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와 골프, 부동산

2022.06.09 03:57

안유미 조회 수:827


 #.골프라는 운동-이라기엔 레저에 가까운-은 재밌을까요? 나는 라운딩을 나가본 적은 없지만 골프는 골프 자체로 꽤 재밌지 않을까 생각해요. 스크린골프나 미니 게임만 해봤지만 골프채를 휘둘러서 비거리를 뽑는 느낌, 조그마한 홀컵 안에 골프공을 집어넣는 느낌이 재미있긴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세상에는 골프 자체를 즐기는 건지 골프를 치는 자신을 전시하려고 골프를 하는 건지 의심스러운 사람이 많긴 해요.



 1.요즘 인터넷에 허세에 관한 글이 많길래, 보니까 부동산 유튜버가 허세를 부리지 말라고 설교하는 유튜브가 있더라고요. 그 유튜버는 '왜 요즘 골프가 유행인가?'라는 테마에서 시작해 '골프라는 운동은 허세를 부리기에 가성비가 매우 좋은 운동이기 때문에.'라는 결론을 내더라고요.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아요. 일단 골프를 치기 위해 골프클럽 장만하고 골프웨어좀 사면 그 다음부터는 골프 라운딩 비용만 들거니까요. 뭐 중간중간 레슨도 좀 받고 이런저런 가외 비용도 있긴 하겠지만.


 다만 요즘 널리 쓰이는 '허세'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허세가 아니라 '과시'정도의 의미에 해당하겠죠. '없는 것을 있다고 거짓말하는'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있다고 하거나 조금 있는 것을 부풀려서 과시하는 것'이 허세라는 의미로 정착되었으니까요. 조금 더 무난한 용어를 고르자면 '플렉스'정도의 단어가 있겠네요.



 2.그 유튜버는 허세의 티어를 바디플렉스-파인다이닝-명품-골프-시계-차-집-인테리어-가구 순으로 놓더라고요. 한데 그런 식으로 기준을 잡는다면 허세의 티어 1위는 도박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인테리어나 1억원짜리 가구는 무언가 남는 게 있는데 1억원짜리 도박판은 그 순간이 지나가면 사라지니까요. 최고의 돈지랄이죠.


 그러나 문제는 도박을 하는 건 sns에 올릴 수 없는 영역이예요. 인스타를 아무리 뒤져봐도 카지노에서 칩 쌓아놓고 인증을 하는 건 별로 없거든요. 그리고 유흥도 인증을 하기에는 너무 음지의 영역이고요. 그리고 인증을 해봤자 일반인들이 저기 쌓여있는 칩이 얼만지, 저기 올라가있는 술이 얼만지 잘 와닿지 않고요. 그러니까 도박 같은 건 남들에게 이해받을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인스타 허세로 기능하지 않는 거죠. 사실 도박에 그정도 돈을 들이붓는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의미의 인정욕구를 추구할 리도 없지만요. 



 3.어쨌든 그 부동산 유튜버는 골프 치지 마라...그럴 떄가 아니다...연봉 3억쯤 되면 쳐라. 돈 안모으고 골프 치면 집 못산다...뭐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하지만 글쎄요. 사람이라는 게 오직 부동산을 사기 위해 사는 건 아니잖아요? 허리띠를 졸라매고 하기 싫은 걸 참으며 오직 집...집 하나를 사기 위해 살아야 한다? 그건 힘들고 꿉꿉한 일이예요.


 물론 30년 뒤에는 그 유튜버의 말이 옳을 수도 있겠죠. '2030(30년 전)들아, 내가 욜로 하지 말라고 했지? 하하하!'라고 외칠 수도 있을거예요. 그러나 부동산 한 채를 사기 위해 레저를 즐기고...사람들과 어울리고...그걸 인스타에 올려서 좋아요를 받고...하는 젊은 날을 포기하고 그냥 숨쉬면서 살아야 할까? 그건 글쎄요.



 4.휴.



 5.자신이 보유한 집...'자가'라고 하는 건 좋은 것이면서도, 그 부동산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소유자가 누릴 수가 없는 자산이예요. 왜냐면 사람이 언제 죽을 지 알 도리도 없고, 그건 마지막 날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는 물건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본인 소유의 집'이라고 하는 건 결국 자신이 점유만 하고 있다가 '누군가에게 물려주거나 넘기기 위해'존재하는 물건인 거죠. 비싼 돈 주고 사봤자 그 집을 소유하고 있는 자기자신이 그것의 재산가치를 온전히 누릴 수가 없는거예요. 왜냐면 팔아서 쓸 수가 없으니까요.


 자신이 사는 집을 정말로 매각하고...그 돈으로 무언가를 도모하는 결단을 내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겠죠.



 6.어쨌든...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자신의 부동산이라는 건 피땀 흘려 돈모아서 사기엔 정말 힘든 물건인데, 그렇게 힘들여서 사봤자 온전히 자기자신의 것도 아니라는 거죠. 


 물론 이것도 트렌드와 메타에 따라 바뀌긴 해요. '집을 사는 건 돈낭비다.'라고 외치는 선동가도 있죠. '그래도 자기 집 하나는 일단 있어야 한다.'라고 외치는 선동가도 있고요. 그리고 사람에 따라 걍 월세나 전세 내고 살려는 사람도 있고 무조건 자기 집은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는 사람도 있을거고요.


 어쨌든 그 부동산 유튜버는 '무조건 돈 모아라' '부동산 사라' '허세 부리지 마라'라는 말을 반복하더라고요. 그야 그가 하는 컨텐츠의 특성상 그런 말을 해야만 하겠지만요. 하지만 위에 썼듯이 사람은 부동산 하나 사려고 돈모으는 기계가 아니예요.



 7.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건 나도 잘 모르죠. '경제적으로 자유롭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또는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잘 모르니까요. 


 확실한 건 사람에게는 늘 욕망이 있다는 거예요. 욕망...파인다이닝 가서 사진찍고 인스타에 올리고 싶은 욕망, 골프를 치고...골프를 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망, 벤츠 사고 싶고 포르쉐 사고 싶은 욕망, 비싼 아파트 사서 슬쩍 흘리고 싶은 욕망, 비싼 가구를 사서 인스타에 올려 찐부자 플렉스를 해보고 싶은 욕망. 


 유흥을 하러 가는 것도 욕망이겠죠. 유흥이나 도박은 비록 인스타 같은 양지의 sns에는 자랑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강하게 플렉스할 수 있으니까요. sns는 전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신 농밀하지 못하지만 유흥이나 도박판에서 돈 많이 쓰면 그곳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큼은 농밀하게 어필할 수 있거든요. 



 8.어쨌든 파인다이닝도...골프도...유흥도...이런 것들은 목적이 아니라 '매개체'라는 거죠. 사람에게 다가가고 사람들에게 과시하려고 하는 거니까요. 내가 경험한 골프는 분명 재미있지만 재미있다는 이유로 할것같지는 않거든요. '골프를 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나 '골프를 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하는 거겠죠. 겸사겸사 인스타에도 좀 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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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보니 신라호텔 망고빙수가 8만 3천원으로 올랐어요. 내가 여러분에게 사주고 싶지만...요즘엔 별로 성공을 못해서 힘드네요. 혹시 나한테 망고빙수 좀 사줄사람 없나요? 샴페인도 같이 사주면 좋고. 제기랄. 시원한 빙수에 차가운 샴페인을 쭉쭉 들이키고 싶네요. 


 사는 것도 지겹네요. 하지만 열심히 살아야죠. 내가 열심히 살았으면 이 나이쯤엔 회사 돈으로 망고빙수랑 샴페인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싶어요. 내 돈 내고 망고빙수랑 샴페인 사먹어봐야 뭔 재미겠어요. 


 하지만 열심히 살지 않았으니 나에게 법인카드를 주는 회사도 없는 거죠. 전에도 썼지만 내가 내 돈 쓰고다니면서 먹고 마시는 게 가끔은 처량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아주 작은 거라도 누가 사주면 고맙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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