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6 18:57
진실이 되어라/드림 스캐너 COME TRUE
캐나다, 2020. ☆☆☆★★
A Raven Banners Presents Copperheart Entertainment/Angel Entertainment/Telefilm Canada Co-Production. 화면비 2.39:1, 1시간 46분.
Director, Screenplay, Cinematography & Editing: Anthony Scott Burns.
Original Story: Anthony Scott Burns, Daniel Weissenberger.
Music: Electric Youth, Pilotpriest.
Executive Producers: Vincenzo Natali, Bob Crowe, Karyn Nolan, Brent Kawchuk.
Producers: Steve Hoban, Mark Smith, Nicholas Bechard. Special Effects Supervisor: Anthony Scott Burns.
CAST: Julia Sarah Stone (사라 던), Landon Liboiron (제레미), Carlee Ryski (아니타), Tedra Rogers (조이), Christopher Heatherington (마이어 박사), John Tasker (라일), Austin Baker (윌), Pamela Parker (카운셀러), Caroline Buzanko (에밀리).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리뷰를 안 썼는데, 생업도 바쁘고, 두번째 연구서 집필이 이제는 정말 빼도 박도 못하고 완성을 해야만 되는 시점에 도달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계속 보고 있었지만 한국어 리뷰를 쓸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 동안에는 그냥 케이팝 덕질을 하면서 대중문화 갈증을 해소하고 지냈네요. 아무튼, [Come True] 는 시기적으로는 코로나사태가 강타하기 바로 전에 완성된 한편인 듯 하고요. 일단 최근작 중에서 스트림으로 보고 인상에 강하게 남아서 따로 블루 레이로 구입해 놓은 장르영화들의 리스트 중에서 손이 가는 대로 선출해서 리뷰를 써보기로 합니다.
이 한편은 안소니 스콧 번즈라는 캐나다 출신의 70년대 후반 태생의 젊은 특수효과 장인이자 전자음악가-디자이너가 각본, 감독, 촬영, 편집 그리고 비주얼 이펙츠 담당까지 다 맡아서 찍은 저예산 SF-호러입니다. 일단 호러영화와 뇌과학 서브장르SF의 형상을 하고 있기는 한데, 실질적으로는 호러라고 보기 어렵고, SF적인 설정도 특이한 비주얼을 구현해내기 위해 써먹은 핑계에 가까워요.
주인공 사라는 어떤 연유에선지 엄마가 있는 중산층 집에 머물기를 거부하고—학교는 멀쩡하게 다닙니다— 공원이나 세탁소, 친구 집 같은 곳을 전전하면서 홈레스 생활을 하는 소녀입니다. 그녀는 양 눈이 개똥벌레 마냥 불이 켜진 나체의 남자 모양을 한 실루엣이 등장하는 일련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어서, 줄커피를 마시는 등 잠이 드는 것을 피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요. 우연히 수면상태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대학교의 랩에 실험대상으로 자원하게 됩니다만, 이 랩에서는 피실험자들이 보는 꿈을 영상화해서 비데오로 녹음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테스트중인것 같습니다. 사라는 연구원 중 하나인 제레미가 자기를 스토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처음에는 거부반응을 보이지만, 곧 그를 통해서 자신의 악몽의 실체를 파악하려고 합니다.
[Come True] 는 구조로 따지자면 이른바 “맨 마지막 샷의 대반전” 으로 그때까지 본 영화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형태의 Final Revelation 서브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전 자체는 별로 새롭지는 않아도 그런대로 효과적으로 제시되고 있어요 (이 반전의 형식은 비토리오 스토라로의 아름다운 촬영으로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제 이상 심리 호러 [월면의 발자국] 과 거의 동일합니다). 단지, 스코트 번즈는 이러한 플롯상의 서스펜스나 관객과의 게임에는 별반 흥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몽환적이고 미스테리어스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과, 또한 일종의 미적으로 일관된, 어딘지 모르게 초췌하고 강파르면서도, 나름대로 아름답고 매력있는 영상세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보입니다.
TV 모니터의 청회색 주사선들로 구성된 타이틀부터 시작해서, [Come True] 에는 따듯한 햇살이나 진하고 밝은 색깔이 전무하고, 어둡거나 땅거미가 질 무렵의 칙칙한 색조로 물든 풍경위에 탁하고 창백한 백색이나 푸른색 조명들이 드리워지고 콘크리트와 찌들은 아스팔트로 둘러싸여진 암울한 세계가 펼쳐지는데요. 탁 트인 화면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주인공 사라도 도중에서 한쪽 눈에 출혈을 시작하는 바람에 흰 색 안대를 하고, 깡마른 몸매에 인공적으로 솟아 올라 보이는 은발 등, 어딘지 모르게 아니메의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습니다. 캐릭터들은 사실 2차원적으로 설계 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딱히 흥미있는 백스토리나 입체적인 주체성이 부여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담담한 필치의 일본제 소녀 만화의 그것들처럼 기능성과는 관계없는 일종의 매력을 구비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 한편의 백미는 사라가 꾸는 꿈을 한 시퀜스마다 원테이크로 풍경에 연속 접근하는 방식으로 그려낸 드림스케이프의 묘사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인체는 칠흑같은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극단적인 음영효과를 원용하여, 딱히 혐오감이나 공포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러브크래프트적인 우주적 괴기스러움을 효율적으로 보여줍니다. 어떤 곳에서는 클래식 회화를 연상시키는 고답적이면서도 위압적인 구도로 설계되어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갑자기 조각조각 흩어진 인체— 팔이나 다리, 동체들— 를 임의로 이어붙인 것 같은 괴이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천천히 닫히는 거대한 괴수의 입 안에서부터 바깥을 바라본 것 같은 식의 특이한 시점에서 촬영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쇼크 묘사를 배제하고 저변에 깔린 채 조금씩 음산함과 신비로움을 끌어내는 음악과 음향효과에 힘입어, 기괴하고 오싹하면서도 역시 어딘지 모르게 매력적이고 몽환적이지요.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한편은 코로나가 직격하기 전의 2019년 정도에 촬영을 다 끝내고 대기하다가 극장 공개를 통해 필름 페스티벌을 돌거나 입소문을 타는 데에 차질을 겪었던 듯하고, 그 때문에 실질적으로 얼마나 손해를 입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만, 오히려 코로나 사태 후반부 (2022년경) 가 되어서야 공론장에 제대로 등장한 것 같은 느낌이 좀 듭니다. 영화작가 역할을 제대로 해낸 스코트 번즈는 이 작품 공개 이후로는 영화보다는 엘렉트로닉 신스 팝- Ambient Music 분야에서 뮤지션으로— 밴드 이름은 “파일럿프리스트” 라고 합니다— 주로 활동해온 모양입니다. [Come True] 의 음악은 그러나 독자 작곡은 아니고 2011년에 데뷔하였고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 에서 주제가처럼 쓰인 [A Real Hero] 로 유명세를 탄 바 있는 Electric Youth 가 협업하고 있네요. 이런 식으로 분위기 많이 타고, 잔잔하고 조용한 스타일의 전자음악적 특징이 두드러지는 신스 팝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이 한편의 사운드트랙도 추천드립니다.
여담인데, 스포티파이에 등재된 사운드트랙을 듣고 있자니 “실라칸스 (‘살아있는 화석’ 으로 유명한 고대생명체 물고기)” 라는 트랙이 엄청나게 귀에 익어요. 분명히 다른 영화에서 들은 것 같은데, 혹시 마이클 만 감독의 [맨헌터] 에도 이 곡이 나오지 않았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체크해봐도 스포티파이나 아마존 뮤직, 애플 뮤직에도 없어서 확인을 못 하다가, 유투브에서 겨우 찾았는데, 그 음악이 맞더라고요. 그런데 이 트랙의 작곡가는 [맨헌터] 앨범에는 락 그룹 쉬리크백 Shriekback 으로 되어있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보아서 엘렉트릭 유스쪽이 [맨헌터] 에 실린 쉬리크백 곡을 샘플링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후자는 오보에인지 그런 목관악기로 메인 멜로디를 연주하는 데 비하여, [Come True] 버전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그 역할을 맡고 있으며, 후반부에 좀 더 신디사이저가 반주하면서 많이 들어오는 등, 편곡의 차이가 확실히 있습니다. 이거 검색하느라고 히나타자카46 에도 “실라칸스” 라는 노래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물론 이쪽은 왜 제목을 “실라칸스” 라고 붙였는지 의문인 그런 일본 아이돌곡이긴 하지만. ^ ^
결론적으로 약간 우울하고 괴팍하고 괴기스럽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글프고 아련한 느낌도 드는, 미적으로 세련되게 번안한 영 아덜트 SF-다크 판타지 소설같은 느낌의 한편입니다. 마케팅하고는 상관없이, 정통적이고 쎈 호러영화로 분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무서우려고 볼 만한 한편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가끔가다 독특한 분위기의 비주얼과 음악을 만끽하기 위해 돌려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는 한편이죠.
마지막으로 사족 비슷한 것인데, 이건 영화를 보신 분이 아니라면 무슨 얘기인지 감도 잡기 힘드실 것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라고는 말하기 힘든 내용이지만, 그래도 결말부의 반전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스포일러 경고를 일단 걸어두겠습니다.
뭐냐 하면, 피투성이의 사라가 송곳니가 삐죽히 튀어나온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허탈한 웃음 또는 멘붕의 경악의 표정을 짓는 (이부분도 줄리아 스톤의 연기의 성격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게 묘사되어 있죠) 거의 최후의 장면 얘긴데요. 여기까지 영화를 보신 분들은 갑자기 “웬 뱀파이어?” 하고 뜬금없이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이건 이 마지막 반전의 메시지의 내용을 사라가 읽고 보인 반응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납득이 가실 수 있습니다. 물론 각자의 해석이 다를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열려 있는 전개이긴 합니다만, 그 “메시지” 를 보고 충격에 휩싸인 사라가 “난 그럼 마치 뱀파이어였단 말인가” 라는 일종의 문학적 은유의 사고를 하게 되고, 그게 곧 현실화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여준 장면, 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는 명료하게 다 설명된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아무 맥락 없이 산으로 올라가는 결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셨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