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걸 Bad Girl (1931)

2019.12.10 00:20

DJUNA 조회 수:2663


[배드 걸]은 프랭크 보재기의 1931년작입니다. 비냐 델머의 1928년작 동명 소설과 그 소설을 델머와 브라이언 말로가 각색한 희곡이 원작이에요. 이 영화로 보재기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각본가 에드워드 버크는 각색상을 받았고요.

웨딩숍에서 모델로 일하는 주인공 도로시 헤일리는 친구 에드나와 함께 코니 아일랜드에 놀러갔다가 배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라디오 가게 직원인 에디 콜린스라는 남자를 만납니다. 별로 좋은 분위기에서 만난 건 아니지만 둘은 가까워집니다. 어느 날, 도로시는 에디의 집에서 놀다가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는데, 보수적이고 성격 안 좋은 오빠가 어떻게 나올까봐 걱정하자 에디가 청혼을 합니다. 두 사람은 다음 날 결혼하고, 도로시는 10주 뒤에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어리둥절하실 거예요. 왜 제목이 [배드 걸]이지? 이 영화에는 나쁜 여자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아요. 나쁜 남자들은 좀 있죠. 도로시에게 추근거리는 남자들, 동생의 행실을 비난하는 도로시 오빠. 하지만 이 영화의 여자들 중 어느 누구도 '배드 걸'은 아닙니다.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는데, 원작 소설에서 도로시는 혼전 임신을 한 모양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눈엔 행실이 나쁜 '배드 걸'이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배드 걸]은 프리 코드 영화지만 각색 과정 중 자체 검열이 있었던 모양이죠.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 초가 배경인, 진짜 옛날 작품이지만, 영화는 의외로 현대적입니다. 무성영화 시절의 보재기가 만든 [제7의 천국]이나 [거리의 천사]에 나왔던 관습적이고 과장된 멜로드라마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엄청나요. 영화의 이야기가 벌어지는 1920년대 뉴욕은 [제7의 천국]의 파리나 [거리의 천사]의 나폴리와는 달리 현실 세계의 공간입니다. 직장에서 자기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을 놀리고 욕하는 도로시의 대사 같은 건 요새 한국어 트위터에서 따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거든요. 임신 이후 도로시와 에디가 하는 걱정은 헬조센을 사는 젊은 커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과연 이런 경제적인 상황에서 아기를 낳는 게 옳은 일일까? 과연 우리가 아이를 키우며 잘 살 수 있을까?

영화는 후반부로 가면 좀 감상적이 됩니다. 에디가 임신한 아내를 위해 권투로 돈을 벌고 산부인과 의사를 찾아가 하소연 하는 장면 같은 건 좀 과잉이에요. 후반부의 소동도 극적인 효과를 위해 쥐어 짠 것 같고요. 하지만 그래도 두 주인공의 고민은 여전히 현실적이고, 영화는 이들에게 쉬운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애를 낳으면 다 좋아져' 따위의 쉬운 답은 없어요. 애를 키우는 건 여전히 힘들고 결혼생활도 쉽지 않으며 주변의 모든 커플이 온 몸으로 이를 경고하고 있지요. 관습적인 해피 엔딩은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을 보는 영화의 시선은 따뜻합니다.

코미디로도 꽤 재미있습니다. 도로시와 에디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렇게까지 의사소통이 잘 되는 사람이 아니에요. 에디가 좀 눈치없고 꽉 막힌 남자이기 때문에 더 그렇죠. 선의에 기반을 둔 이 두 사람의 대화가 계속 어긋나는 광경엔 심술궂은 재미가 있습니다. 여기에 도로시의 단짝 친구이고 에디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 에드나가 끼어들면 리듬이 상당히 좋은 코미디의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여러 모로 괜찮은데, [제7의 천국]이나 [거리의 천사]처럼 '시!네!마!'를 외치는 작품은 아닙니다. 얌전한 카메라 움직임과 편집은 무성영화 시절 화려한 걸작을 찍은 보재기의 작품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그 동안 보재기는 꽤 많은 유성영화의 경험을 쌓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대사와 배우 위주의 영화에서 이전의 테크닉을 과시할 정도는 아니었던 거죠. 하긴 [배드 걸]을 [제7의 천국]처럼 찍었어도 이상했을 거예요. 각기 맞는 스타일이 있는 거니까. (19/12/10)

★★★

기타등등
1940년대에 [맨해튼 하트비트]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다고 합니다.


감독: Frank Borzage, 배우: Sally Eilers, James Dunn, Minna Gombell, Claude King, Louis Natheaux, Sarah Padden, William Pawley, Charles Sullivan, William Watson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21635/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8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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