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2019.03.22 15:59

흙파먹어요 조회 수:1722

권사님 꿈에 탐스런 복숭아 두 알이 냇물에 떠내려 와 조카딸 쌍둥이 회임을 예지하는 샤먼의 나라 대한민국.
배게 아래 놓고 자면 여자가 생길거라며 부적을 선물하는 것을 오랑캐의 습속이라 욕할 수도 없는 거겠지요.
두 눈 찡끗, 궁디팡팡 해주고 가는 망할 것의 등에다 대고, 너 이거 총체적으로다가 성희롱이야! 소리쳐봐야,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그럼 좀 잘 생겨보든지요.

네.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옘병. 멸망할거야. 전부 다...

인간들 생겨먹은 게 왜 이리 불공정한가는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어서, 고대 중국인들도 고민을 했습니다.
나는 왜 이따위인가? 신은 감자를 만드셨다면 그치실 일이지, 왜 또한 돼지감자를 만드셔서 좌절케 하시는가?
그들은 이 부조리와 원망의 화살을 복희씨에게 돌립니다.

희랍에 프로메테우스 있다면, 중원에는 복희씨 있었도다.
농사의 신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한 복희씨는 처음부터 세상을 이리 엉망진창와장창 내버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기왕에 만들기로 작정한 거, 진흙을 잘 반죽해서 평안도 기생집 만두처럼 예쁘게 빚었던 복희씨.
그런데, 아뿔사...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만, 사람 빚는 게 지겨워져 버린 것.

그렇다면 좀 쉬었다가 천천히 만들면 될 일을
개당 5원짜리 부업처럼 누가 정해준 할당량과 납기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관심 없는 건프라 조립하는 오타쿠처럼 꾸역꾸역 인간 만들기를 이어갑니다.
그렇게라도 손수 빚었으면 세상이 덜 시궁창이었을 것.
결국 그마저도 귀찮아진 복희 씨, 흙을 물에 개어버린 후 새끼줄을 담가 적셔서는 냅다 허공에 대고 돌려버립니다.

줄에서 떨어져나간 진흙이 사방으로 튀어 땅에 떨어졌고, 곧 거기서 사람들이 스믈스믈 생겨나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마구 양산해낸 무성의의 결정판들이 잘생겼을리가 있습니까?
그리하여 세상에는 대충 양산된 못 생긴 인간들이 지구를 걷게 된 것입니다.
그때 제 조상님도 땅에서 스믈스믈 일어나 그저 걷고 계셨던 게 분명합니다.

정성스레 사랑을 받으며 생겨난 덕인지 복희씨가 손으로 빚어낸 사람들은 흔히 인생 무난히 잘 살아가기 마련인데요
사람이 잘생겨야 인생이 편다는, 혹은 편타는 것은 우리 시조설화에도 나타나는 인정하기 싫지만 엄연히 실제하는 현상.
축생의 몸으로 태어나 인간이 되기를 희망했던 우리의 곰할매, 당시 곰처자.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뜻 맞는 호랭이 친구와 손잡고 신단수 아래 터 잡았다는 천제의 아들 찾아갑니다.

동물복지과는 별관 1층이라며 복실 2인조를 띄엄띄엄 보는 환웅에게

곰처녀 넙죽 업드리고 고하는 한 마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기왕 해줄거면 인심 좀 쓸 일이지 신이란 작자들은 하나같이 싸가지가 바가지라.
여호와가 홍해까지 갈라 놓고도 유대인들을 사막에서 고난의 행군 하게 했듯,
혹은 이 땅에 등가교환이라는 기초적 자본주의 관념 이식을 위한 포석이었는지,
환웅 이 양반, 마늘과 쑥을 던져주고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수련하기를 주문합니다.

결국 함께 수련하던 호랑이는 쑥 뜯어먹다 화딱지가 나서 볼셰비키 혁명 꿈꾸며 동굴을 박차고 나갔고.
그나마 잡식성이라 견딜만 했던 곰할매는 그 퉁퉁한 손으로 마늘을 까며,
- 지는예.. 꼬옥 사라미 댈거라예..
어둠 속에서 콧물 훌쩍이며 인고의 시간을 다 보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다가온 약속의 날.
유대인들이 젖과 꿀이 흐른다는 땅에 진입하였듯, 곰할매 역시 어둠을 헤치고 동굴을 나서게 됩니다.
종의 고리를 무시하는 이 역사적인 실험의 현장에 몸소 참석 하시어 자리를 빛내시는 내빈 환웅.
그런데, 예뻐... 곰이, 아니 곰이었던 처자가, 많이 예뻐...

황급히 손짓하여 인간이 되었기에 부끄러워진 몸을 가려주며

급 수줍어지는 환웅과, 그 떨리는 눈동자가 다소 의아한 웅녀

그렇게 시작된 이 사랑, 쉽기만 했을까요?

쟤는 곰이고, 나는 천손인데? 환웅의 잠 못 드는 밤을 괴롭히는 계급과, 정체성의 혼란.

내가 곰인걸 나도 아는데, 어떻게 환웅님께 내 마음 받아달라고 해요? 놀이터에서 눈물로 토로한 웅녀의 속마음.
언뜻 커피프린스 1호점이 생각나는 이 엉망진창 애정지사의 끝에서
결국, 한때 인간도 아니었던 우리 할머니께선 은근과 끈기라 쓰고 매력이라 읽는 덕목으로 천손의 배우자 위치에 오르시는 위업을 달성하셨던 겁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은찬을 바라보며 내뱉었던 한결의 그 대사를 기억합니다.


"딱 한 번만 말 할테니 잘 들어. 네가 남자든 외계인이든 끝까지 가보자. 이제 정리하는 거 못 해먹겠으니까. 사랑한다 고은찬.."


이 대사에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자지러졌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겁니다. 다 유전자 속에 깊숙이 박혀 있는 거.

일단 부딪혔다 하면 인연이요, 눈 치켜뜨고 보았더니 훈남 훈녀라던 우연과 행운의 찰진 조화

천생 롤코의 민족인 셈이지요.




.... 할려던 얘기가 뭔지 까먹었습니다.

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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