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9년작이니 32년 되었나요. 런닝타임은 1시간 52분. 장르는 블랙 코미디이고 스포일러는 없게 적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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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피가 재밌습니다. '이거 그런 영화 아니거든'.)



 - 변호사 사무실. 대니 드비토 변호사님이 고갱님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혼 상담을 하러 온 남자인 듯 하구요. 우리 변호사님은 대충 이렇게 말합니다. 일단 시간은 재지 않고 내가 이야기 하나 해 줄게. 내가 시간당 몇백 달러씩 받는 사람인데 돈 안 받고 해 줄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면 듣는 게 니 신상에 좋아. 그러니까 내 옛날 친구 중에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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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겠습니까 고갱님. 이건 액자에요. 고갱님은 그냥 앉아만 계시면 됩니다.)



 장면이 바뀌면 이미 40대 중반과 30대 중반의 나이에 대학생인 척하려고 젊게 입고 어색하게 발랄하게 행동하는 마이클 더글라스와 캐슬린 터너의 모습이 나오는데... 정말 티 나게 어색합니다. ㅋㅋㅋ 암튼 어떤 경매장에서 인연을 맺은 둘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사랑에 빠지고. 급하게 결혼을 결심하죠. 하버드 법대를 나오신 남편님은 집에서까지 일만 하며 성공을 위해 달리고, 체조 선수의 꿈을 키가 너무 자라서 접어버린 아내님은 딱히 할 일도 없으니 가정에서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며 남편 뒷바라지를 해요. 덕택에 남편은 승승장구하여 꽤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었고, 아내는 평소에 자기가 점찍어뒀던 꿈의 집을 손에 넣는데 성공하죠. 거기에서 다 함께 살며 나이도 함께 먹고 자식들도 다 키워서 대학 보내고 그러다가... (중간 생략!) 문득 아내가 이혼을 요구합니다. 난 이제 너 싫다. 조건은 단 하나, 땡전 한 푼 필요 없고 아무 권리도 필요 없으니 이 집만 나에게 달라.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내가 보인 몇몇 행동 때문에 단단히 마음이 상한 남편은 '뭐가 됐든 니가 원하는 대로는 안 해 줄거야!'를 선언하구요. 그리하야 드디어 '로즈 가문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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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절은 압축 요약본으로 휭휭 날아가고)


 - 제목이 The War Of The Roses 이고 마이클 더글라스 캐릭터의 성이 '로즈'에요. 그러니 '장미의 전쟁'이라는 번역제가 좀 아쉽기도 한데, 뭐 보면 출연 배우들이 장미 들고 찍은 사진도 있고 dvd 커버에도 장미 사진이 나오고 그러는 걸 보면 굳이 정색하고 태클 걸기도 애매하네요. 하지만 '장미家의 전쟁'도 나름 괜찮지 않나요. 둘이 일전을 벌이는 저택도 상당히 고풍스러운 게 이런 제목도 어울리거든요. 뭐 아무튼.



 - '나일의 보석', '로맨싱 스톤'으로 히트를 이어가던 3인조, 마이클 더글라스, 캐슬린 터너, 대니 드비토가 힘을 합해 만든 마지막 영화였죠. 미국에선 흥행도 많이 잘 된 걸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선 영화 잡지에서 언급되는 빈도에 비해 그렇게 흥하지는 않았습니다. 구체적인 흥행 실적은 모르겠지만 지금껏 살면서 현실 세계의 인간들과 대화할 때 이 영화 얘길 꺼내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아요(...) 심지어 티비에서도 몇 번 해줬는데 말이죠.


 근데 사실 저도 저 세 영화 중 본 게 하나도 없습니다. 가아끔씩 제목과 스크린, 로드쇼에서 보여주던 스틸 사진이나 떠올릴 뿐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이유를 알 수 없게 넷플릭스가 자꾸 이 영화를 들이밀어서 그냥 봤습니다. 이렇게 또 일생 숙제 하나를 해결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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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론 들어가면 바로 이렇게 되겠죠.)



 - 보니깐 당시에 한국에서 이게 그리 흥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영화가 상당히 독해요. 그 시절 한국인들 중 다수는 아마 이 영화의 개그를 순수하게 즐기며 편하게 웃을만한 멘탈이 구비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제 생각에 이 영화의 강력함은 대략 요즘 시국에 나와도 독한 막장이란 소리 듣겠다 싶을 정도... ㅋㅋㅋ 막판까지 가면 주인공 둘이 정말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며 우주 대폭발급 난리를 쳐대는데, 그게 하도 독해서 이야기 액자 속의 대니 드비토가 마지막 장면에서 나름 수습을 해보려고 노력하는데도 별로 수습이 안 되는 느낌입니다. 


 대신 21세기에 보기엔 오히려 괜찮은 옛날 영화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 시점에서 80~90년대 영화를 보면 맛이 순하다 못해 밍숭맹숭하다 싶은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아닙니다. 물론 이제는 이보다 독하고 자극적인 영화가 많이 있겠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순한 영화 축에 넣어줄 정도는 아닐 겁니다. 그건 분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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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 결심의 동기 : 그냥 니놈 얼굴만 보면 쥐어 패버리고 싶어져서.)



 - 일단 가장 큰 장점이라 느낀 부분은 캐릭터 구축입니다. 정말 잘 되어 있어요. 뭐 전형적인 캐릭터들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보다보면 그냥 저 둘이 왜 안 맞는지, 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수 없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착착 이해가 돼요. 그리고 둘이 싸울 때도 각자 캐릭터에 맞게 티키타카를 하며 참 보는 사람 재밌게(?) 싸우구요. 또 그런 캐릭터를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오락가락하는 일 없이 일관되게 잘 유지를 해 줍니다.


 스토리면에서는... 둘의 반짝 로맨스로 출발해서 대략 영화의 중반 지점까지 이 둘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역시 구구절절 인물의 입을 통한 직접 설명 하나도 없이도 오랜 세월 함께 하며 (겉보기엔) 무탈하게 살았던 한 부부가 어째서 특별한 무슨 '사건' 없이도 이렇게 한 방에 원수가 되었는가... 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요. 

 또 '전쟁'이 시작된 후도 전개가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막 달리다가도 중간중간 수습의 찬스가 찾아오고, 그런데 그 중요한 순간에 둘 중 누군가가 (자신의 인간적 한계에 의해) 의도치 않게 가장 나쁜 선택을 해 버리고, 그렇게 화해의 가능성을 닫아버린 채 더 격렬한 비극을 향해 달리고... 이 패턴을 반복하는 식의 전개를 통해 관객들을 나름 감정 이입도 시키고, 안타까움을 느끼게도 하면서 막판에 둘이 정말 초현실적인 레벨의 쌈박질을 벌이는 중에도 웃음과 함께 딱하단 기분이 들게 하죠.


 ...라고 적어 놓으니 뭔가 되게 깊이 있는 영화인 것 같은데. 솔직히 그것까진 아닌 것 같구요. ㅋㅋㅋ 그냥 그렇게 마냥 웃기려고 작정해서 단순무식하게 달리는 영화는 아니다. 원한다면 곱씹어볼 부분들도 꽤 있더라... 는 정도였습니다. 



 - 배우들이 좋습니다. 좋지만... 일단 감독 겸 조연인 대니 드비토는 극중에선 그렇게 중요한 역할이 아닙니다. 액자 기능이 우선이고 이야기 속에선 그냥 관찰자 정도구요.


 결국 마이클 더글라스와 캐슬린 터너 둘이 투톱으로 이야기를 쭉 끌어가는데, 둘 다 참 이미지랑 잘 맞는 역할을 맡아서 연기도 잘 했어요. 개인적으로 마이클 더글라스는 그 훌륭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뭔가 좀 쪼잔한 투덜이 느낌(...)이라 멋진 역을 할 때마다 살짝 아쉽단 생각을 종종 했는데. 이 영화에선 그냥 난 체 하는 쫑알쫑알 투덜이 샌님역이라 참 잘 어울렸구요. 캐슬린 터너도 강단있고 튼튼 꼬장꼬장한 역과 잘 어울리더라구요. 

 그리고 둘의 조화도 좋아요. 솔직히 둘이 서로 막 사랑하는 초반 장면에선 그냥 선남선녀끼리 그럴 수도 있겠네... 정도였는데 으르렁거리며 싸우기 시작하니 어찌나 훌륭하게 잘 맞던지요. ㅋㅋㅋ 사실 그 전에 로맨틱한 모험물 시리즈로 커플 연기를 하던 사람들이지만 뭐 전 아직 그 영화들을 안 봐서요. 그냥 여기서 아웅다웅 으르렁대는 게 참 합이 잘 맞아서 보기 즐겁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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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질찌질 더글라스옹. 너무 잘 어울려서 문제.)



 - 근데 30년이 넘게 묵은 '결혼'에 대한 영화를 지금 보다보니 좀 원래 작품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재미를 느끼게 되더군요.


 가만 보면 이 영화는 두 사람 중 어느 한 쪽 편을 들지 않으며 균형을 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로 그게 느껴져요. 일단 둘은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자기 역할(남자는 돈 벌어오고, 여자는 집안 관리 하고)에 충실하며 열심히 살아 보려고 애를 써요. 그러니 나중에 아내가 남편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식어버려서 이혼을 외치게된 것도 그저 불행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라는 식이죠.


 그리고 결말 부분에 가면 영화의 주제가 드비토 아저씨의 입을 통해 아주 직설적으로 제시되는데, 그게 아주 보수적입니다. 이혼 하지마. 한 때라도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으니 그걸 생각하면서 (남자가) 끝까지 참고 사랑하려고 노력해. 이혼 같은 거 하려다간 그나마 예전의 좋았던 것도 모두 잃어버리고 변호사들 배만 불리게 된단다... 이런 거죠.


 하지만 21세기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그냥 남편이 잘못했습니다. ㅋㅋㅋ 

 물론 아내의 성격과 행동에도 문제가 크긴 한데,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는 결국 남편이에요. 아무리 원래 성격이 그래서 악의는 없다지만 아내의 가사 노동을 가볍게 생각하고, 돈 버는 게 본인이라고 은근슬쩍 뻐기구요. 또한 자기보다 말빨이 부족한 아내를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고도 본인은 자기가 그랬다는 사실을 눈치도 못 채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내가 그렇게 집안 일만 하며 본인 아내 역할로만 만족하며 살 수 없는 캐릭터라는 걸 이해도 못 하고 상상도 못 합니다. 뭐 아내가 그러한 본인 사정을 남편에게 구구절절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 건 역시 21세기 관점에서 볼 때 아내 책임도 있는 게 맞는데, 영화를 보면 마이클 더글라스가 보통 얄미운 게 아니어서 그 쪽은 어느 정도 양해를 해 주게 되죠.


 그러니 영화의 테마가 보수적이라고 해서 이 영화는 걸러야겠네... 라고 생각하실 필욘 없습니다. 마지막 메시지는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이 영화의 두 캐릭터는 관객들이 보고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디테일이 풍부하니 드비토 아저씨가 뭐라건 그냥 각자 결론 내리시면 되니까요. 그리고 그런 식으로 감상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영화입니다. 그게 참 맘에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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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볼 땐 별 생각 없었는데 뭔가 되게 샤이닝 느낌이네요)



 - 그래서 결론은...

 오래 묵은 탑골 시절 코미디 영화지만 지금 봐도 충분히 맵고 짜게 재밌습니다. 

 영화 자체는 보수적인 설교를 탑재하고 있지만 걍 21세기 관객이 본인 성향대로 해석하며 봐도 무리가 없도록 잘 만들어진 영화이기도 하구요.

 당연히 무슨 우주 명작 같은 건 아니지만 걍 노배우들 젊은 시절 모습 즐기며 낄낄거리며 재밌게 시간 보내기엔 무리가 없는 괜찮은 오락물이었습니다.

 물론 뭐 시대적 차이에 따른 관객 사상의 변화가 영화의 의미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같은 잉여로운 생각을 하면서 즐기고 싶으시다면 그것도 좋구요.

 전 재밌게 봤습니다. 이거 보고 나니 '코민스키 메소드'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주인공이 마이클 더글라스에 캐서린 터너도 몇 화 나오는 것 같던데요. ㅋㅋ




 + 스포일러라서 말할 수 없는 둘의 마지막 장면이 있어요. 당시에 되게 유명한 장면이었고 티비로 본 기억이 아주 선명한데... 제 기억과 디테일이 크게 다른 부분이 있어서 좀 당황했습니다. 당황해서 다시 돌려보기까지 했어요. ㅋㅋㅋ 역시 사람의 기억이란 믿을 게 못됩니다.



 ++ 어쨌거나 그 집은 부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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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하기 엄청 빡세고 유지비도 엄청날 것 같아서 진짜로 살고 싶단 생각은 안 들었지만, 그래도 집 좋더라구요. ㅋㅋㅋ



 +++ 남편이 집착하는 '모건'이란 자동차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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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중에서도 중고차로 나오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980년대인데 이런 차를 몰고 다녔다고?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검색해보니 1965년 모델이었군요. 납득.



 ++++ 캐슬린 터너의 키가 170이 넘는다는 걸 이 영화 보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150이 안 되는 대니 드비토와 나란히 서면 장난 아니에요. 하도 차이가 나서 일부러 의도하고 카메라 트릭이라도 쓴 줄 알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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