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는 없게 적겠지만 최대한 정보를 적게 알고 보는 편이 훨씬 더 재밌을 영화입니다. 저는 괜찮게 봤구요.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겠죠.



 - 서예지는 영화 감독입니다. 호러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죠. 이제 충무로에서 막 메이져 데뷔를 앞두고 있는데 머리 속에서 각본은 안 나오고 제작자는 시간이 없다고 압박을 하네요. 답답한 마음에 아무 소재라도 구해 보려고 별다른 이유도 없이 예뻐서? 오랜 세월 자신을 믿고 따라 준 후배에게 아무 거나 좀 그럴싸한 무서운 이야기 좀 해보라고 다그치다가 우리 감독님은 10년 전 대전 대학교 영화학과 졸업 작품 '암전'의 전설을 듣게 됩니다. 보던 관객들이 무서워서 상영관을 뛰쳐 나가고 그 중 하나는 심장마비로 죽었다나 뭐라나요. 어떻게든 그 영화를 좀 구해다 봐야 쓰것다... 라는 맘으로 그 영화를 감독한 사람을 만나지만 그 양반은 미치광이가 되어서 '차라리 종교나 가져보라구'라는 조언을 하고는 사라지고. 천신만고 끝에 그 영화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입수하지만 포맷이 되어 있네요. 이에 다시 출동한 우리 후배님은 하드 복구 프로그램을 돌려주고, 하나씩 살아나는 영상 파일들 중 첫 번째를 재생시켜 봤더니...



 - 호러 영화입니다. 동시에 호러 영화에 대한 영화입니다. 영화 제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 호러 영화 제작에 대한 영화가 되기도 하겠죠. 사실 제작 과정 자체가 큰 역할을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무심한듯 시크하게 스쳐 지나가는 소소한 디테일들을 볼 때마다 '감독 본인 경험이거나 그 바닥의 일상이겠군'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무시할 수는 없게 됩니다. 그리고 또 이야기가 극장에서 시작해서 극장에서 전개되다가 극장에서 끝납니다. 말 그대로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 이야기를 하는, 영화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는 영화인 거죠.


 그리고 또 이 영화 자체가 호러 영화잖아요. 설정 자체는 존 카펜터의 '담배 자국'을 인용한 것임이 분명하고, 클라이막스의 액션은 어떤 흉기 때문에 아주 유명한 어느 변태 호러 전문가님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구요. 그리고 영화 자체는 그냥 보통 호러(?)인데 여기서 주인공이 발견해서 재생하는 파일이 또 영화 메이킹 필름이었네요. 그래서 파운드 푸티지의 요소가 들어갑니다. 말하자면 파운드 푸티지 호러를 보는 영화 감독이 나오는 호러 영화... 뭐 이런 식으로 정말 끝도 없이 말장난을 할 수 있겠네요. ㅋㅋㅋ

 아마 이 외에도 여기저기 레퍼런스까진 아니어도 제목을 들이대며 '그거랑 비슷하지 않아?'라고 수다를 떨만한 요소들이 많이 있었을 거에요. 제가 잘 모를 뿐.


 이렇게 굉장히 여러 층위의 이야기들로 겹겹이 싸여서 돌돌 말린 모양새의 작품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류의 영화일 텐데 사실 전 아는 게 많지 않아서 이런 부분들을 완벽하게 즐기지는 못 했을 거에요.



 - 하지만 다행히도 이런 아이디어들로만 승부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꽤 준수하게 만들어진 호러 영화이기도 해요. 호러 장면들이 대부분 잘 먹힌다는 얘기죠. 긴장감도 잘 살아 있고 깜짝 놀래키는 장면들도 평범하지만 모범적으로 잘 연출되어 있구요. 클라이막스 부분의 정신 사나워지는 혼돈의 카오스 장면도 꽤 영리했던 느낌. 서예지의 캐스팅은 첨엔 좀 쌩뚱맞게 느껴졌지만 보다보면 역할에도 잘 어울리고 연기도 적당히 좋구요. 배우들의 명연기 같은 게 필요한 영화는 아니지만 발연기가 관객을 괴롭히지도 않습니다. 또... 전체적으로 만듦새도 깔끔해요. 종종 '그렇습니다. 저희는 돈이 없었어요'라는 느낌을 주는 장면들이 있긴 하지만 '하지만 우리가 돈이 없을 뿐, 능력이 없는 건 아닙니다!'라는 느낌으로 극복을 해주죠.

 한 마디로 말해서 딱히 아는 거 없어도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거. 그렇습니다.



 -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영화판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아는 게 많은 사람들.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판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들. 거기에 덧붙여서 호러 영화 매니아... 들에게 가장 잘 먹힐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아주 모범적인 영화제용 영화이기도 해요. 이런 특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을 것 같기도 한데, 동시에 또 이런 조건을 대부분 피해가는 사람들 입장에선 '나쁘진 않은데 사람들 평들만큼 재밌는 건 아닌듯?'과 같은 생각을 하게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무슨 반전이 끝내주거나 공포씬이 아주 화끈하거나 그런 영화는 또 아니거든요.

 어쨌거나 완성도는 충분히 준수하기 때문에 잘 만든 한국 호러에 목마른 분들이시라면 한 번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넷플릭스엔 없구요, 전 올레티비 vod로 봤습니다.




 - 개인적으로 '감자별'의 아름다운 추억(?) 때문에 서예지에게 늘 호감을 갖고 잘 되길 바라고 있는데... 빅뱅 뮤직비디오 출연과 '구해줘'의 성공으로 좀 뜨려나... 싶었는데 이후로 크게 잘 되는 느낌은 아직 없네요. 그래도 몸 안 사리고 인디 영화들까지 찾아가며 열심히 연기하는 걸 보면 결국 잘 되리라 믿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아주 옅은 메이크업만 하고서 삶이 칙칙한 영화 감독 역할을 열심히 하는데... 그래도 예뻐요. ㅋㅋㅋㅋ 클라이막스의 험한 장면들에서도 참 꾸준하고 성실하게 예뻐서 보다가 괜히 웃음이 나왔습니다. 뭐야 왜 저런 상황에서 예쁜 건데? 라는 생각이 자꾸만.



 - 영화 속에 대전대학교 영화 학과가 나오고 극중 교수(배우 김미경씨가 특별출연합니다)의 대사로 '우리 과는 생긴지 10년 밖에 안 됐어'라고 이야기하는데... 혹시나 해서 검색을 해보니 정말로 2009년에 생겼네요. 왠지 그럴 것 같았습니다. ㅋㅋ

 다만 2009년에 생긴 학과에서 2009년에 졸업 작품전을... 왜죠......



 - 여기까지 글 적고서 뭣 좀 확인해보려고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 봤더니 관객 평이 제 생각보다 훨씬 처참하군요(...) 거의 저주에 가까운 악평이 대부분이고 비평가들 평도 제 생각만큼 호의적이진 않구요. 흥행 성적은 무려 10만명. 네. 저는 정보를 드렸으니 판단과 결정은 여러분들께서... 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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