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겐 언제부턴가 크리스마스가 뭐라도 해야할 듯 애들처럼 들뜨는 날도 아니었습니다만... 그렇다고 이번처럼 기분이 나지 않은 적도 없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딱히 따뜻한 축복을 빌어줄 마음이 나지 않는.  어쨌든 유통기한 지나 곤죽이 된 생크림 같은 성탄도 지나가 버리고 카드빚 같은 한파만 남았군요.  그래도 오랜만에 본 영화라 뭐라 본 척을 하긴 해야겠는데, 본격적인 리뷰를 쓸 만큼의 정리가 안 되어 느낀 점만 몇 가지 두서없이 써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가 만든 영화이기에 내용을 알아볼 생각도 없었지만 영화가 대충 어떤 줄거리 일 거라는 짐작을 안 한 것은 아닙니다. 벌써 제목부터가 포스터의 포스부터가 그렇지 않나요. 성탄전야의 전날 밤에 예매할 때만 해도 잔여 좌석이 215석이었기에, 그럼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이런 날 누가 이런 영화를 보겠나 했는데, 당일날 보니 의외로 좌석 점유율이 만석에 가까워 밤새 많이들 예매했나 보다 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영화 제목만 보고, 달콤한 프랑스 연애영화(주인공 연령대가 어떻든)라고 생각해서 왔을 법한 커플들도 제법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짐작 만큼 영화 상영 중에 나가버리는 커플들도 그 만큼 있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몇 주 전  인터넷 어느 기사에서 두어 차례 읽은 듯한 대동소이한 사건 내용과 너무 흡사하다는 점에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당시 기사를 읽으며 영화보다 먼저 관심을 가졌던 제 의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건의 기사나 영화와는 반대의 경우, 해로했거나 또는 앙숙처럼 지냈더라도 노부부 중  늙은 아내가 늙은 남편을 병수발하는 경우는 주변에서도 꽤 흔하죠. 그런데 기사화된 사건이나 이 영화 내용과는 다르게 오랜 병수발에 지친 아내가 남편을 해하는 경우는 저는 여지껏 들어본 적도 없고, 극진히 간호한다고 해서 그것이 대단한(!) 순애보로 인구에 회자되는 경우도 거의 못 봤다는 점이지요. 그것은 사뭇 당연한(?) 도리이자 어지간히 미쳐 밖으로만 나돌아다니는 당나귀 같은 (기혼)여자가 아니라면, 아녀자의 지당한 의무 중 한 가지로 유구하게도 자리매김 해온 것이지 않나요?

 

   그런데 가끔 인간극장을 봐도 그렇고, 인터넷 기사를 봐도 그렇고 병든 아내를 수발하는 남편의 사연은 별다른 특기사항이 있는 것처럼 다뤄지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사건의 기사나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듯, 아무리 사랑한다지만 그 이유로 생사의 결정권을 남편이 쥐고 있는 것처럼 연출된 것도 상당히 의문스러웠고 제 스스로 문제제기가 되었습니다만,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을 같이 나눠주실 분들이 계신지요? 실제 상황이든 영화 얘기든요.

 

   그러나 의문은 의문이고, 영화는 영화라서 지루할 수도 있다는 주변의 평은 저와는 상관이 없었고 숨소리 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서 몸을 최대한 작고 둥그렇게 말고 죽은 듯이 볼 수 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밀도였습니다. 다만 제 옆좌석에 커플 중 남자분은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이 못내 지루했는지 이리저리 몸을 비비 꼬며 안절부절 하며 경미하게 자주 저를 건드느라 저의 영화 몰입에 상당히 방해가 되어주셨습니다. 또한 지척에 있으면서도 몇 달만에 찾은 극장인데, 상영시간보다 늦게 입장했으면서 자리를 찾는 것도 느릿느릿 상체는 커녕 최소한 고개조차 숙이지 않고 스크린에 자신의 상반신 그림자를 그대로 비쳐주신 무례하고 게으른 몇몇 관객들 때문에 가장 임팩트가 강한 첫장면을 고스란히 놓친 것에 대해 아직도 분통이 터집니다.        

 

   저는 주변애서 흔히 듣는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잠시나마의 일탈로써 영화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 로맨틱 하고 달콤하거나 볼거리가 환상적인 영화에 대한 선호도 자체가 아주 낮습니다. 환상적인 영화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 말하면 모순이겠지요. 그렇다고 그것이 어느 감독님의 초기작들처럼 날것 그대로 다 보여주는 영화가 취향이라는 것은 아니고 뭐라 말하기도 힘들 만큼 잘 만든 정말 아름다운 영화에 대한 욕망이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영화가 익숙하고 편해요. 어찌보면 현실보다 더한 현실을 영화에서 보여주는데 그것을 즐기는 게 제 영화감상법이라고 하면 괴(궤)변인가요. 그리고 여전히 이자벨 위페르처럼 늙고 싶다는 소망을 빌며 새해를 맞으려고 해요. 네, 꿈은 크게 가져도 되는 거니까요.

 

    아참, 영화 끝나고 난 뒤 극장을 나와 추운 밤거리를 걸으며 저는 최측근에게 말합니다.

 그것이 만약 나의 경우라면 나는 그냥 (비싼) 요양소로 보내달라. 나는 명대로 살다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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