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일 때문에 외국으로 떠난 뒤, 거북이 밥주는 걸 유일한 삶의 의미로 삼고 혼자 살고 있는 23세의 가정주부 스즈메는 어느 날 전봇대 밑에 '스파이 모집'이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발견합니다. 호기심에 이끌려 포스터에 붙은 전화번호로 연락한 그녀는 엉겁결에 어떤 나라의 스파이로 채용되지요. 하지만 흥분과 스릴을 기대했던 스즈메에게 넘겨진 임무는 '될 수 있는 한 튀지 않고 평범하게 살며 기다리기'입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냐고요? 물론 말이 안 되지요. 하지만 의미는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지루할 수도 있고 흥미진진할 수도 있거든요. 빨래한 이불을 말린다는 단순한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피할 수 없는 일상의 과정이라면 지겹죠. 하지만 바로 같은 일이 중산계층 일본인의 평균을 절묘하게 흉내내는 행위라면? 그건 스파이 행위일뿐만 아니라 하나의 예술이고 철학적인 사색의 과정입니다.


스즈메의 스파이 임무는 결혼 이후 삶의 의미와 꿈을 잃은 젊은 전업주부의 삶을 돌이켜보는 과정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욕망이나 기대와는 상관없이 평균적이고 따분한 일상으로 몰리는 일본 대중의 초상을 살짝 뒤집어 그리는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그건 냉소가 섞이지 않은 자조일 수도 있고, 조작된 대리만족일 수도 있지요. 스즈메와는 정반대인 박진감넘치는 삶을 사는 동창 쿠자쿠의 묘사나 평범하기 그지 없어 보이던 사람들이 스파이로 등장하는 후반부를 보면 후자의 느낌이 강합니다만.


영화는 코미디를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과장과 삼가말하기죠.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일본 코미디의 도구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외국의 스파이들이 음모를 꾸미고 어망에 시체가 밀려와도 어느 누구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필요 이상으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덤덤함 자체가 코미디의 도구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코미디로서 영화는 적당한 수준으로만 성공했습니다. 과장된 설정과 덤덤한 태도의 대조는 언제나 재미있지만, 영화는 그 기교를 성공시킬만큼 완벽한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지는 못해요. 농담을 하는 동안 계속 카메라 뒤에서 킥킥 거리는 스탭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런 농담이라면 설정을 아주 치밀하게 만드는 편이 더 좋죠. 단순히 '우린 외국의 스파이인데 널 고용하겠어! 끝!'의 설정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밀고 간다면 '나는 농담을 하고 있어!'라고 고함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마임으로. 아까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덤덤한 작품이니까요. (06/11/28)


★★☆ 


기타등등

이 영화에서는 우에노 주리가 조용한 가정주부로, 아오이 유우가 요란한 삶을 사는 괴짜로 나오는데, 배우들의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어서 뭔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물론 스즈메 역에는 우에노 주리 쪽이 더 잘 맞아요. 이 사람은 정말로 평범해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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