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요즘 당신의 과녁을 보고 재밌어서 같은작가의 방백남녀를 봤어요. 친구-의 여자친구-랑 또다른 사람이 추천해준 아티스트도 봤고요. 


 만화를 재밌게 보려면 어떤 만화여야 할까요? 이런저런 요소가 있겠죠. 한데 나는 작가니까 약간의 조건이 갖춰줘야 해요. 어차피 내가 그리지 않을 것 같은(못할 것 같은) 만화여야 재미있게 볼 수 있는거죠. 


 

 2.왜냐면 그렇거든요. 스릴러나 액션 만화...드라마를 볼 때는 괜히 라이벌 의식이 생긴단 말이죠. 보면서도 계속 '나라면 저렇게 할 텐데...'라던가 '이 작가 녀석 설마 내가 놀랄 만한 전개를 준비하고 있지는 않겠지? 그럴 리가 없어.'라면서 가드를 잔뜩 올리고 보거든요. 마치 복싱 링에 올라간 복서처럼 말이죠.


 사실 그런 자세로 안 보고 이야기를 즐기려는 마음가짐으로 보면 기분 좋게 펀치를 맞아주는 게 더 쉬운 법이예요. 하지만 잔뜩 가드를 올리고 보면 아무리 훌륭한 이야기도 '흥, 이 정도쯤은 예상했어.'하면서 놀라지 않게 되니까요. 이야기를 순수하게 재미있게 즐길 기회는 놓치는 거죠. 그러나 어쩔 수 없어요.


 어쨌든 그래요. 만화나 영화나 소설을 재미있게 보기 위한 조건은, 라이벌 의식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3.하지만 최근에 본 당신의 과녁이나 방백남녀, 아티스트 같은 건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서 재미나게 몰입해서 봤어요. 그런 만화들을 보다보면 '아 나는 사람에 대해 정말 모르는구나.' '인간에 대한 관찰이 부족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4.휴.



 5.사실 듀게에 가끔 쓰는 나의 지론은 살짝 어긋난 소리예요. 나는 초인과 초인이 대결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라고 여러 번 썼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이야기에서의 초인이라는 건 초인적인 능력을 지녔지만 마음가짐이나 방향성 같은 건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는 캐릭터를 말하죠.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인간'이어야 초인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하지만 내가 쓴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 나오는 건 초인(人)이 아니라 비인(非人)에 가까워요. 내 만화의 전개나 또는 캐릭터가 멋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봐도, 캐릭터들의 초인적인 면모가 아니라 비인간적이고 뒤틀린 면모에 점수를 주고 있고요. 


 생각해보면 그래요. 초인에 대해 묘사하려고 해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죠. 어떤 사람이 슈퍼파워를 얻으면 어떻게 될 것 같다...라는 유추를 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요즘 예전에 그렸던 만화를 가만히 보니 내가 쓴 이야기에는 껍데기만 인간이고 내용물은 사실 외우주에서 온 외계인 같은 놈들이 많단 말이죠.



 6.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그리거나 쓰는 이야기들은 초능력을 가지게 된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을 가지게 된 초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거죠.



 7.사실 나의 이야기가 점점 더 비인간적인 면모를 띄었던 건 일종의 반발이기도 했어요. 왜냐면 사람들이 답답한 이야기를 보면서 '고구마'라고 짜증내는 건 거기서 묘사되는 인간적인 면모 때문이죠. 찌질하거나 답답한 인간적인 면모 말이죠. 그래서 최근에는 뭔가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이 나와서 사이다를 연발하는 만화들이 양산되기도 했죠.


 하지만 역시...인간적인 면모, 또는 독자들의 공감을 잘 이끌어낼 수 있는 부분을 잘 그려내야만 엄청난 몰입감을 제공할 수 있는 거예요. 왜냐면 인간이 읽어야 하는 이야기에 인간이 안 나오면 결국 이야기는 몰입할 수가 없게 되니까요. 그러니까 인간적인 면모를 작품에 그려넣는 건 양날의 검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필요한 거죠. 이야기를 답답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잘만 사용하면 몰입감을 가진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거예요.


 물론 공감을 주는 이야기나 인간 냄새가 나는 이야기는 이미 다른 작가들이 잘 하니까 내가 굳이 그런 걸 지향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인간적인 요소들이 메인 재료는 아니더라도, 향신료나 msg정도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는 이해해둬야 할 것 같아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38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94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530
113132 코로나의 확산세가 다시 뚜렷하군요 [1] 예상수 2020.08.14 918
113131 인간이라는 동물/ 바위 [11] 어디로갈까 2020.08.14 774
113130 이런저런 대화...(삼성역) [1] 안유미 2020.08.14 434
113129 왜 영원에서 하루를 더한다는 것일까 [4] 가끔영화 2020.08.13 516
113128 유튜브;대사과의 시대군요 [5] 메피스토 2020.08.13 1066
113127 요즘 유일하게 ‘꼭 챙겨보는 예능 - ‘구해줘 홈즈’ [2] ssoboo 2020.08.13 819
113126 고스트 스토리 1981 [5] daviddain 2020.08.13 466
» 당신의 과녁, 방백남녀, 아티스트 감상...과 잡담 [1] 안유미 2020.08.13 438
113124 [바낭] 말로만 듣던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봤습니다 [7] 로이배티 2020.08.13 606
113123 대통령,민주당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겠죠? [12] 산호초2010 2020.08.13 1003
113122 강귀섭씨의 법인카드, 코레일 낙하산 [15] 겨자 2020.08.13 1161
113121 [넷플릭스] 레미제라블 25주년 라이브 영상이 있네요 [9] 노리 2020.08.13 672
113120 [바낭] 대중 음악들의 비교적(?) 아마추어 합창 커버 무대 몇 개 [3] 로이배티 2020.08.13 331
113119 [나눔의 집]에 대한 깊은 빡침 [11] ssoboo 2020.08.12 1215
113118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네요 [4] 타락씨 2020.08.12 1557
113117 씨네21: 송경원의 프론트라인(반도와 라오어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4] 예상수 2020.08.12 605
113116 [넷플릭스바낭] 과감한 짝퉁(?) 호러 '더 메이드'를 봤습니다 [4] 로이배티 2020.08.12 657
113115 영화 '결백'을 봤는데 궁금한 점... 지나가다가 2020.08.12 432
113114 [바낭]새 노트북이 좋긴 좋네요 [7] 노리 2020.08.12 840
113113 <영화>강박관념 [2] daviddain 2020.08.11 57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