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훈아 스페셜 방송이 있었습니다. 실상은 콘서트 재방이라고 보는 편이 맞고요, 앞뒤로 짧은 메이킹과 인터뷰 영상이 추가된 형식입니다. 


말들이 많길래 호기심에 한 번 보았어요. 참고로 언택트(!), 그러니까 온라인으로 우연히 유튜브에서 노래 한 곡 찾아듣다 꼼짝없이 앉은 자리에서 전체를 본 콘서트는 조용필 평양 콘이 있습니다. 화려한 무대장치같은 건 없는데 조용필 곡이 명곡이 워낙 많고 이 분 라이브야 뭐 말이 필요없죠. 반면에 나훈아 노래는 잘 안듣고, 당연 나훈아 콘은 가본 적 없고, 노래방에서도 부른 적 거의 없습니다. 근데요, 작년에 간 이승환 콘서트보다 재밌게 봤어요. 콘서트를 본인이 직접 기획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기획력이 참 좋더군요. 무대뿐 아니라 악기 편성 등으로 변화를 주는데 지루할 틈 없이 흐름이 아주 좋더라구요. 그리고 가창!!! 이 사람 일흔 셋 맞나요? 부모님을 비롯 제 주변의 일흔 넘은 어르신들 목소리와 비교해보면 목 관리 미쳤습니다. 중간에 마지막 콘서트 놀이("밖으로 나가 버리고~~~~~")도 합니다. 가수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한참 젊은 저는 그렇게 소리 길게 못 뽑을 것 같네요. 


셋리스트 별로 상세 리뷰 나갑니다. 


1부 고향. 

고향으로 가는 배와 고향역을 부르는데 많이 들어본 노래이기도 한 지라 슥 몰입이 되더군요. 이렇게 옛날 레파토리로 가려나 싶은데 물레방아 도는데를 과거의 자신과 부릅니다. 넷킹콜 나탈리콜인 것이냐. 이어서 가요무대의 그 김동건 아나운서가 나와서 나레이션을 합니다. 이거 생각 외로 좀 찡하더라구요. 김동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명자라는 노래에서 '반짝반짝'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근데 아, 이 의태어의 느낌을 이렇게 살리나 싶어 감탄했습니다. 이건, 노래 들어보시면 알 거에요. 그리운 고향, 홍시로 노래는 이어집니다. 중간중간 비춰주는 러시아 할머님들 사뿐사뿐 춤추시는 게 넘 귀여웠다는.  '홍시'라는 노래는 울 엄마 들으면 울컥 하겠다 싶더군요. 엄마가 그 시절 자식들 위해 고생고생한 외할머니 얘기를 몇 번 한 적 있는데 노래 가사랑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가 비슷해서요. 명자와 홍시에서 하림이 하모니카 세션을 합니다. 참고로, 하림 콘서트도 무척 재밌고 좋습니다. 아프리카 여행을 컨셉으로 한 콘서트에 갔었는데 노래로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거여서 무척 좋았어요. 노래도 물론 좋고요. 


2부 사랑. 

아담과 이브사이. 들어본 노래였는지 멜로디가 익숙하군요. 편곡으로 들어간 랩이 잘 어울렸던 것 같진 않구요. 다음은 기타 반주의 무시로. 요건 좋아하는 노래라 즐겁게 들었습니다. 이어 뮤지컬 컨셉으로다가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란 신곡 발표. 노래 자체도 뮤지컬 넘버 느낌입니다. '웬수'라는 곡에서는 마임이스트 고재경이 나오더라구요. 근데 이 무대는 감점. 한국 탑 마임이스트를 불러다놓고 나훈아에 집중하느라 원경으로만 고재경을 잡는 카메라는 뭐며, 한 쪽 구석으로 모는 무대 배치는 또 뭔지. 중앙에 높이있는 무대를 만들어줘서 움직임을 제대로 보여주든가 카메라로 첨에 고재경 마임을 1-2분 할애해서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나훈아 노래로 넘어가게 하든가. 좀 너무했어요. 

18세 순이. 이 노래도 들어본 분들 있으실 거에요. '가야해 가야해 나는 가야해. 순이 찾아 나는 가야해~~' 이 노래를 온전히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는데 언제 발표된 곡인지는 몰라도 가사가 좀 슬프던데요. 순이가 안됐어요 ㅠ  반면에 노래는 또 신나고. 그래도 노래를 여기까지 듣다보니 깨달아지는 게 있었어요. 나훈아 노래에는 '오빠'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요. 뒤로 가서도 나오지 않더군요. 콘서트에 등장하지 않은 노래중에 '오빠'라는 말이 나오는지는 몰라도요. 그리고 나훈아가 가사를 참 잘 쓴다는 생각이. 가사가 평이하면서도 공명있게 쓴다고 해야 하나. 거기다 남성 트롯가수들의 전형적인 허세쩔거나 자기 연민 가득한 남성 화자와도 거리가 좀 있구요.

무슨 팝송인가 부른다음에 그 유명한 호텔 캘리포니아 라이브 컨셉으로다가 갈무리 열창. 그리고 전체 콘서트 중에 가장 초집중되었던 무대가 이어졌습니다.  심수봉의 비나리를 부르는데 와, 진짜 이건, 정말, 끝내줬어요. 이어진 영영 무대도 좋았구요. 


3부 인생.

신곡은 건너 뛰고 문제의 테스형! '너 자신을 알라' 부분에서 빵 터졌습니다. 다음으로 '공'을 부를 때 그제야 시간 확인했네요. 1시간 30분 지났더군요. 아버지들 응원한다고 '남자의 인생'이란 노래를 불렀는데 제 맘대로 제목을 다시 짓는다면 '자차 없는 남자의 인생'이라고 하겠습니다. 가사 디테일이 빵 터져요. 광화문역에서 봉천역까지 지하철 2번 갈아타고, 홍대에서 쌍문동까지 서른 아홉 정거장이라고 하는군요. 노래 가사에 따르면요. 그 다음 팔자라는 노래에서 슬슬 지쳐가던 와중... 이게 왠 헤비메탈. 밴드 보컬 그로울링이 ㄷㄷㄷ 찾아보니 메써드라는 쓰래쉬 메탈 밴드더군요. 그 씬에서 상당히 인정받는 밴드같던데 한번도 못들어본 밴드여서 메탈 씬에 관심끊은지 오조 오억년의 세월이 속절없이 흘렀음을 실감하였습니다. 아, 그리고 여기서 문제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터트리는 불길이 등장합니다. 


나훈아는 가창의 완급조절이 진짜 예술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어 몰랐던 게, 이 양반이 상당히 미성이더라구요. 일흔 셋에 저 미성이 나오다니. 울 아부지만 해도 가래 끓는 소리 내시던데; 하여간 신승훈과 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신승훈도 미성이고 노래 되게 편안히 부르는 것 같지만 실제론 안 그렇잖아요. 나훈아도 그런 과인듯. 생각보다 구성진 꺾기는 별로 없었고, 트롯 특유의 피 토하듯 하는 과잉도 없어서 좋았습니다. 완급 조절에서 제가 좋아하는 국악인인 김용우도 떠올랐어요. 찾아보니 나훈아도 민요를 부른 앨범이 있네요. 한 번 들어봐야 겠습니다. 


솔직히 CG는 그냥 그랬습니다. 퀄의 문제라기보다는 감각이 살짝 구린 느낌. 일테면 황금 용 같은 거;; 또, 관중없이 공연하느라 무척 힘들었다고 하는데 반지의 제왕의 이안 멕켈렌 옹이 떠올랐어요. 솔직히 이안 옹이 더 힘들었을 것 같긴 한데 영화와는 다르게(근데 CG 상대로 연기하는 건 또 다른 거죠) 무대 예술하는 사람들은 관객이 공연의 한 요소다보니 관객이 없는 걸 굉장히 힘겨워하긴 하더라구요. 비대면 시대의 온라인 공연 예술은 어떤 방식이 좋을까, 그린 스크린에서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지 않을까란 생각도 잠깐. 하지만 CG값이 너무 많이 들겠죠? 


추가된 인터뷰에서 kbs 제작국장이 어떤 가수로 남고 싶냐고 물으니까. 본인은 흘러가는 유행가 가수라며 흘러갈 뿐이지 뭐로 남겠단 생각은 안 한다, 그런 질문 마시라 하는군요. 오오, 가황..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뭐 이런 말도 떠올랐...  저런 게 가오란 거겠지? 란 생각과 함께 말이죠. (돈도 많아 조케따.) 그나저나 나훈아 비나리는 제발 음원 좀 내줬으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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