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팅 제목보고 생각난 분도 아마 계실 것 같은데...

네, [5학년 3반 청개구리들]입니다. 

당시에 이 책 엄청난 히트작이었죠. 이 이후로 이런저런 아동 소설들이 쏟아지기도 했고 이 작품은 영화로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작품 자체의 퀄리티가 나쁜 건 아닌데, 왜 막장 소설이라고 칭했냐면 이 소설의 재미는 요즘 막장 드라마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욕하면서도 뒷 얘기가 궁금해서 보게 되는 것 말이죠.

지금 책은 절판이고 하니 안보신 분들을 위해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5학년으로 진학한 3반 학생들이 첫날 자기 소개 할 때부터 이상한 이유로 갈등이 증폭되어 남-녀 구도로 편이 확 갈려서 학기 내내 전쟁을 벌인다는 이야기입니다. 학생들 성비가 차이가 없이 딱 50대 50으로 갈라지고(각 25명 아니면 30명 정도로 기억) 각각 다 별명이 붙어있고 각각 다 상대가 1:1로 대응이 됩니다. 
남자 주인공(이름이 배용준입니다. 배우 배용준 데뷔보다 먼저라서 나중에 배용준을 봤을 때 이 소설이 잠깐 생각난 적도 있어요) 1인칭 시점에서 서술이 되는데 그 수많은 별명을 일일히 다 기억해서 어떤 애를 지칭할 때면 항상 별명과 같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좀 웃깁니다. "울보 ㅇㅇㅇ가 꺽다리 ㅁㅁㅁ와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라는 식으로요. 사실 주인공은 성격도 소심하고(별명이 '얌전이') 반에 예전부터 좋아하던 여자애(이름이 신애리인 걸로 기억)도 있고 해서 적극적으로 싸우거나 하기는 싫은데 자꾸 상황에 휘말리고 애리랑은 다른 애들이 싸워도 우리끼린 사이좋게 지내자라고 해놓고 막상 싸우는 상황이 되면 서로 자기쪽 성별 편을 들고 해서 사이가 좋았다가 나빠지고 그러는 일이 계속 됩니다.

보면 싸우는 것도 정말 시답잖은 걸로 싸우고요.
백두산 호수는 천지고 한라산은 백록담인 건 그냥 팩트잖아요. 근데 방과후 교실 구석에서 몇명이 잡담하다가 한 남자애가 '백'두산이니까 '백'록담이고 한라산이 천지라고 우기고 그걸 다른 여자애들과 논쟁하다가 말상대였던 애리가 주인공에게 어느 쪽이 맞는지 물어봅니다. 주인공은 당연히 팩트를 얘기하면 되는데 그 때 착각한 남자애가 자기에게 윙크하는 것을 보고는 남자애 편을 들어버려서 그 전투는 남자애들이 일시적으로 이기게 됩니다. 주인공이 공부를 잘한다는 설정이라 주인공의 말은 신뢰감있게 받아들여졌거든요.(휴대폰과 인터넷 검색이 없던 시절엔 공부 잘하는 애가 백과사전)

주인공은 그렇게 끝났으면 일단 마무리된거지, 굳이 남자애를 다른 곳에 데려가서 왜 그런 걸 착각해서 날 곤란하게 만드냐고 따지는 찌질함(....)을 보여주고 뒤끝있던 애리는 나중에 선생한테 가서 물어보고 정답을 알아낸 후 다시 주인공한테 와서 따집니다.(....) 근데 저 전투 전에 애리는 분명 주인공을 서운하게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주인공이 일부러 남자쪽 편을 든 것도 있는데 자기가 한 짓은 잊었는지 난 그래도 너를 좋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기 편 안 들어줬다는 식으로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주인공은 나도 착각했다고 거짓 변명을 하지만 당연히 씨알도 안 먹히고요.

하여튼 그렇게 소소하게 갈등이 증폭되다가 어떤 사건이 터져서 폭력 사태가 일어나는데 진짜 반 전체가 다 손찌검을 하며 싸웁니다. 그렇게 되니 당연히 담임선생한테 들키고 담임은 국민학교 시절의 만능 해결책 단체기합을 시전합니다.

근데 군대도 그렇고 학교도 그렇지만 단체기합이 갈등을 봉합하거나 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화해하는 척 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고...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작가는 5학년 3반을 단체 소풍으로 등산을 보내고 소풍가는 날 일기예보도 안보는지 산에는 갑작스레 폭풍우가 몰아칩니다.

그 뒤는 뻔하죠. 폭풍우 속에서 선생이 번개를 맞아 쓰러지고 믿을 수 있는 어른을 잃은 아이들은 난리통 속에서 각자 살길을 찾아 흩어지는데 이렇게 외부 충격이 오면 싸우던 내부는 결속하기 마련. 폭풍우가 지나가고 날씨가 양호해지자 그동안 싸우던 애들이 마치 약속하고 짝짓기라도 한 듯이 딱 1:1로 서로를 부축하며 한자리로 모여듭니다. 난리통이라면 일부는 서로 같은 성별끼리 모일 수도 있었을텐데 안그래요. 전원 다 자기 맞상대였던 애랑 커플이 되어 나타나죠.(ㅋㅋㅋ) 
기절했던 선생은 깨어나고 아이들은 우리는 그동안 전쟁하듯이 싸웠어요라고 선생한테 고백하고 화해하고 주인공이 이번 소풍은 '우정찾기'였다고 말하며 화룡점정을 찍고 다들 그래 바로 그거야! 맞장구치면서 하하호호 웃으며 끝.


근데 진짜로 이렇게 끝날리가 있습니까... 2학기가 남았잖아요.
작품이 인기를 끌고 영화도 만들어졌겠다, 당연히 2학기를 다루는 속편이 나왔죠. 속편도 거의 1학기와 똑같이 전개되는 와중에 결말만 좀 달랐던 걸로 압니다. 책을 사보지는 않고 소년신문에 연재되던 걸 잠깐씩 봐서 사실 전체적인 디테일은 모르겠지만 결말은 대강 이렇게 됩니다 : 학기가 끝나는 날 담임이 학생들한테 "너희들 싸우는 거 사실 다 알고 있었지롱~ 하지만 내 어렸을 때랑 똑같아서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어." 라고 말해요.

아니, 선생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저렇게 남녀로 편갈라서 전쟁하는 학급 얘기는 당시에 진짜 듣도보도 못했는데 '원래 너희 때는 그렇게 싸우면서 크는 거란다' 라는 식으로 당연시하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자기네 때부터 내려오던 악습의 고리를 끊을 생각도 안하고 방치하시다뇨......

그리고 주인공 용준은 애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 친하게 지내려고 하니까 반의 남녀갈등이 커지는 것 같다고.(...) 교실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헤어져야겠다고.(....) 어처구니없어하며 돌아선 애리의 뒤로 용준의 독백('아니야, 애리야. 사실은 나도 너랑 같이 있고 싶어!')이 울려퍼지며 작품은 막을 내립니다. 

별로 좋아하던 작품도 아닌데 대강 이렇게 생각이 나는 게 좀 신기하네요. 당시에 저는 유명한 소설이라 사서 읽어봤는데 제가 재미있게 본 조흔파의 [얄개전]이나 오영민의 [6학년 0반 아이들]의 톤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뭐 이런 책이 다 있어!" 라며 싫어했던 기억입니다. 그래서 속편은 책을 사지는 않았지만 그러면서도 특유의 막장스런 재미 때문인지 신문에 연재될 때 가끔 챙겨봤던 거 같고요.

근데 지금 온라인 상의 2030 젠더갈등을 보니 이건 마치 예언서같군요. 젠더 아마게돈 혹은 젠더 아포칼립스 같은 느낌입니다. 책에서처럼 폭풍우라도 몰아쳐야 할까요.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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