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장애

2022.04.06 23:07

Sonny 조회 수:517

저는 카톡을 하면서 가끔씩 장애를 일으킵니다. 누구나 저지르는 오타죠. 아마 평균에 비해 유난히 두껍고 넓적한 손가락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남들보다 한 서너배 정도는 오타를 자주 내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친구 이름을 부르면서 (예를 들어) '듀나야' 라고 하려던 게 '듀나여' 라면서 중세시대 말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저 자신도 좀 어이가 없더군요. 갑자기 허공의 근엄한 목소리로 음성변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외에도 오타는 무지하게 많이 냅니다. '젭라'나 '오내지' 같은 건 그냥 일상어 수준으로 끼어듭니다. 드립치기 좋아하는 사람이랑 이야기를 하면 여지없이 먹잇감을 던져주고 말죠. 그게 그렇게 재미있나 싶기도 하지만요.


오타를 지우고 다시 쓰면 또 오타가 나서 또 지우는 과정을 몇번만 반복하면 좀 피곤할 때도 있습니다. 왜 나는 이 간단한 '점심'을 못써서, '그러는거야'를 '그러눈고야'라고 써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인가 하고요. 제가 아무리 주의를 덜 기울이는 성격이어도 맞춤법은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이상을 이루려면 남들보다 몇배나 더 신경을 써야한다는 게 또 스트레스입니다. 이게 제 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하냐면 그건 또 아닙니다. 원래 카톡을 그렇게 즐기지도 않고 오타가 나면 안되는 카톡을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것도 아니라서요. 그래도 역으로 그런 스트레스가 따라붙습니다.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지만, 왜 남들이 다 즐기는 일상을 저는 이렇게 끙끙대며 누려야하는 것인지...


문득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아마 카톡이 음성으로 이뤄지는 대화였다면 저는 정말로 사회적/의학적 장애를 진단받았을 것입니다. 제 카톡의 오타가 모조리 발음이 되어 음성으로 즉각 상대방에게 전달이 된다면 저는 아마 말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으로 분류가 되었겠죠. 제가 원하는 만큼의 정확하고 일반적인 언어표현을 제가 하지 못하니까요. 어쩌면 말을 더듬는다거나 특정발음이 유난히 뭉개지는 그런 "문제가 있는 사람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다만 저는 운이 좋아서 채팅 언어에서의 제 불편이 불능으로 간주되지 않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크게 제 오타를 신경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정상성을 어느 정도 확신하니까요. 채팅은 저렇게 해도 아마 직접 소리내서 말을 하는 건 훨씬 더 정확할거라는, 음성언어의 권력이 훨씬 더 큰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장애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이 모종의 이유로 겪는 불편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우리는 너무나 많은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죠. 어떤 사람들은 이런 불편함이 있으니 이들은 '우리'보다 더 못하고 약하다는 그런 생각. 아마 누가 제게 카톡의 오타를 이유로 그런 식의 생각을 했다면 전 정말 언짢았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비정상'으로 분류되며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낮은 계급으로 간주당하죠. 장애는 결국 사람에게 달린 딱지가 아니라 아직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불편이 다만 신체적 신호로 나타나는 게 아닌지. 저부터도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덜 파렴치해지긴 해야겠죠. 지금 제가 보는 듀나게시판의 왼쪽에는 수화를 쓰는 신이 나오는 영화 이터널스의 광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91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443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3294
119489 [넷플릭스바낭] '동사서독'의 막장 개그 자매품, '동성서취'를 봤습니다 [15] 로이배티 2022.04.08 817
119488 디즈니 DVD/블루레이 한국 출시 종료 [2] maxpice 2022.04.07 520
119487 [아마존프라임] 도대체 난 지금 무엇을 본 것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다른 곳으로부터 온 급보'를 봤습니다 [2] 로이배티 2022.04.07 630
119486 마틴 에덴으로 인한 개꿈 [1] daviddain 2022.04.07 303
119485 펜데믹의 장례식장 풍경 [7] soboo 2022.04.07 963
119484 기사 몇개(한동훈 무혐의, 출산기피 부담금 등) [8] 왜냐하면 2022.04.07 995
119483 [퀴즈] ' 우리' 의 사용법이 다른 것 하나는 [15] 2022.04.07 467
119482 80년대 [1] 가끔영화 2022.04.07 270
119481 메트로 2033 리덕스 (2010) [4A 게임즈] catgotmy 2022.04.07 198
119480 Nehemiah Persoff 1919 -2022 R.I.P. 조성용 2022.04.07 175
119479 조축뛰는 아조씨 [4] daviddain 2022.04.07 396
119478 자연에는 선악이 없다지요 [2] 낙산공원 2022.04.07 431
119477 (농담질) 한국에 관심 많은 dpf [11] 어디로갈까 2022.04.07 640
» 카톡 장애 [2] Sonny 2022.04.06 517
119475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영화와 소설 바낭 [7] 산호초2010 2022.04.06 482
119474 우크라이나 전쟁 우울하네요(끝없어 보이는 전쟁) [5] 산호초2010 2022.04.06 823
119473 리라꽃 의식의 흐름 [8] 2022.04.06 503
119472 의료민영화 시작 [8] 마크 2022.04.06 922
119471 파친코 시리즈 지금까지 [3] Kaffesaurus 2022.04.06 744
119470 나이키 광고 하나 [6] daviddain 2022.04.06 46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