람은 줄어듭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동급의 생산라인을 비교했을때 자동화되어 있는 라인은 단순업무(아웃소싱) 포함해서 6명이 필요한데, 자동화율이 낮은 라인은 9명이 필요합니다.

와, 인건비가 1/3이나 줄어들었네! 

맞는 이야기 입니다.

줄어든 인건비 1/3 만큼 회사 이익이 올라가겠네!

틀린 이야기 입니다.


자동화율이 올라갈수록 그만큼 유지보수 및 개선에 고급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많은 제조업들이 자기네 주력 업무가 아닌 유지보수 업무는 외주를 주죠.

그리고 외주를 주면 인건비 1/3 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저희 회사의 경우에는 대략 생산직 인원 80명 정도 줄어들고, 외주 비용으로 기백억 정도 씁니다. 차라리 자동화 안하고 연봉 1억씩 주면 80억인데..)


조금 시야를 돌려서 핸드폰을 봅니다. 처음에 아이폰으로 스마트폰을 시작하면 아이폰을 쭉 쓰는 경향이 있고, 안드로이드폰을 사면 안드로이드를 쭉 쓰는 경향이 있죠. 왜 그럴까요? OS를 바꾸면 그만큼 유/무형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잘 쓰던 앱을 새로 구매해야 하는 비용, 새 시스템에 적응하는 시간비용 등등..)

제조 자동화도 비슷합니다. 처음 독일 지멘스로 라인을 깔면 그 라인 쓸때까지는 계속 지멘스에 종속됩니다. 내 맘대로 커스터마이징을 못하고 생산 스펙 조금 바꾸려면 지멘스 사람을 불러와야 하지요. 기술자 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1주일 불러오는데 2천만원쯤 합니다. 일본쪽은 좀 더 싸서 H모 업체는 기술자 5일 보내주면서 천만원 부르더군요. (그런데 그 기술자도 지멘스나 H사 정직원이 아니라 모기업의 협력사 직원이라는게 함정..)  단순한 유지보수는 국내 업체들을 쓸 수 있는데.. (그럼에도 기백억 들어가죠), 변경/개선은 훨씬 더 큰 비용을 지불하고 메이커를 불러야 합니다.


요즘 저가 음식점이나 푸드코트, 패스트푸드에서 보이는 무인 주문대를 봅시다.

댓글에도 적었지만 자체 개발해서 쓰는 맥도날드도 제대로 커스터마이징을 못하고 있습니다. 

김밥천국에서 무인주문대를 도입했다고 치죠. 가장 기본기능만 쓰고 커스터마이징 안한다고 쳐요.

그런데, 물가가 올라서 김밥을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올리려면 업체 불러야 할걸요?

요즘 매운게 인기라고 해서 땡초깁밥을 새로 개발했어요. 키오스크에 이거 추가하려면 또 업체 불러서 돈줘야 하고요.


즉, 내가 제공하는 제품/서비스를 개선하거나 변경할때 그게 내 맘대로 되는게 아니라 무인 주문대의 성능에 종속되버려요.

그냥 단순하게 프랜차이즈에서 하라는대로 하고 받으라는대로 받을게 아닌 독립된 업체는 이 부분에서 많이 손해를 봅니다.(빠르게 적응하고 개선을 못하므로..)

그리고 이런 업체들이 초기 비용을 싸게 하는건, 그쪽에서는 이익을 보려는게 아니라 자기네한테 종속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익은 유지보수비용으로 벌죠.

프린트 싸게 팔고 정품잉크에서 이익 얻는것 처럼요.


무인주문대의 단점은 그외에도 고객의 거부감이라던가 도난 우려, 고장이 났을때 주문 자체가 안되는 점 등등의 문제가 있겠지만..

자동화 장비를 실제로 도입/관리하는 관점에서만 보면.. 임대업체랑 장기계약해서 3년, 5년 써보고 나면 의외로 사람 쓰는 것이랑 비용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라는데 500원 겁니다.


옆동네 *마트에 무인계산대 4대 들여왔던데 직원 2명이 내내 서서 제대로 계산하나 지켜보고 있더군요. 

광명에 있는 유명한 가구업체도 무인계산대 4대당 1명씩 직원 배치하면서 지켜보고 있고요.

인건비가 줄은것 처럼 보이지만. 계산 속이고 나가서 보는 손해가 있겠죠.. 어느 쪽이 더 많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저는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업종에서 무인화, 자동화는 특이점 와서 초AI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비용면에서는 절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이점이 30년대쯤 올 것 같다고 하니.. 20년이 채 안남았네요.

그때는 우리 뭐 먹고 살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41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96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581
126103 에피소드 #87 new Lunagazer 2024.04.29 4
126102 프레임드 #780 new Lunagazer 2024.04.29 4
126101 비가 일주일 내내 내리고 집콕하고 싶어요. [1] new 산호초2010 2024.04.29 28
126100 고인이 된 두 사람 사진 new daviddain 2024.04.29 35
126099 구글에 리그앙 쳐 보면 new daviddain 2024.04.29 52
126098 의외의 돌발변수가 출현한 어도어 경영권 전개... new 상수 2024.04.29 235
126097 눈 체조 [2] new catgotmy 2024.04.29 55
126096 [핵바낭] 또 그냥 일상 잡담입니다 [5] update 로이배티 2024.04.29 279
126095 글로벌(?)한 저녁 그리고 한화 이글스 daviddain 2024.04.28 136
126094 프레임드 #779 [4] update Lunagazer 2024.04.28 42
126093 [애플티비] 무난하게 잘 만든 축구 드라마 ‘테드 래소’ [9] update 쏘맥 2024.04.28 208
126092 마이클 잭슨 Scream (2017) [3] catgotmy 2024.04.28 141
126091 [영화바낭] 영국산 필리핀 인종차별 호러, '레이징 그레이스' 잡담입니다 로이배티 2024.04.28 183
126090 시티헌터 소감<유스포>+오늘자 눈물퀸 소감<유스포> [5] 라인하르트012 2024.04.27 317
126089 프레임드 #778 [4] Lunagazer 2024.04.27 53
126088 [넷플릭스바낭] '나이브'의 극한을 보여드립니다.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잡담 [2] 로이배티 2024.04.27 263
126087 민희진의 MBTI catgotmy 2024.04.27 369
126086 민희진이라는 시대착오적 인물 [10] woxn3 2024.04.27 929
126085 레트로튠 - Hey Deanie [4] theforce 2024.04.27 69
126084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극장에서 보고(Feat. 파친코 김민하배우) [3] 상수 2024.04.27 22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