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계단 The Spiral Staircase (1946)

2020.08.21 20:59

DJUNA 조회 수:790


오늘 영화는 로버트 시오드막의 1946년작 [나선계단]입니다. 이 영화는 거의 10년째 리뷰를 미루다가 드디어 쓰게 되네요. 코로나 방콕 시대라 가능했지요.

영화의 시대배경은 1906년입니다. 버몬트의 시골 마을이 배경이예요. 동네 호텔의 무성영화 상영장에서 시작하는데, 이건 상징적입니다. 관객석에 앉아있는 이 영화의 주인공 헬렌은 혼자 무성영화 캐릭터거든요. 어렸을 때 입은 심리적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합니다.

무성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정체불명의 살인범이 호텔로 들어와 여자 한 명을 살해합니다. 이 마을에서 벌어진 세 번째 연쇄살인이에요. 이 살인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살해당한 여자들은 모두 장애가 있거나 얼굴에 흉터가 있습니다.

헬렌은 근처의 대저택에서 하녀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 집에는 환자인 워렌 부인과 두 아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 동생인 스티븐만 친아들이고, 큰 아들인 대학교수 알버트는 남편의 전처가 낳았습니다. 그렇게 사이가 좋은 집안은 아니고, 워렌 부인은 자꾸 헬렌을 저택에서 내보내려고 합니다. 다행히도 근처에 사는 의사인 페리 박사가 헬렌을 좋아하고 있지요. 헬렌과 관련된 멜로드라마가 전개되는 동안 우린 그 집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연쇄살인마가 저택에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원작이 있습니다. 에셀 리나 화이트라는 영국 작가의 1933년작 [Some Must Watch]예요. 비슷한 제목 때문에 메리 라인하트의 베스트셀러 [The Circular Staircase]와 헛갈릴 수 있는데, 그 작품, 정확히 그 작품을 희곡으로 각색한 [The Bat]의 각색물들은 따로 있습니다. 하지만 클라이맥스의 나선계단은 라인하트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게 맞대요. 영화화되면서 동시대 영국의 시골이 20세기 초의 미국으로 바뀌었고요. 그리고 영화에서와는 달리 원작의 헬렌은 장애가 없습니다. 그 결과 원작과 영화는 살인마의 동기가 조금 달라요.

요새 관객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이 영화가 한동안 지나치게 많이 나왔던 연쇄살인마 스릴러의 초기 버전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최초는 아니에요. 히치콕의 첫 작품인 [하숙인]도 연쇄살인마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이후 이탈리아 지알로나 슬래셔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몇몇 어휘들이 발견되어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숨어서 희생자를 훔쳐보는 살인마의 눈 같은 것 말이죠. 이 눈이 감독 쿠르트 시오드막 자신의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르젠토 영화의 검은 장갑 살인마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크게 보면 호러보다는 음산한 대저택을 배경으로 한 가난한 여자가 주인공인 고딕 멜로드라마에 가깝습니다. 호러 파트는 앞뒤에만 나올 뿐이죠. 하지만 추리 파트는 조금 더 치밀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살인사건과 별 상관없는 멜로드라마의 일부처럼 전개되던 이야기들이 나중에 보면 다 범인의 정체와 동기를 가리키고 있었다는 식입니다. 그 정체가 엄청나게 놀랍지는 않지만요. 범인은 남자인데, 이 영화에서 비중있는 남자는 별로 없거든요. 그리고 스토리를 만들려면...

헬렌은 소위 HIBK(Had I but known)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원작보다 훨씬 보호욕구를 불러일으키게 디자인된 캐릭터이기 때문에 현대 기준으로 보면 조금 갑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는 복잡한 다각관계나 남자구출자는 나오지 않아요. 그리고 헬렌을 연기하는 도로시 맥과이어의 무성영화 연기가 정말 좋거든요. 말을 못하기 때문에 쉽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설정도 영화적으로 아주 잘 써먹고 있고요. 그 외에도 대체로 이 영화는 여자배우들의 연기와 앙상블이 좋습니다. 그 중에서도 워렌 부인으로 나오는 에셀 배리모어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올랐지요.

무척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잔뜩 받은, 일그러진 빛과 그림자의 게임이에요. 고딕적이기도 하지만 필름 누아르스럽기도 한데, 이 정교한 촬영은 발 루튼 영화의 고정이었던 니콜라스 무수라카의 공이 컸던 것 같습니다. (20/08/21)

★★★☆

기타등등
1, 한동안 제작에 참여했던 셀즈닉은 잉그리드 버그먼을 주연으로 염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버그먼도 잘 했겠지요.

2. 에셀 리나 화이트의 소설 중 영화로 기억되는 작품이 하나 더 있습니다. [The Wheel Spins]. 히치콕의 영화 [사라진 여인/반드리카 초특급]의 원작입니다.


감독: Robert Siodmak 배우: Dorothy McGuire, George Brent, Ethel Barrymore, Kent Smith, Gordon Oliver, Rhonda Fleming, Elsa Lanchester, Sara Allgood, Rhys Williams, James Bell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38975/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3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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