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승민이

2019.02.23 14:28

흙파먹어요 조회 수:738

후회라는 낱말 없는 인생에도 리셋 버튼 필요할까?
스치듯 안녕 아닌, 스치듯 깍지 껴버린 손가락에 교감신경 폭발함에도 나 다시 돌아갈래 절규하는 머저리는 없다.
안타까운 것은 한 살, 또 한 살 나이 먹어감에
배수지가 한가인 되어 제발로 걸어와 주시는 갈라지는 홍해보다 감격스런 기적 눈 앞에 두고도,
리셋 버튼 조용히 눈물로 덮어버린 채 가던 길 가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포 더 찌질, 오브 더 찌질, 바이 더 찌질.
결국 그때나 지금이나 스스로 찌질할 수밖에 없는 찌질이들의 숙명.

엽전 꾸러미에 환골탈태한 갑돌이가 밀양 박씨 족보 표지 마빡에 새기고
저 얘기 정말로 내 친구의 얘기라며 당당히 극장으로 걸어들어가,
만국의 찌질이들이여 단결하라!
가슴 한 켠에 오래된 체기처럼 앙금으로 남은 저마다의 영숙이와 숙자를 감히 배수지와 한가인에 투영시켜
닭똥 같은 청춘의 만가 부르고 나왔다는 캠퍼스 러브 스토리
<건축학개론> 여기 있다. 전공필수 3학점. 1학년 1학기.

승민이의 인생, 그가 늦겨울 이불처럼 두르고 살아 온 가난의 흔적 보면 대강 짐작 가능하다.
애가 머리는 좋아 학원 한 번 제대로 보내줄 수 없었지만 연세대 갔고,
형편 뻔히 아는 놈이 돈 많이 드는 건축학과 덜컥 가버린 걸 보면 의외로 생각은 단순하다.
밟는 대로 안 나가 주시는 고물차의 운전대 잡고
우리 동네 슈마허 노릇 하며 나름 열심히 고속도로에 나왔더니,
어머나 저 놈팽이는 스포츠카에 내 여자 보쌈해다 휙 먼저 가버리네?

납득이의 입을 빌려 "썅년" 이라 욕했던 것은 결단코 서연 아니었고,
서연을 쟁취한 개자식 앞에 초라한 자신의 몰골 아니었으며,
성북구와 서대문구 사이 오가던 생활의 루틴에 강아지처럼 매여
국경도 없다는 애정지사의 광활함을 감당하기 싫었던 자신의 유아기적 행태.

승민이 저 푸른 초원 위에 서연과 함께 짓고 살아가고자 했던 도면을 보면
좁디 좁은 땅에 층층이 위로만 올려 쌓은 비좁은 마음의 성채 엿보인다.
그때 승민이 앞에 리셋 버튼 하나 나타나 주셨다면
짐작건대 이 찌질한 자식, 운명의 그날 오후 아닌, 수연이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 버리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착한다고 항아님 향했던 애타는 마음마저 거짓은 아닌 것.
국민 첫사랑이 국민 개객끼의 와이프 되어 재림하시니 흔들리는 것은 바람 아닌, 전 날 품었던 연정이었다.
암벽에 오를 마음 품어본 적 없는 자에게 암벽은 절경이요,
암벽에 매달린 자에게 암벽은 생활이 되며,
암벽 아래에서 하산한 자에게 암벽은 영원히 해갈 되지 않는 애증으로 남는 것.

각자의 암벽에 매달린 수염 숭숭 난 승민이들이 극장을 나와 눈물 아닌 한숨 내쉬었던 것은,
판타지 세계와는 달라 리셋 버튼 누름에 환희와 고통이 등가교환 됨을 알기에
또 다시 돌아서는 자신의 비겁함에 탄식함이 아닌,
매달린 암벽에 때때로 밉고, 사나워도 서로를 하나의 줄로 매어주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인연이 지닌 무게 때문이었더랬다.
어쨌든 함께 가는 것.
그것 또한 수십 개의 얼굴을 가진 사랑이라는 크레파스 중 하나 아니었던가?

본래는 20대 남자 애들의 얘기를 좀 해보려고 판 글인데, 왜 이리 또 주접을 떨고 있는지 모르겠다.

노래나 두 곡 들읍시다


... 승민아, 기운내라 인마.

비록 수지와도 한가인과도 이별했지만,

너 이자식 여자친구 고준희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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