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오취리, kibun, 블랙페이스

2020.08.07 17:15

Sonny 조회 수:885

http://enews.imbc.com/News/RetrieveNewsInfo/289671


저도 예전에는 "흑형"이란 표현이 차별은 아니지 않냐면서 친구랑 열심히 토론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는 그걸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죠. 그 표현은 선망과 동경을 담아서 부르는 표현이니 차별이 아니라 칭송 아니냐고 저는 떠들었고 제 친구는 토론을 중지했습니다. 그 때의 기억은 인종차별 이슈를 이야기할 때마다 제게 작은 수치를 느끼게 하는 "쌩역사" 같은 것입니다. 부끄러운 기억은 원래 굉장히 생생하게 리바이벌되서 고통을 주죠.


이제 제가 알게 된 것은, 차별의 가장 핵심은 비하도 모욕도 칭찬도 아닌 "구별"이라는 것입니다. 표준적 인간이 아닌 사람은 비표준적 인간으로 따로 인식되고 구별됩니다. 이 구분 자체를 당하는 것과 당하지 않는 것은 당하는 사람에게 감각적인 불쾌와 피로를 줍니다. 전라도 출신 사람이 요리를 잘한다고 합시다. 그럼 그에게 가장 정확한 칭찬은 "요리 잘한다!"라는 감탄일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전라도 사람은 요리를 잘해~" 라고 한다면, 그는 비 전라도 사람이 표준인 한국에서 자신만의 지역 정체성으로 구분됩니다. 요리를 잘한다는 그의 장점은 순식간에 지역 정체성에 흡수되어버리고 그는 그저 전라도 사람으로 구별되고 맙니다. 전라도 음식이 맛이 있으니 칭찬으로 그렇게 말했다는 의도를 아무리 가져와도, 그 의도를 표현하는 맥락이 "구별"이라면 그건 결국 온전한 칭찬이 될 수가 없죠. 그는 그냥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인데 그 지역적 정체성으로 구분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인간"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인종은 가장 큰 구별의 틀입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백인은 백인이라고 별로 불리지도 않습니다. 미국인, 영국인, 프랑스인, 유럽인 등등으로 불립니다. 미국에 살고 원어민 영어를 구사해도 피부색이 하얗지 않은 이들에게만 "흑인"이라는 구별의 틀이 씌워집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야? 가 아니라 흑인이야? 라는 인종적 구별부터 당하는 것이 당사자들에게 과연 유쾌한 일일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구별은 반드시 계급적으로 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남교수" "남왕"이란 말은 없습니다. "여교수" "여왕"이란 말만 있죠. 구별당하는 것 자체가 이질적이면서 정상적이지 않다는 의미를 이미 내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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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페이스는 인종적으로 가장 심하게 구별당하는 흑인이란 인종을, 얼굴 분장으로 다시 구분하는 퍼포먼스입니다. 이건 박나래가 분장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 그저 닮아보이려는 행동을 취한 것과는 아주 다른 맥락을 지닙니다. (심지어 박나래 본인도 블랙페이스로 비판받은 전적이 있습니다) 블랙페이스라는 행위가, 이 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백인이" "흑인을" "우스꽝스럽게 놀리는" 의도와 표현 아래에서 실천되어왔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미 이 행위는 역사적으로 차별이라는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의도와 무해함은 이 앞에서 무의미해집니다. 무슨 단어나 행동이든 그 자체만으로 중립적입니다. 이미 그 안에 만들어진 역사적 맥락을 따져봤을 때 차별로서 완성이 되는 거죠. "조센징"이란 단어가 딱히 비하하는 의도나 의미를 담고 있어서 그렇겠습니까? 그 단어를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멸시하면서 사용했던 단어라 그 맥락이 아직도 씻겨나가지 않았기에 이 단어는 차별의 어휘가 됩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아마 역사를 잘 모르고 아주 순수하게 어감을 좋아해서 한국인을 보고 "조센징!"이라고 웃으며 해당 단어를 말하는 일본인에게 무조건적인 관용과 포용만을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떻게해서든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당사자의 입장을 이야기하며 어떤 사람들은 분노할 수도 있겠죠. 어떤 식으로든 그 무지와 당사자에게 주는 실망감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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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오취리가 의정부 학생들의 블랙페이스를 비판한 것을 두고 대다수 사람들은 그에게 반박하며 불쾌해하고 있습니다. 이 때 의미심장한 것은 한국대중 다수의 자기중심적인 태도입니다. 자신의 의도를 계속 강조하고, 너는 우리 아시안들에게 얼마나 정의로웠냐면서 자기 대신 상대방에게 역공을 가하고, 급기야는 인종차별적인 맥락이 딱히 없었던 샘 오취리의 "웃기는 표정 만들기"를 아시안들을 차별했다면서 상대의 위선을 억지로 발명해내는 식이죠. 이 갑론을박의 형태는 결국 잘되봐야 피장파장의 오류이고 상대방의 에토스를 기준으로 발언권을 박탈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씁쓸합니다. 우리가 잘못하지 않았다, 라고 자신을 변호하고 이해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못했으면 너도 잘못이라면서 결국은 외국인에게 해당 국가의 오랜 거주자들이 권력적 횡포를 부리는 걸로 끝난다는 점이죠. 


다수에 의한 소수의 핍박, 가짜뉴스, 한국에서 돈 벌게 해줬더니 떠나라, 이런 문장들이 과연 이 사회가 토론이 가능하고 다수의 반성과 성장이 가능한 것인지 회의하게 만듭니다. 그냥 자시자신은 어쨌든 틀리지 않았고 어떻게해서든 기분을 나쁘게 하지 말라는 심각한 꼰대문화가 전국민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영어 문구와 한국어 문구의 태도가 다르다고 지적하는 것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어떻게 해도 그 핵심은 "너가 감히"라는 괘씸함입니다. 당사자인 샘 오취리 입장에서는 충분히 한국인들을 비판하고 분노하면서 개선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그 설득의 어조를 문제삼아 듣는 자신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말할 것을 요구합니다. 타인을 향할 때만 발휘되는 이 엄격함에 사회가 인간의 위선을 과연 교화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만 드네요. 일베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일베적 사고에 빠진 것은 아닌가...


https://www.youtube.com/watch?v=vw-cKB4Fm14


토니 락의 코메디 쇼입니다. 왜 오드라가 별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토니 락이 이를 미친듯이 지적하면서 놀리고 기가 막혀하는지, 그 "구별"의 의미를 다들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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