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도 불치병인가요?

2010.12.20 14:10

옥이 조회 수:3107

지난 토요일에 대학교 동창친구를 오래간만에 만나러 갔습니다.

결과는 보기좋게 바람 -.-;;

물론 제가 핸드폰만 가져갔다면 그런 불상사는 없었을테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저의 핸드폰 소지여부가 아니었어요.

친구의 지각병이 불러온 참사였죠.

이 친구는 대학교 동창이고 졸업이후에도 꾸준히 만나고는 있지만 사실 만나는 횟수로 따지면 1년엔 두세번 만나는 정도랍니다.

1년에 두세번밖에 만나지 않으면서도 서로 신뢰하고 만나면 어제 만난듯 편한 그런 친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에 두세번 이상 절대로 만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친구의 심각한 지각병이예요.

돌이켜보면 대학교때도 항상 그랬거든요. 수업시간에 2-30분 뒤에 들어오는 친구는 항상 그 친구였고

그러면서도 절대 결석은 안해서 구박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던 친구^^

 

지난 토요일에도 오래간만에 만나서 점심이나 먹고 연말 분위기나 즐기자 하고 약속을 잡았는데

1시에 만나자는 제안에 2시에 만나면 안되냐고 하길래 저보다 거리가 먼 친구를 생각해서 그러마하고

대신 이번에도 늦는다면 1분도 안기다리고 난 집에 가겠다고 엄포를 놓았지요.

1시가 넘어서 저는 집을 나섰고 버스 정류장에 와서야 핸드폰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처음엔 집에 돌아갈까 했지만 연락올 사람도 없고 친구가 늦으면 난 그저 기다리면 되니까 하고

엄포까지 놓고 정작 제가 지각하면 안될것 같아 버스에 올랐습니다.

도착하니 시간은 1시 50분이었어요. 친구가 절대 2시전에 올리는 없고 평상시 습관을 생각할때 2시 30분까지는 오려니 하면서

친구를  기다렸습니다. 만나기로 한곳은 지하철입구였는데 날씨가 풀렸다지만 어쨌든 겨울이고 밖에 내내 서있긴 추워서

지하철 입구 바로 앞에 있는 커피숍 창가자리에서 창이 뚫어져라 창밖을 응시하며 친구를 기다렸죠.

10분 20분 30분이 지났지만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분명 몇분쯤 늦는다고 문자를 보냈을텐데 하는 생각에 답답하긴 했지만 약속장소가 확실했기에 나만 기다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기다렸고 어느새 시간은 3시를 넘었고 저도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자리를 떠 버스정류장까지 갔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지하철입구와 커피전문점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3시 20분...

우울하고 짜증스런 마음에 마음을 굳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오니 시간은 4시가 훌쩍 넘었고

점심도 못먹고 커피한잔 하지도 못하고 길에서 커피집에서 왔다갔다 하느라 감기 기운마저 느껴져서 우울하더군요.

집에 도착하니 친구의 문자와 전화가 여러통....

예상대로 첫 문자는...(1시 40분경)

 

"친구, 나 30분쯤 늦을 것 같아. 정말 미안 미안 최대한 빨리 갈게."

 

두번째 문자(2시 20분)

 

"친구, 나 도착했어. 근데 너 안보이네. 정말 집에 간거야? 어쩌지?

 

세번째 문자(2시 30분)

"화나서 정말 간거야? 미안 ㅠㅜ 나도 가야겠다. 오래간만에 만나는건데 미안 ㅠㅜ"

 

그리고 여러통의 전화들...

문자를 보는 순간 어이없음+화남+허탈함이 겹쳐서 그냥 웃음이 나더라구요.

 

집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문자를 했죠.

난 1시 50분에 도착해서 3시 20분까지 너를 기다리다 돌아왔다고.

친구가 전화를 걸어서 쩔쩔매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했지만

화도 안나고 그저 웃겨서 됐다고 너도 잘 들어가라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날 얻은 감기 덕분에 오늘 최악의 감기증상으로 결국 방금 내과에 다녀와서

죽기보다 더 싫은 물약에 감기약 잔뜩 조제해 왔습니다.

 

그날의 교훈은 뭘까요?

 

1. 지각은 불치병이다.

2.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말자. ("이번에도 늦는다면 1분도 안기다리고 난 집에 가겠다")

3. 핸드폰만 믿지말고 필요한 번호는 외우자.(자주 만나지 않는데다 바뀐 번호라 친구의 번호 010외에는 전혀 알지 못했어요.-.-;;)

 

 

이렇게 골치 아픈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끊어지지 않는 인연인걸 보면 나름 소중한 인연이겠지요.

게다가 이 친구 만나면 항상 즐거웠어요. 항상 늦게와서 처음에 열받는거 빼고는 ㅎㅎㅎ

대신 지각병때문에 1년에 두세번 이상 만나는건 무리네요. 포기한다고 하는데도 스트레스 받아요.

내 시간도 소중하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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