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영화네요. 런닝타임은 고작 72분이구요. 장르는 일단... 드라마라고 할게요. 스포일러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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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딩 때 어설프게 배웠던 불어 지식으로는 쁘띠'뜨' 마망이 아닌가 싶지만 뭐 원래 프랑스어 한글 표기는 늘 그런식이었으니 패스.)



 - 8세 소녀 '넬리'가 주인공입니다. 외할머니가 죽었어요. 그리고 엄마, 아빠가 외할머니가 혼자 살던 집에 짐을 정리하러 가는 길에 동행하죠. 그러다 엄마는 무슨 일인지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아빠랑 둘이서 비어가는 집에서 심심하게 놀다가... 집 앞의 숲에서 '마리옹'이라는 동갑 소녀를 만납니다. 만나자마자 급 친해진 둘은 하하호호 즐겁게 어울려 놀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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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은 '내가 원탑 주인공이다!!'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시작하는데... 음. 별 거 없습니다. 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즐겁게 어울려 놀아요. 숲속에 나뭇가지 모아다가 집도 만들고, 같이 반죽해서 팬케이크도 굽고, 둘이서 각본을 써서 연기 놀이도 하고 아주 귀엽고도 다정하게 잘 놉니다. 그게 영화 내용의 80%쯤 돼요. 런닝타임이 72분 밖에 안 되는데 말이죠.

 다만 이 두 소녀가 저같이 안면 인식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람들 눈에는 쌍둥이로 보일 만큼 닮았고, 또 '마리옹'이 하필이면 넬리의 엄마 이름일 뿐입니다. 더 이상 설명 안 드려도 다 눈치 채실 것 같은데, 뭐 영화가 시작되고 10여분만 지나면 떨어지는 떡밥이고 자막 만드신 분들께서 초반에 한 번 아주 친절하게 강조해주시기 때문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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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이 관계가 관계이다 보니 두 소녀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 같은 건 당연히 아니긴 한데... 은근... 음... 제 뇌가 썩은 건가요. ㅠㅜ)



 - 네. 그러니까 자기랑 동갑 시절의 엄마를 만나 친구 먹은 겁니다. 그리고 그 엄마는 (넬리 입장에선) 바로 조금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어요. 환타지 설정이죠.

 그런데 영화는 그걸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슥. 하고 넘겨 버립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주인공이 어떻게 반응하게요? 딱히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놀라지도 않고 의심하지도 않고 이걸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지도 않아요. 그냥 자기 혼자 꿀꺽. 하고 받아들입니다. 다른 캐릭터들도 다 그렇고 (물론 대부분은 끝까지 이 사실을 모릅니다만) 영화 자체도 그렇습니다. 이런 소재를 취하는 보통의 영화들이라면 이걸로 웃기기도 하고 긴장감도 조성하고 찐한 멜로드라마도 조성하고... 뭐 그럴 텐데요. 이 영화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장면 연출들도 그렇습니다. 시작부터 결말 직전까지 배경에 깔리는 음악이란 게 없구요. 빈 집이나 넓은 숲에 아이 둘만 있는 장면이 거의 대부분이라 생활 소음도 거의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도란도란 말소리만 들려오는데 그마저도 차분한 목소리들 뿐이구요. 카메라 움직임이 매우 정적이라는 건 말할 것도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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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도입부에만 나왔다 별 이유 없이 사라지고 결말에 가서야 다시 나옵니다만. 다 보고나면 연출 면에서 의도가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 사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여타의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장르물보다도 훨씬 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현실의 8세가 정말로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주인공처럼 차분 & 시크하고 은밀하게 행동을 할까요. 그럴리가요. 절대 그럴 리 없죠. 차라리 호들갑을 떨고 코미디를 하고 멜로드라마를 찍는 게 현실적이에요. 설정 자체도 비현실적이지만, 그걸로 보여주고 전개시켜 나가는 방식이 훨씬 더 비현실적인 겁니다. 주인공 캐릭터는 말할 것도 없구요.


 근데 그럼 왜 이런 소재를 갖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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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렇게 크고 굵은, '가지'라고 부르기도 좀 애매한 가지들을 8세 소녀가 혼자 다 모아다가 세운 겁니다. 환타지!!!)



 - 전 뭐 이런 거 분석하고 따지는 거 전혀 못 하는 사람이지만. 결국 딸이 자기 엄마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다른 세대를 살아온 여성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구요. 왜 하필 '여성'이냐면 뭐, 그냥 영화가 그래요. 시작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남자라곤 아빠 하나 밖에 없는데, 하찮게 취급되지도 않지만 이야기의 중심 맥락에는 근접도 하지 않는 배경용 캐릭터이구요. 결국 존재감 있는 등장 인물은 주인공과 그 엄마와 그 엄마의 엄마(=외할머니)거든요. 뭐 외할머니는 직접으로 등장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만. 둘의 대화에서는 계속해서 소중하고 친근한 존재로 언급이 되구요. 뭣보다 넬리가 애초에 외할머니 바보였다는 설정이 대사로 언급이 되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결국 소원 성취 환타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자신의 엄마, 혹은 엄마 세대의 사람들과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같은 눈높이로 만나서 진정한 교류를 나누고 싶다. 뭐 이런 감독의 소망을 다룬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구요. 혹은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이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며 다가갈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소원 그 자체를 그린 영화라고도 볼 수 있겠구요.

 

 그리고 그 둘 중 어느 쪽으로 생각해도 어울리는 아주 훈훈하면서도 찡한 마무리가 기다리고 있죠. 물론 그 역시 영화의 톤처럼 무덤덤을 가장하고 있긴 합니다만. 그거야 감독님 훼이크고 실제로 영화를 보고서 그 장면에서 무덤덤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에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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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와중에 남자 캐릭터를 쓸 데 없이 쩌리로 만들어 버리지 않는 배려(?)도 맘에 들었습니다.)



 - 근데 뭐 어쨌거나... 재미가 있습니다. 그게 좀 괴상한 재미지만 아무튼 재미가 있어요.


 일단 두 소녀가 귀엽고 두 소녀가 노는 모습들이 귀엽습니다. 아마도 실제 쌍둥이를 캐스팅한 것 같은데, 일단 생긴 것 자체도 예쁘지만 연기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게 예뻐요. 연기 신동! 이런 류의 연기와는 아주 거리가 멀게 가끔은 살짝 마가 뜨는 느낌도 있고, 또 가끔은 '아. 지금 쟤들 진짜로 웃었다. ㅋㅋㅋ' 이런 느낌도 들고 그럽니다만. 어쨌든 중요한 건 참 보기 좋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무 내용이 없어도 둘만 보고 있으면 기분이 은근 즐겁구요.


 그리고... 위에서 제가 정말 단순 무식하게 정리해버린 부분 말고도 서브 텍스트가 상당히 풍부하게 깔려 있는 영화입니다. '세대를 초월한 여성들끼리의 유대!' 같은 건 그냥 가장 갖다 붙이기 좋아 보이는 걸 제가 골랐을 뿐이구요. 고작 72분 밖에 안 되는 런닝타임 속에 정말 별별 감정과 감상이 다 들어가 있어요. 만남과 이별, 성장과 성숙, 걍 사람이라면 누구나 근본적으로 피할 길이 없는 외로움이라든가... 이런 다양한 감정들이 무덤덤한 척하는 영화의 화면과 소리 속에 겹겹이 깔려서 흘러다닙니다. 그리고 그 중 몇몇은 갑작스레 스윽. 하고 들어와서 꽂히구요. 아마 페미니즘적인 시선이 기반이 되는 영화들을 싫어하는 관객들이라도 아무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이런 느낌들을 캐치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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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할머니가 엄마만큼 나이 먹었던 시절로 직접 찾아가 만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 아는 게 없어서 이쯤에서 정리합니다.

 짧은 런닝타임과 심플하고 무덤덤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 속에 참 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도 되고 저렇게 받아들여도 되고 결국 다 관객들 맘이겠지만 그 중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도 아마 잔잔한 여운 같은 게 남고, 또 생각을 하게 될만한 영화였습니다. 한 번 보는 것보다 두 번 내지는 세 번 볼 때 더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영화였지만 전 게을러서 그럴 생각은 없구요. ㅋㅋ

 다만 절대적으로 소품입니다. 환타지 설정을 깔고서도 평범한 일상을 덤덤하게 다루는 척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취향에 따라선 그냥 싱거우실 수도 있고 심심하실 수도 있어요.

 그냥 저는 참 좋게 봤습니다. 요즘 계속 절망 절망 좌절 분노 우와아아앙아!!! 이런 성격의 시리즈물들만 봐서 좀 해독(?)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고른 것치곤 넘나 적절한 선택이 되어서 스스로 뿌듯뿌듯해하고 있네요. ㅋㅋㅋ




 + 이 영화 만드신 분이 그 유명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만드는 양반이라는 건 다 보고 글 적느라 정보 확인하면서 알았습니다. 제가 이렇게나 무식합니다 여러분!!!! 그리고 저 아직도 그 영화 안 봤구요. 흠.



 ++ 덤덤한 척 하던 것치곤 클라이맥스 부분에선 꽤나 강렬하고 선명한 인상의 비주얼과 음악을 사용하더라구요. 그냥 좋았습니다. 마지막 장면도 너무 적절하게 좋았고 이후로 이어지는 크레딧과 깔리던 노래도 좋았어요. 센스 있게도 노래 가사도 자막이 나오던데, 가사도 영화 내용과 어울리게 좋더군요.



 +++ 이제 보니 듀나님께서 이 영화 얘길 하시면서 '두 배우는 아마도 자매겠죠 성도 같으니' 라는 식으로 적어 놓으셨는데, 혹시 저보다 더한 안면 인식 기능 저하가 있으신 게 아닌가... 생각하며 혼자 웃었습니다. 아니 그냥 딱 봐도 쌍둥이 얼굴인데요. 극중에서 둘이 함께 있는 걸 보고도 아무도 놀라지 않는 걸 보면서 내내 전 제 눈에만 쌍둥이로 보이는 건줄 알고 자괴감에 빠져 있었는데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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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닮아서 계속해서 옷 색감과 머리띠로 구분을 시켜줍니다만. 그래도 종종 헷갈립니다. ㅋㅋ)



 ++++ '시즌' 서비스 무료 영화로 봤습니다. 무려 '시즌 독점!' 이라고 커다랗게 박혀 있었지만... '국내 OTT 중 독점' 이란 얘기겠죠. 어쨌든 공짜로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굽실굽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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