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 드레드풀 1 시즌 Penny Dreadful: Season One  


미국-영국, 2014.     

 

 A Desert Wolf/Neal Street Productions, SHOWTIME/SKY Cable Broadcast. 화면비 1.85:1, 총합7시간 15분 (개별 에피소드 당 47분에서 60분) 


Series Creator: John Logan 

Director: J. A. Bayona, Dearbhla Walsh, Coky Giedroyc, James Hawes, 

Writer: John Logan 

Producers: Sam Mendes, John Logan, Pippa Harris 

Music: Abel Korzeninowski 


CAST: Eva Green (바네사 아이브스), Timothy Dalton (말콤 머레이 경), Josh Hartnett (에단 챈들러), Danny Sapani (셈베네), Harry Treadaway (빅터 프랑켄슈타인), Reeve Carney (도리안 그레이), Rory Kinnear (칼리반), Olivia Llewellyn (미나 하커), David Warner (반 헬싱 박사), Alex Price (프로테우스), Helen McCrory (마담 칼리), Robert Nairne (흡혈귀) 


penny-dreadful


198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HBO, 쇼우타임으로 대표되는 대형 미국 케이블 방송회사에서는 주요 경쟁 대상이었던 지상방송TV 뿐만 아니라 극장용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표현의 수위와 도전적인 내용을 지닌 프로그램들을 경쟁적으로 내놓았으며, 헐리웃판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상업성이 부족하다는 편견 아래 프로젝트를 성사시키지 못하던 중견 크리에이티브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해서 그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가장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던 아드리언 라인이 감독한 [롤리타] (1997) 가 미국 극장에서는 배급사를 찾지 못해서 결국은 쇼우타임 케이블에서 먼저 공개 (!) 를-- 어린 도미니크 스웨인이 "Got Milk?" 선전을 패러디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육감적인 예고편 영상과 함께--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1990년대에 이미 쇼우타임이 미국내 영화-드라마 판에서 자신들을 어떻게 자리매김했는가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주류 TV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도전적이고 아방 가르드적이기까지 한 내용의 코메디 프로그램-- 빌 마아, 게리 섄들링, 크리스 록, "키즈 인 더 홀" 등이 출연한-- 으로 초기에 명성을 얻은 HBO 에서도, 1999년에 이미 [소프라노들], [오즈] 그리고 [섹스 앤 더 시티] 등의 드라마/코메디 시리즈들로 인하여 웬만한 극장영화들을 까마득히 따돌리는 수준의 평단과 관객들의 지지를 획득한다. 그러한 결과, 먼저 각본의 질이 경쟁적으로 높아지게 되고, 결국은 소위 말하는 "미드" 의 각본, 연기와 연출의 퀄리티가 주류 헐리웃 극장영화의 그것을 쉽사리 능가한다는, 2000년대 후반 이후의 현상을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HBO 가 [왕좌의 게임] (2011년부터 계속 중)등의 구구한 반론을 창피하게 만드는 초강력 드라마 시리즈들을 제작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코메디 프로그램에 대부분의 자산과 재능을 쏟아붓고 있음은 그들이 초심을 잃고 있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들이 이 분야에서 개척한 영토가 워낙 광활하고 다른 놈들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그 반면 HBO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쇼우타임은 개시부터 장르적인 성격, 특히 1960년대의 고전적 미스터리-SF-호러 TV프로그램을 계승하겠다는 의지가 농후했었고, 그 결과 나와 같은 호러-SF 덕후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쇼우타임에서 틀어준 [아우터 리미츠] 리메이크판 (1995-2002) 은 훌루나 그런 데서 가끔 찾아볼 정도다 (물론 [Lexx] 라던가 [폴터가이스트 더 레가시] 같은 괴이한, 시행착오적인 시리즈도 있긴 했다만…). 착취적인 태도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게이 레스비언적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에 집중 ([L 워드], [퀴어 어즈 포크]) 하거나, 극장용 영화감독들에게 멍석을 깔아주고 굿판을 마련해주는 [마스터즈 오브 호러] 등을 통해 장르적 극장영화판과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는 접근 방식등이 쇼우타임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면, 2014년부터 3시즌을 통해 금년 봄에 완결된 시리즈 ("미니시리즈" 라고 하기에는 에피소드 양이 좀 많다) [페니 드레드풀] 도 이러한 특색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 HBO 에서 제작한 [왕좌의 게임] 과 비교를 해보자면, 그 근원을 엄밀히 따지면 조지 R. R. 마틴이라는 평생 안 건드려본 것이 없는 SF-판타지 문학계의 거성의 연작 소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주류 팬들이 이 시리즈에 대해서 언급을 할 때는, 이런 장르적인 요소가 말끔히 탈색되면서, 마치 진짜 인류 역사에 기반을 둔 사극을 얘기하듯이 논의가 전개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아마 같은 제재라도 쇼우타임에서 제작을 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한국에서 이런 논의를 하자면 피치 못하게 "B급정서" 라는 말이 끼어들게 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거의 20년이 넘게 떠들어왔지만, 나는 이 "B급정서" 라는 용어, "수정주의 서부극" 이라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분석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하고 말다툼 열심히 해 봤자 피곤하니까 그냥 넘어가자). 


[페니 드레드풀] 의 제목으로 쓰여진 penny dreadful 은, 원래 19세기 빅토리아조 영국에서 연재물로 싸구려 (한 질당 1 페니가 보통이라는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었음)로 급조되던 "저질 픽션 찌라시들"을 일컫던 용어다. 어찌 보자면 존 로건을 중심으로 한 제작진의 자기 풍자적인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막상 시리즈의 내용은 "문학적" 이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페니 드레드풀]의 기본 설정은 딱히 독창적인 것도 아니다. 이미 장르문학상으로는 킴 뉴먼의 [Anno Dracula] 등의 하나 이상의 작품들에서 거대한 스케일로 시도가 이루어진 바 있는데, 즉 19세기 고전 장르 문학의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우주에 동시에 존재했다는 마블확장우주같은 컨셉으로 호러-판타지 작품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놀랍게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제킬 박사와 하이드 씨] (1886), 아서 코넌 도일의 [주홍색의 연구] (1887),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 H. G. 웰즈의 [모로 박사의 섬] (1896) 과 [우주전쟁] (1897),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1897) 는 모두 10년이 되지 않는 기간에 동시다발적으로 세상에 등장한 걸작들이었으니, (거기다가 아마도 역사상에서 가장 유명한 연속살인범 잭 더 리퍼는 1888년에 활동함) 제킬 박사 사건과 잭 더 리퍼 사건을 셜록 홈즈가 수사하고, 또 마이크로프트 홈즈, 모로 박사나 드라큘라가 얽히는 등의 "확장우주적" 설정은 최소한 시대 배경상으로는 전혀 무리가 없는 셈이다. 유일하게 프랑켄슈타인만 메리 셸리가 1818년에, 한 세대 앞서서 창조한 존재이고, 따라서 문학사적으로 볼 때는 프랑켄슈타인을 빅토리아조 영국으로 데려오는 것에 대해서는 정교한 외과수술적 조치가 필요했는데 (해머영화의 프랑켄슈타인은 영국액센트의 영어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가상세계속의 중유럽에서만 활동한다), 이 한편에서는 급제점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최소한 작자들이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델리케이트한 캐릭터 공학을 거쳐야만 성공할 수 있는가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스포일러인데, 관객들이 처음으로 이 캐릭터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프랑켄슈타인" 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내 이름…? 내 이름은 빅터라네. 빅터 프랑켄슈타인."-- 이, 거의 1시즌의 감성적 클라이맥스에 해당되는 시점이라는 사실을 보더라도, 각본팀이 이 캐릭터에 쏟아부은 정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새삼스럽게 강조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확장우주적인 아이디어 그 자체가 아니고-- [드라큘라 대 프랑켄슈타인] 같은 영화들을 30년대부터 수도 없이 보아온 장르 팬들에게는 진부하게까지 다가올 수도 있었던 설정이므로-- 어떤 캐릭터들을 어떻게 골라서 뒤섞을 것이냐 하는 접근 방법에 있었다. 이 점에서 [스카이폴] 의 제작-각본팀인 샘 멘데스와 존 로건이 짜낸 틀의 "문학적 태도"를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들의 접근 방식은 캐릭터들, 특히 성소수자 (로건의 관점을 반영하는 바 백인 남성 게이의 그것이 아주 강하게 반영되긴 했지만)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서사를 구축-포진하고, 변동하는 근대 산업 사회의 정체성의 확립에 관한 고뇌와 소외를 주제로 한 캐릭터들의 이합집산과 연계를 중시함과 동시에, 영화계의 각색을 통해 우리가 익숙해진 통속적인 인물들의 해석과는 확연하게 일선을 긋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는 종래의 장르적 정석을 따르면서도 그것을 비틀고 때로는 꺾어버리는, 흥미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페니 드레드풀]에서는 드라큘라는 아예 이름으로 등장하지도 않고, 가부장적이고 "야수적인" 흡혈귀의 젊은 여성들을 향한 헤테로섹슈얼리티는 미적인 고려가 전혀 없이, 추악하고 동물적인 것으로 묘사되는 반면, 프랑켄슈타인박사와 그가 만든 남성 "인조인간" 들 (두 명이 등장한다)과의 관계는 주류 한국 관객들이 보기에는 불편할 정도로 친밀하고도 (남성의 전면 나체가 여성의 그것보다 훨씬 강조되는 시리즈다) 성적인 긴장에 가득차 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영화나 TV로의 각색이라는 측면에서 이제까지 내가 본 어떤 작품보다도 더 훌륭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의 영상판이 바로 이 [페니 드레드풀] 시리즈라는 점이다. 물론 오스카 와일드의 원작에 없는 부분을 더하여 와일드가 관여한 바 없는 새로운 캐릭터들과 그레이가 만나서 관계를 맺는 "확장판" 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레이 캐릭터 자신의 해석과 묘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케이블 시리즈의 그것이 최소한 내가 지금까지 본 작품들 중에서는 최고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각본팀의 선택지는 확실히 비주류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면에서 다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었다고는 볼 수 없다. [드라큘라] 를 고딕소설의 최고 걸작으로 간주하는 분들께서는 시즌 1에서 그 작품속의 등장인물— 특히 반 헬싱 박사님— 을 다루는 방식에 실망하실 수도 있을 것이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창조물에 관한 “반전” 도 쓸데없는 잔재주를 부린 것으로 느껴질 여지도 존재한다. 반면 존 로건 팀이 만들어낸 오리지널 캐릭터들은 세기말 소설의 문학적인 분위기에 탄탄하게 뿌리를 박고 있는 만큼, 신용이 가고 문학작품상의 거물들이 한 세기동안 쌓아올린 아우라에 휘둘리는 일이 적은 편이다. 조쉬 하트넷이 연기하는 이선 챈들러는 그의 풀네임이 “이선 챈들러 탤벗” 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흡혈귀도 마녀도 프박사님도 나오는데 얘가 안나오면 좀 그렇지 않나?” 적인 구색 맞추기 캐릭터가 되어버리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신빙성있는 “프론티어에서 저지른 죄악에서 도피하고 있는 영국땅의 서부극 히어로” 상을 창출하고 있고 (유럽인들이 자기네들 장르 영화에서 신빙성있는 미국인 캐릭터를 구축한다는 것은, 사실상 한국 관객들이 사극에서 역사적인 실상에 가까운 일본인 캐릭터를 보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라는 사실은 알아두셨으면 좋겠다), 기본적으로는 마귀가 들린 채 위태로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영험한 여인” 바네사 아이브스를 여느 영화에서처럼 전신을 던져서 연기하는 에바 그린과, 가부장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최성기 대영제국의 어둡고 위선적인 측면을 그대로 영웅적인 면모에 드러내놓는 노장 티모시 달튼의 말콤경도, 웬만한 문학작품에서 볼 수 있는 임양감과 박진성을 두루 갖추고 그에 못지 않는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우수한 캐릭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단 말콤경이 흡혈귀로 변한 자신의 친딸보다 어릴 적 친구의 딸이자 이제는 처절한 애증의 대상이자 인생의 파트너 비슷한 존재가 되어버린 바네사를 자기의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장면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위적인 극작술이 눈에 띈다. 이런 장면들은 마치 “19세기 영어권 고딕 소설에서 귀신이니 흡혈귀니 사탄의 빙의니 뭐 이러한 설정들을 써먹는 것은, 사실은 이러한—가족끼리의 금지된 성욕을 포함한 애증관계라던가, 국가-제국주의적 영웅서사의 뒤켠에 존재하는 파괴적인 남성상과 여성의 사회적 착취라던가 — 얘기들을 대놓고 할 수가 없어서 그랬다는 거, 여러분들 다 아시죠?” 라고 관객들에게 윙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냥 순진하게 (?) 장르적인 요소를 끌어안고 마구잡이로 달려 나아가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에 반해서, 리브 카니가 대놓고 요염한 섹스어필을 아주 바께쓰로 퍼부어대는 도리언 그레이 캐릭터는, 특히 성적 일탈이라는 측면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모럴에 거스르는 존재로서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으며, 그 때문에라도 역설적으로, 아마도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의 “충실한” 각색이 도달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는 그레이라는 인물의 은유적이면서도 즉물적인 “매력” 을 놀라운 방식으로 길어올린다. 그 결과, 관객들은 그레이와 이산, 그리고 그와 바네사와의 사이에 발생하는, 복잡하게 성적 매혹과 상대방의 주체성을 훼손시키를 거부하는 종류의 우정이 얽혀있는 관계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시즌 1 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고 폭발적으로 고양된 성적 긴장감을 해소하는 “정사” 가 도리언 그레이와 이산 챈들러가 화닥 서로의 옷을 벗기고 포옹하는 게이 섹스 신이라니… 이 부분에 와서는 정말 원작자 오스카 와일드가 살아서 보실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TV 시리즈인 만큼 총제작자이자 각본 감수자인 존 로건의 의향과 비젼이 각 에피소드의 감독들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독진의 존재감이 무색무취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수작 [더 임파서블] 의 감독이었던 J. A. 바요나가 담당한 1회와 2회의 육감적이고, 굴곡이 뚜렷한 드라마 전개를 선호한다. 그러나 여성영화인 코키 기드로이치가 바네사의 어린 시절부터의 미나와 말콤 경과의 관계를 베이지와 금빛의 색조에 물든 플래쉬백으로 풀어나가는 5화와 6화의, 좀 더 멜로적이면서도 아프게 베는 맛이 더 좋은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사비 히메네즈 ([아고라], [레드 라이트]) 이하의 촬영, 조나산 맥킨스트리 ([알렉산더], [러브 액슈얼리])가 담당한 프로덕션 디자인 등 각 분야에서 헐리웃이나 유럽의 대작상업영화에서 이미 실력을 증명한 일급 장인들이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두말하면 잔소리가 되겠다. 


마지막으로, [페니 드레드풀] 의 사상적 내용에 관해서 한마디 하고 싶다. 어디까지나 19세기적인 고딕-세기말 영문학의 외연을 고수하고 있으면서, 그 조악하고 처참하고 육감적인 세상 ("페니 드레드풀" 의 세계-- 초등학생 이하 나이의 소년소녀들을 요즘 공중전화 거는 데 드는 돈 정도의 비용으로 손쉽게 성매매 대상으로 살 수 있었지만, 신사 숙녀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카드에 그려진 큐피드는 결코 그 성기를 노출시켜서는 안되도록 "검열" 을 당했던, 위선이 판치던 빅토리아 영국의 초기 산업사회-- 그거야 뭐 "위안부 할머니" 들을 일본놈들 욕하는 게 유일한 목적인 국뽕 민족주의-박통식 국가주의를 지글지글 지피는 땔감으로 소비하는데 여념이 없는 21세기의 대한민국과 별로 다를 바 없지만) 의 질감과, 품위있고 이성적인 캐릭터들의 사고와 행동의 패턴을 대비시킴으로써 장르적인 "재미"를 창출해내는 시리즈이지만, 그 "혼네" (本音) 는 극히 21세기적인, 후기근대적이고 포스트콜로니얼, 포스트페미니즘적인 개인 본연으로 회귀하는 문제의식에 경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 19세기 말의 영국사회는 사회주의와 마르크시즘, 보수파의 자본주의 비판 등 여러가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해법을 모색하느라 바빴지만, [페니 드레드풀]에서는 그러한 해법들은 일찌감치 "인간 주체의 본연의 문제" 의 일부로 흡수되어 아예 등장할 값어치조차도 인정받지 못하는 듯 하다. 


 여주인공 바네사는 이른바 마귀에 들린 여성/초능력을 지닌 "마녀" 라는 표리부동한 정체성과 씨름을 하면서 괴로운 내면의 싸움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러한 내면적인 고뇌는 늑대인간 이산, 위선적인 제국주의 영웅인 말콤경 등의 "정의의 세력" 들의 캐릭터들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 최후의 에피소드에서 바네사는 카톨릭 신부에게서 마귀를 쫒아내는 엑소시즘이라는 해결책의 가능성을 모색하지만, 신부님의 반응은 예상을 뒤엎고, 부정적이다. 엑소시즘을 무리하게 강행했을 경우의 결과가 더욱 비참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악의 세력과 당신의 영혼이 맞닿아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자면 하느님이 당신께 주신 특권의 일종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라고 신부님은 말한다. 바네사는 과연 그럴까요, 라고 되묻는 것 같은, 착잡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 혁명을 한다고 뒤집어보니 더 위선적이고 암울한 세상이 되는 현대사의 꼬라지를 이미 지겹게 봐 온 21세기 작가들의 중도적인 시각이, 악의 세력을 몰아낸다고, 축출한다고, 파괴한다고 설치다가 죄없는 사람들을 악의 세력보다 더 열심히 죽음과 불행으로 몰아넣는 "뱀파이어 헌터" "엑소시스트" 들에 대한 로건 이하 작자들의 의구심에 반영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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