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논쟁이 이어진 글(http://www.djuna.kr/xe/board/13926336)에 댓글로 적으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글이 길어져서 새롭게 하나 팠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진 논쟁의 맥락을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면, Sonny님은 한국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은 타당하며 유익하다고 주장하십니다. 그 핵심근거는 "일방적으로 한국남자는 한국여자에게 가해자"다,"남자는 여자에게 범죄를 저지르는데, 여자는 남자에게 범죄를 거의 안저지릅니다. 이 압도적인 일방성이 차별을 증명"한다. 실제로 범죄통계를 살펴보면 "강력범죄는 약 25000건이었고, 남자 가해자는 약 24000명, 여자 가해자는 약 1000명이었습니다. 강력범죄 남자 피해자는 약 3000명, 여자 피해자는 약 21000명"이다. 그럼으로 "성별은 범죄의 아주 핵심적인 팩터"다.


Sonny님은 한국남자는 잠재적 범죄자로 볼 수 있는 반면,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흑인을 범죄자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십니다(갑자기 무슬림과 흑인이 나온 이유는 제가 첫 댓글에서 "(잠재적 범죄자 논의는) 착한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 뿐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져요. 테러리스트랑 무슬림을 구분할 수 있냐, 범죄자와 흑인을 구분할 수 있냐."고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잠재적 범죄자는 한국남자에게는 적용가능한 반면, 무슬림과 흑인에게 적용 불가능한 이유가 무엇이냐, Sonny님에 따르면 "이들이 인종/국가적으로 백인들이 주류인 사회에서 마이너리티에 속하고 이미 마이너리티로서 불합리한 공포의 책임을 떠맡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즉, 한국 남성은 주류지만, 무슬림과 흑인은 소수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굳이 Sonny님의 댓글을 길게 소개한 것은 Sonny님의 댓글들이 담고있는 논리야말로 잠재적 범죄자 논의의 전형이며, 동시에 그 개념이 사용되서는 안 되는 이유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저는 Sonny님이 제시하신 통계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범죄는 남성이 더 많이 저지릅니다. 특히 강력범죄는 Sonny님이 제시하신 통계가 보여주듯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이 저지릅니다. 아마 연쇄살인자의 경우 99%가 남성일 겁니다. 범죄는 남성이 더 많이 저지르고, 범죄의 강도가 올라갈수록 남성의 비율이 올라간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Sonny님이 굳이 범죄통계를 가져오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남성이 잠재적 범죄자라는 주장은 많은 부분 저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범죄자의 다수가 남성이다라는 사실에서 Sonny님처럼 "일방적으로 한국남자는 한국여자에게 가해자"라는 주장을 도출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건 완전히 잘못된 추론입니다. '가해자 중에서 한국 남성이 다수'라는 말과 '남자는 일방적으로 가해자'라는 말은 전혀 다른 이야기 입니다. 범죄자 중 한국남성이 다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한국남성의 다수는 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범죄의 강도가 올라갈수록 범죄자 중 남성의 비율은 올라가지만, 동시에 남성 중 범죄자의 비율은 줄어듭니다. 결국 Sonny님과 잠재적 범죄자 논의는 특수한 집단의 특성에서 전체인구집단의 특성을 도출해낸다는 점에서 오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범죄자는 한국인을 대표하는 샘플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흑인의 범죄율은 타 인종에 비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을 범죄의 핵심요인으로 꼽을 수 없는 것은 Sonny님의 주장처럼 단지 이들이 소수자이기 때문 만은 아닙니다. 범죄자 중 흑인의 비율이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흑인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객관적인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흑인 인구의 다수가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럴 경우, 우리는 흑인이 고용시장에서 겪는 차별을 지금처럼 인종적 편견 때문이라고 지적할 수 없을 겁니다. 이 경우, 실제로 흑인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물론 이럴 경우에도 흑인이 범죄율이 높은 역사적/구조적 원인에 대한 지적은 가능하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흑인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낮고, 따라서 흑인이 겪는 차별을 인종적 편견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서 범죄학 내에서 인구사회적 특성으로부터 잠재적 범죄자를 직접 도출해내는 대부분의 이론들을 사라졌습니다. 


Sonny님은 흑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볼 수 없는 이유를 그들이 소수자이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된다는 당위적 명제에서 찾습니다. 이 명제에 기초하니 소수자가 아닌 남성에게는 잠재적 범죄자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는 논리가 도출됩니다. 그러나 제가 위 단락에서 적었듯이 흑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볼 수 없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 아닌 편견에 기초해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들이 소수자이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된다, 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잠재적 범죄자'는 위와 같은 이유에서 근본적으로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오류를 오류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잠재적 범죄자 논의는 특정 집단에서 인구전체의 특성을 도출한 후,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걸 다시 개별 케이스에 적용하는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개별케이스들로부터 다시 인구전체의 특성이 도출됨으로써 악순환을 낳을 수 있습니다. 범죄자 다수는 남성이고, 따라서 한국남성은 잠재적 범죄자다. 그리고 한국남성일반이 잠재적 범죄자이기 때문에 한국남성인 너 개인도 범죄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식으로요. 그리고 저런저런 한국남성 개개인이 범죄자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남성은 범죄자다. 


저는 한국여성일반이 한국남성일반에 비해 차별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일종의 구조적 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에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한국남성일반이 그렇다고 해서 특정한 한국남성개인도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전자는 사회구조적 측면의 이야기이고, 후자는 개인수준의 이야기입니다. 둘은 상호 간에 직접적으로 호환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한국남성일반은 여성일반에 비해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남성 개개인이 여성 개개인에 비해 더 많은 권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더 나아가 잠재적 범죄자 논의가 개인에게 적용될 경우, 그의 반대편에는 또 다른 한 개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가 있습니다. 


인간은 일상에서 타인을 판단할 때, 대부분의 경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과정을 통하지 않습니다. 가용한 몇 가지 범주 중에 타인을 끼워맞추는 방식으로 판단합니다. 이건 의견이 아니라, 다수의 심리학 실험을 통해서 밝혀진 사실에 가까운 명제입니다. 잠재적 범죄자 논의는 이 판단 과정에 활용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범주를 제시하고, 한 개인을 쉽게 범죄자로 낙인찍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한 개인 대 개인의 일대일의 경우라면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효율적일수도 있습니다. 즉각적인 판단을 가능케 해주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일대일의 관계로 끝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 입니다. 특정 개인을 판단하는 주체가 한 개인이 아니라 다수일 수 있고, 잠재적 범죄자라는 판단은 다수에게로 쉽게 번져나갈 수 있습니다. 


나아가, Sonny님은 남자는 잠재적 범죄자라는 게 편견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 편견의 불씨를 매일매일 제공하는 건 대체 누구입니까?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상황의 책임이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있는건데? 라는 질문은 Sonny님만의 것은 아닐 겁니다. 저는 이 편견의 원인에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성차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편견이 올바른 견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편견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찾는 이유는 편견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편견을 발생시킨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편견까지 함께 교정하기 위해서 입니다. 편견을 정당화 하는 것이 아니라 교정하는 것이 사회를 좋게 만드는데 더 큰 기여를 합니다. 


또한 제 주장이 여성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불안감의 원인을 무엇으로 파악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잠재적 범죄자 논의는 범죄의 핵심에 범죄자의 특성을 놓는 대부분의 논의가 그러하듯, 어떤 인구사회적 특성을 가진 집단의 고유한 범죄성에서 찾습니다. 여기서는 언제든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남성의 범죄성이겠죠. 그러나 제가 보기에 원인은 그런 실제하는지 입증되지도 않은 범죄성 같은 것이 아니라, 양성 간의 권력 차에서 기초합니다. 잠재적 범죄자주의자 분들이 보시기에는 그게 그거 아니냐 하실 수 있겠지만,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전자는 단지 성별 만이 문제지만, 후자는 권력 차이를 가진 모든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논의인 동시에 그 권력차에 대한 분석에 기반해서 여러 상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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