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5.

2020.04.05 04:06

잔인한오후 조회 수:539

잠 못 이루는 밤이네요, 아마도 콜라를 마셔서 그런 것이겠지만. 일상 글을 마지막으로 쓴게 3월 초였네요, 벌써 한 달 전이라니.


독서모임에서 2월을 강탈당한 기분이라고 한 지 엇그제 같아요. 그렇게 치면 3월은 아예 기억에 없는 달이 되었네요.


그런 기분이 들어요. 길고 긴 이어 붙여진 상자 속을 하염없이 걷고 있는 기분이요. 아마 밖에서 보면 뫼비우스의 띠 형태로 되어 있을 것이고. 최근 퇴근하면 밖에 나가질 않으니, 작은 원룸 사각 공간과 회사 사무실 사각 공간, 그리고 버스의 사각 공간, 잠시 타는 엘레베이터 사각 공간과 마지막으로 구내 식당 사각 공간이 마치 하나로 이어 붙여져 문을 열면 다음 공간이 나올 것 같은 메슥거림이 있네요. 사이 사이 길을 걷긴 걷는데 마스크를 쓰고 걷는, 숨쉬기의 밀폐감이 실외에 있다는 감각을 빼앗아 버리나 봅니다.


친구들에게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마치 러시안 룰렛을 하는 기분이라고. 버스에 탈 때 회전탄창에 한 발 장전, 회사에서 근무할 때 한 발 장전, 뷔페식 구내식당에서 함께 쓰는 집기를 이용하여 음식을 담을 때 두 발, 그리고 마주보며 식사할 때 마지막으로 한 발. 그걸 매일 같이 2주 뒤에 확인하게 되지요. 사실 이렇게까지 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주고 있지는 않은데, 퇴근 후 집에서 이렇다할 활동을 전혀 못하고 있는걸 보면 무의식적인 스트레스가 꾸준히 누적되고 있나 봅니다.


3월의 하루 하루들이 이리 저리 뒤엉켜 짓이겨져서 남는 것은 매일 매일의 국내, 세계 확진 증가자 추세인듯 하고. 집에서는 하는 일 없이 몸을 쉬게 하고 어쩌다 잠든 후 출근 하고. 주말에도 온종일 집에 있다가 1시간 가량 하도 답답해서 바깥 공기 조금 마시고 들어오다 보니 그 날이 그 날 같습니다. ( 가끔 애인과 함께 있으면 TV와 웹으로 코로나 뉴스 정보 리필 시간을 보냅니다. ) 이런 가래떡 같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딜 잘라내어 일상을 정리할 겨를이 없었나 봐요.


그런 와중에 꽃이 피니, 외부로부터 들어온 계절감이 시간의 단락을 받아들이게 해주나 봅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집에 있다보니, 생산적인 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졸다 깨다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 아마 내일 미뤄놨던 집안일을 할 것으로.. ) 그러다보니 어느새 6시가 되어 있었고 하도 답답해서 5분 거리의 동네 작은 공원에 나갔어요. 우습게도 이게 요즘 일상 생활의 비일상적인 경험이네요. 동네 공원은 언덕을 중앙에 두고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걷다보면 언덕을 오르는 계단길이 한 둘 있습니다. 그러나 다들 평지를 걷고 싶지 계단을 오르는걸 꺼리는데, 저도 마찬가지로 아주 오래전에 올라가 본 이후로는 올라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올라 보니, 아무도 없는 언덕 위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군요. 잠깐 벤치에 누워서 거의 떨어진 해가 질 때까지 보다 왔는데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의외로 차가운 바람이 슬근 지나가고, 여러 새들의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요즘 참새들이 엄청 오동통한데, 여기 저기 벚나무 가지를 오다니며 꽃에서 꿀을 찾아 먹더군요. 나이드신 분이 한 분 두 분 식후 산책을 하시련지 올라오시길래 얼른 자리를 떳습니다. 내일도 이른 아침 사람들 없을 때 가보고 싶은데, 지금 시간을 보니 아마도 요원하네요.


사실 제가 사는 지역은 확진 결과로는 확산세가 그리 드러나 보이지 않는 동네고, 사람들이 다들 제 풀에 지쳐 1/6 정도는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게 목격됩니다. 금요일에 버스에서 내려 식자재 마트 앞을 지나치는데 지금까지의 주말 중 가장 활기가 느껴져서 다들 지쳤구나 싶더군요. 제가 구체적인 해외 사례를 많이 찾아보고, 재생산률 등등 그렇게 따로 알아볼 필요 없는 정보들을 계속 읽고 있어서 그런지 외부의 분위기와의 격차가 심할 때 은근히 스트레스가 느껴집니다. 저만이 아니라 다들 자신보다 덜 방역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겠지요. 제게 가장 큰 공포는 현재 심각한 상태가 리포트되고 있는 국가들 수준으로 급변동이 일어나는 거구요. 이미 대구경북 사례에서 '겉으로 보기에 잠잠할 시간에 내부에서 감염이 지속되고 있었다'라는 상황을 한 번 경험하게도 했고.


회사 사람들이 저 외 2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아요. 엘레베이터에서도, 식당에서도, 사무실에서도. 한 명 정도는 평일 주말을 차별하지 않고 술 마시러 꾸준히 가고, 다른 사람들도 주말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약속을 잡아 만나는 것 같더군요. 전화가 꽤 오는 터라, 사무실에서 마스크를 꾸준히 쓰고 있기도 애매하구요. 그나마 파티션이 넓어서 큰 의미없는 안도를 하긴 합니다.


공간을 이동할 때 손을 씻고, 사무실과 집을 오가는 사이에 휴대폰을 손 세정제로 닦아냅니다. 사무실 동료들이 걸리면 나도 그냥 걸리는구나하고 그 쪽은 체념한 상태이구요. 요즘은 이런게 일상이네요.


몸의 감각_


다른 것보다, 몸에서 오는 자극을 의도치 않게 열심히 감각해서 더 힘을 빼고 있나 봅니다. 3월 한 두 주 정도, 목이 부어서 매일 같이 매우 신경 쓰였고, 아마 피로 때문에 그랬는지 서서히 아프다 서서히 가라앉더군요. 최근 한 주에는 가슴 근처의 압박감을 느끼는데, 아무래도 폐와 심장과는 상관 없이 정신적인 문제로 보입니다. 분명히 평소였다면 있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감각일텐데 괜시리 신경 쓰이는 것이겠죠. 그런데 이걸 어떻게 멈출 수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닐꺼야, 와 증상의 조기 발견과 검진, 그리고 타인에게로의 감염 방지를 위한 행동을 매 번 점검하고 있다고 할까요.


이렇게까지 몸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 힘드네요, 하하.


다들 어쨌든 평소와 다른 제약에 스트레스 받고, 어느 정도 화가 난 상태가 지속되고, 어디엔가 그 화를 표현할 길을 찾아야 하고.


다들 별일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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