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미미랜드

2013.10.04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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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누가 괴성을 지른다. 미미는 괴성에 차분히 귀 기울여본다. 저 괴성을 성의있게 분석해내서 미미는, 저 괴성의 흥분을 그녀 안에 바로 충분히 재현해낼 수 있는 스스로를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괴성에 이어 음악이 흐른다. 은은하게 흐르는 멜로디인데 이것이 어디에서 들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미미는 생각한다. 이 생각의 시작은 그 멜로디에 의해 바로 좋지 않은 것을 연상해낼 수 있는 스스로를 고치려는 목적이다. 그러다가 미미는 멜로디를 아주 떨쳐버릴 수 있게 조용한, 혹은 너무 시끄러워 조용하다시피 한 장소로 이동하려 한다. 피하고 보자. 피한다고 다 해결될거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무언가 견딜 수 없는 것을 피해서 새로운 전기를 스스로에게 마련해주는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효과가 입증된 행동이니까 말이다.

미미는 미미랜드에 가기로 마음 속으로 결정하고 길을 나선다. 출발 전, 미미랜드에 가는 길에는 발로 차버릴 돌멩이가 많다는 점에 미미는 잠깐 주목한다. 돌멩이는 발로 찰 때 위로 높이 떠오르지는 않고 분명 거의 수평 방향으로 휙휙 나아갈 것이다. 그러면 미미는 돌멩이의 그러한 나름의 안정된 모습을 계속 구경하고 걸으며 마음 속에 역시 안정된 무엇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미미는 실제로 많은 돌멩이들을 발로 차며 나아간다. 미미랜드로 가는 길은 험하지는 않다. 미미는 성큼성큼 걸으며 오랜만에 팔을 휘감는 노르스름한 햇살에 팔의 모든 감각을 맡겨버린다. 미미는 물론 스스로를 무언가에 맡기는 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미미는 스스로를 맡겨버리는 것이 의식을 잃는 것과 같다고 여기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를 날선 태도로 콘트롤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요번 햇살은 꽤 오랜만이라 그냥 맡겨버렸다. 햇살은 따뜻하고, 공기 안에 뭉글뭉글한 부드러움도 조금 있고, 규칙적인 돌멩이 차기도 있고, 은근 챙겨입은 녹색 가디건도 있고, 이날 무궁무진한 회색 도로 위에서 걷는 것은 미미의 마음과 맞물려 돌아갈 수 있었다.

미미랜드는 예상대로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렇지만 딱히 복잡한 요소는 없었다. 미미는 벤치에 앉아서 녹색 가디건의 풀어진 올 한 가닥을 만지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았다. 저 사람은 연한 핑크빛으로 치장된 방 안에서 살고 있을 것 같아, 저 사람은 식은 국 냄새가 나는 방 안에서 여러가지 집기들을 아주 가끔씩 정리하며 살고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는 동안 한시간 정도가 지난 것 같다. 갑자기 미미의 눈이 대놓고 반짝이며 즐거워한 것은 어떤 길죽한 남자를 보게 된 순간이었다. 미미는 그 사람이 자신의 눈빛을 눈치챌 수 있도록 순간 열심히 활발하게 눈, 코, 입, 얼굴 표정에 생동감을 순환시켰다. 그 남자는 이런 미미를 느끼고 미미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거미줄보다는 튼튼한 그러나 거미줄보다 투명한 선이 마구 연결되며 두 사람은 앞으로 한동안 서로에게 묶이게 되었다. 그러나 순간 그 남자가 일부러 지은, 조금 삐죽거림이 새어나오는 표정은 미미의 마음에, 점점 확대되는 먹물을 찍은 듯한 검은 점 하나를 만들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었어. 미미는 마음 속으로 원망하며 짐짓 실망한 듯 고개를 숙인다. 그 남자는 이런 미미를 보고 조금 놀라서 얼굴 표정을 매만진다. 그런 남자를 본 미미는 다시 마음 속의 검은 점이 줄어들고 있다고 어렴풋이 느끼며 얼굴 전체에 활짝, 마음 속 검은 점을 완전히 정복해버릴 만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아, 너무 직접적이었나. 이 미소는. 미미가 조금 후회하는 사이 남자는 미미를 지나쳐 가 버렸다. 하트 모양의 뒷통수를 앞뒤로 흔들흔들하며 미미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하도록 맡기고 가 버렸다. 미미는 평소 자신이 애정이나 반함, 미묘한 호감 등을 너무 쉽게 표현하곤 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자랑스럽지 않았고 너무 쉽게 감정 표현을 하는 습관을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날이 조금씩 어둡고 있었다. 미미는 아까 그 남자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같이 음료수 마시자고 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괜시리 그 자리에 앉아서 의미 없이 핸드폰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었지만, 날이 더 저물고 있었고 미미는 어둡기 전에 돌아가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더 어두워지면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난다 해도, 일단 그 남자에게 어두운 빛이 드리워있을 것이고, 그 어두운 남자가 미미의 집적댐에 영향을 받아 어둠 속에서 미미에게 집적대는 상상을 하면 미미는 참을 수 없었다. 미미는 집으로 돌아갔다.

미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갈색 천이 씌워진 커다란 일기장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남자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썼다. 그 남자의 흰 얼굴과 서글서글한 눈매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경험은 소중한 것이었다고, 그 남자의 쌜쭉한 표정이 그 남자의 미성숙함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그 남자의 하트 모양 뒷통수는 마음만 먹으면 그것에 완전히 빠져들어 버릴 수 있는 소중함을 갖추고 있었다고 일기장에 쓰고 있다가 미미는 아까 미미가 그냥 피해버린 멜로디를 생각해낸다. 미미는 그 멜로디를 정확하게 흥얼거릴 수는 없었지만, 멜로디가 꼭 인조잔디와 같이 까끌거리면서 멀리서 느끼기에는 미끌미끌거렸던 것을 마음 전체로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멜로디에 대해 이렇게 크게 느끼고 있었나, 멜로디를 괜히 피했나, 하고 미미는 생각했다. 미미가 그 멜로디로부터 연상한 그 무언가들은 치적치적거리는 더러운 것들일 수 있었지만 멜로디가 인조잔디의 느낌인 만큼, 멜로디는 그 연상한 무언가들로부터 좀 괜찮은 것을 다시 연상하도록 하는 지속적 힘을 미미에게 제공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생각하니 미미는 그 멜로디가 그리울 정도다. 미미는 스스로가 앞으로 연상하게 될 것에 대해 막연히 두려워하지 말고 멜로디든 뭐든 그 연상의 시작점에 몸을 맡기되 의식은 절대로 잃지 않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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