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은 가해자가 아니다의 그 다음

2021.04.18 11:21

Sonny 조회 수:826

제가 집에 들어갈 때의 이야기입니다. 같은 건물에 사는 어떤 여자분이 현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었고 저는 다시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기 귀찮아서 잽싸게 따라들어갔습니다. 자연스레 저는 그 여자분의 뒤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었는데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제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갈 때까지, 그 여자분이 집에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 여자분은 제가 정말 이 건물에 사는 입주자인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기다리던 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차라리 그 여자분을 먼저 보내고 따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른 뒤 건물에 들어갈 걸 그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게 오해일수도 있겠지만, 단지 제 입장에서만 보더라도 제가 불필요한 긴장을 해야했던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억울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제가 어떤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더군요. 제가 안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에게 납득시킬 수단은 없었습니다. 제가 이 건물의 입주자라는 걸 확인한 후라면 그의 긴장을 줄어들까요. 갑자기 자신이 따라들어온 남자가 아니라는 건 인지하겠지만,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는 불안은 있을 것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그에게 낯선 남자이니까요. 저는 저희 건물에 들어오는 낯선 여자를 보면서 전혀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남성들이 집단적으로 잔학해지고 이를 수정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남성은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가해자라는 말을 수정하겠습니다. 그 말에 저의 감정적인 단정이었다는 걸 인정합니다. 귤토피아님의 의견을 차용해 의견을 개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남자는 가해자가 아닙니다. 남성들이 집단적으로 잔학해지고 이를 수정하지 못하는 사례들은 반복적으로 발생합니다. 아마 제게 긴장을 느꼈던 그 분 역시도 그 사례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것입니다. 여성이 혼자 사는 원룸을 따라와서 간발의 차로 침입에 실패하는 남성의 이야기는 심심치않게 들립니다.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1021512320279770


게다가 주거침입은 여성들에게 더 큰 피해를 낳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측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주거침입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2.276배 높다고 밝혔다. 울산대 강지현 교수(경찰학과)는 “우스갯소리로 주거침입에서 사람을 마주치면 성폭행 혐의, 마주치지 않으면 단순 주거침입이라고 말할 만큼 주거침입은 강력범죄의 전조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부산일보]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1021512320279770


최근 가장 유명했던 신림동 원룸 남성침입 사건부터 해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수 박정현씨도 비정상회담에 나와서 혼자 살 때 현관에 신발들을 일부러 늘어놓아서 많이 사는 것처럼 꾸며야 했다고 말했죠. 이것을 단순한 위험이라고만 하면 좀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니 지출로 설명해보면 어떨까요. 남자인 저는 안전에 크게 신경을 안씁니다. 그러나 원룸에서 혼자 사는 여자들은 방법 카메라나 방법창을 따로 구입해야합니다.그냥 사는 데 남자보다 여자가 돈이 더 들어갑니다. 어떤 식으로든 남성의 세계와 여성의 세계는 상이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불평등의 원인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여자가 불평등하다는 건 결과이자 현상입니다. 여자는 "왜때문에" 돈을 더쓰거나 재수없게 생존권을 위협받아야되냐는 거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남자는 가해자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자의 생존권이 침해당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이냐는 것에 우리는 대답을 더 확실히 해야합니다. 이것은 여자라서 원래 그렇다는 팔자론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이것을 여성의 문제로 쓰는 것에 아주 큰 경계심을 갖고 있습니다. "여성은 이런 피해를 입었다"라는 문장이 구조론적으로 가진 결함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이원론적인 남성의 세계와 여성의 세계에서, 여성의 세계에서만 생긴 문제로 남성과는 전혀 무관한 사건으로 재구성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신문사들의 헤드라인이 '20대 여성, 한밤중에 골목길에서 ~" 라는 문구보다 '20대 남성, 20대 여성 행인을 골목길에서 xx 해~" 라는 기사로 바꿔야 한다고 비판적인 의견들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여성의 불평등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원인과 주체에 대해서 함께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성의 문제는 곧 남성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며 여성의 현상은 남성의 현상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남성은 가해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일부 남성들의 폭력적 사례는 계속 발생합니다. 이원론적인 세계에서 남성은 이것을 일부 남성의 문제로 인식하지만 여성은 이것을 모든 여성의 문제로 인식합니다. 질문이 남습니다. 모든 여성이 겪는 일부 남성의 문제는 과연 일부 남성만의 문제로 남을 수 있는 것일까. 일부 남성의 문제는 남성 세계의 부분집합으로만 남아있는 것일까. 왜 남성 전체는 이것을 일부 남성의 문제로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


여성이 남성에 의한 피해를 입었다고 구술할 때 그에 대한 대다수 남성의 대답은 "어쩌라고"가 됩니다. 그것은 전체 남성의 문제가 아니고 일부 남성의 문제기 때문에 남성이 신경쓰거나 공감할 필요는 없다는, 내집단의 외집단을 향한 논리가 이뤄집니다. 저는 이런 논리 자체가 남성으로서 그 일부남성과 구분되지 못한다는 자연스러운 죄책감 때문은 아닌지 추측합니다. 저는 여기서 다시 한번 의문을 갖게 되는데 남성이 일반화의 함정을 극복하고, 그것을 또 다른 일부 남자 vs 선량한 다수 남자의 이원론으로 치환시키면 되는 문제인지 물어보고 싶은 거죠. 이 이원론으로는 다음과 같은 주장이 가능합니다. "당신이 당한 불행에 공감한다, 그러나 세상에 좋은 남자들도 많으니 모든 남자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개인적 위로와 문제의식은 별개의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저는 실제로 성폭력 피해 여성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한 뒤에 남성들이 집단적으로 잔학해지고 이를 수정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걸 지적했을 때 그것이 당신의 개인적 불행으로 인한 일반화라고 공격당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이 게시판에서도 엇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죠.


"편견을 발생시킨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편견까지 함께 교정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논의에서 제가 관측하는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성의 편견에 대한 억울함에서 시작해, 남성의 편견에 대한 억울함으로 끝납니다. 여성이 (일부) 남성에 의해 당한 성차별 사례는 하나의 전제에서 그칩니다. 여성의 성차별이 목적이 되지 못하고, '그런 일이 있는 건 알고 있으나' 정도의 디딤돌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결국 여성의 차별은 남성의 명예를 위한 정반합 논증에서의 "반"에서 멈춥니다. 여성의 성차별이 이야기조차 되지 않고 흘러갑니다. 남성의 명예 회복과 동시에 여성의 성차별이 동등한 주제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져있습니다. 


이 때 여성의 개인적인 사례는 또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나요. 그것은 제가 앞서 말했던 여성의 남성의 세계라는 이원론적인 세계에서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됩니다. "어쨌든" 남성을 일반화해서는 안됩니다. 그 과정에서 개별적 피해자와 개별적 가해자는 그 자체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하나의 대의를 위해서 생략됩니다. 누군가의 직접적인 경험담이 아무런 호소력도 갖추지 못한다면 고백을 통한 여성의 실증은 과연 남성의 세계와 통합될 수 있는지, 저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미투가 몇백건이 쌓여도 그것은 결국 2500만의 남성이 들을, 2500만의 남성을 말할 건덕지조차 되지 못합니다. 


사고실험을 해보게 됩니다.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저지른 강력범죄가 1000건이 늘어났다고 칩시다. 그럼에도 그것은 일부 남성의 일입니다. 2000건이 늘어나도, 3000건이 늘어나도, 2500만이라는 모집단의 숫자는 건재합니다. 그렇다면 편견을 제거한 채로 정확한 이유와 현상 분석은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변증법 최초의 단계인 '정'이 되는 개별적 사례들조차 제대로 수집이 되지 않고 담론으로 유통되지도 않습니다. 여성의 성차별은 언제나 "알고는 있는" 문제로 남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의 보편적 존중과 분석을 위한 재료로 남습니다. 어떤 여성이, 어떤 남성에게, 어떤 폭력을 당했다는 명제만이 그냥 하나하나 흩어져서 명제를 형성하기 위한 구체적 재료가 되지 못하고 추상적인 성차별이란 어휘에 그냥 삼켜집니다. 어떤 남성이, 어떤 여성에게, 어떤 폭력을 가했다는 명제로는 절대 전화되지 않습니다. 이 게시판에서 가장 뜨거웠던 성차별 사례인 박원순의 성추행 및 자살조차 피해여성의 사건이 아니라 "박원순을" 어떻게 한 사건으로 해석되었으니까요. 논쟁이 성별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무조건적으로 남성에게 복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죠. 


편견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상은 다뤄지고 있는지, 혹은 그 현상이 현상 자체로서, 혹은 통합적인 명제를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존중되고 있는지 저는 여전히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동시에 여성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고백하는 형식의 담화가 과연 이 공론장에서 최소한의 금기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가장 기초적이고 조심스러워야 할 여성 개인의 발화들이 엄청난 부담이 뒤따른다면, 혹은 그 부담을 아주 쉽게 실현시키는 사람들 때문에 폐기가 된다면 이 이슈의 담론은 영원히 정반합에서의 반에 그치고 있을 것 같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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