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강탈자의 침입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우리는 당신들을 싫어하지 않소. 이제는 혐오도 사랑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죽어가는 세계에서 왔소. 태양풍에 실려서 우주의 여러 혹성들을 떠돌아다녔죠. 우리는 적응하고, 그리고 생존할 것이오. 생명의 기능은 생존하는 것이므로."


미국, 1978.      


A Robert H. Solo Production, distributed by United Artists Pictures. 화면비 1.85:1, 1시간 57분.


Director: Philip Kaufman

Screenplay: W. D. Richter, based on the novel by Jack Finney, "The Body Snatchers"

Producer: Robert H. Solo

Cinematography: Michael Chapman

Production Design: Charles Rosen

Editor: Douglas Stewart

Music: Denny Zeitlin

Makeup: Thomas Burman, Edouard Henriques, Robert Westmoreland

Special Visual Effects: Russell Hessey, Dell Rheaume

Sound Effects: Ben Burtt


CAST: Donald Sutherland (매튜 베넬), Brooke Adams (엘리자베스 드리스콜), Jeff Goldblum (잭 벨리첵), Veronica Cartwright (낸시 벨리첵), Leonard Nimoy (키브너 박사), Art Hindle (제프리 하웰), Lelia Goldoni (헨들리 부인), Kevin McCarthy (광란의 도주자), Don Siegel (수상쩍은 택시운전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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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동안 리뷰에 올리려고 생각은 했었는데, 번번이 기회를 놓치는 SF 내지는 호러 명작중의 하나인데, 시간이 조금 난 김에 해치워야겠다. 디븨디-블루레이 시장에서도 여러 형태의 특별판으로 계속해서 출시되었고 나올 때마다 사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인지, 인기가 떨어지는 기색이 없고, 절판이 될 가능성도 아주 적은 타이틀에 속한다. 아마 웬만한 SF팬이시라면 알고 계시는 사항이겠지만 혹시나 혼선을 빚을까봐 말씀드리는 것인데, 잭 피니의 SF 소설 [신체 강탈자들] 은 1955년에 출판된 1년만에 각색하여 돈 시겔이 감독한 필름 느와르/반공드라마형 [신체 강탈자들의 침입], 23년만에 다시 리메이크한 본편 (비데오 내지는 극장 공개 타이틀은 [우주의 침입자] 였나보다), 뉴욕의 게릴라 영화작가 아벨 페라라가 1993년에 두번째로 리메이크한 [보디 에일리언 (웬 놈의 타이틀이… ;;;), 원제는 "침입자" 가 빠지고 달랑 The Body Snatcher], 그리고 다니엘 크레이그, 니콜 키드먼 주연이라는 호화 캐스트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로나 SF적으로나 지금까지 영화화 작품 중 가장 크게 폭망한 [인베이젼] (2007), 이렇게 네 번 영화화 된 바 있다. 물론 피니의 원작은 표절 수준의 파쿠리나 간접적인 언급까지도 계산에 넣자면, 단지 영화뿐만 아니라 대중 문화 전반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친 SF 역사상 걸작 중의 하나이고, "완두콩깍지에서 나온 사람들" 이라는 의미의 "Pod People" 은 실제로 미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영어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도무지 원작의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릴 수 밖에 없는 망작 [인베이젼] 을 제외하면, 그 전의 세 영화화 작품들은 서로 반드시 중첩되지는 않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강점을 지닌 SF호러의 역작들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56년판과 78년판은 관객의 취향이나 제 장르에 대한 접근 방식, 사상적인 경향성 등에 따라서 선호도가 많이 갈린다. 56년을 절대적 걸작으로 취급하여 78년도판을 센세이셔널하고 경박한 판본으로 낮추어 보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거꾸로 56년도판을 보수적인 50년대 당시 미국의 시대 상황에 억눌려서 제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던 "답답한 구식 버전"으로 간주하고, 78년도판을 원작의 소름끼치는 함의를 제대로 뽑아낸 성공작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나의 경우, 별점을 구태여 매겨야 한다면 56년도판이 약간 더 한편의 영화적 예술로서 우세하다고 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78년도판이 그렇게 떨어진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현대인의 편집적이고 일상적인 공포에 바탕을 둔 SF호러로서는 역사에 남을 우수한 한편이라는 평가가 정당할 것이다.


미국 영화인들 중에서도 지적이고 문학적인 소재를 육감적이고 도전적인 방식으로 찍기로 이름난 필립 카우프만 감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프라하의 봄)], [헨리와 준], [Quills] 등) 이 비교적 초기에 (이 영화를 찍은 직후 카우프만은 스필버그에 스카우트되어 [레이더스] 의 각본에 참여하게 되고, 아카데미상에 우루루 노미네이트된 [필사의 도전 The Right Stuff]을 완성하게 된다) 이 한참 물이 오를 무렵에 도전한 이 한편은 사회비판이나 풍자에 정신이 팔려서 SF적인 요소를 그냥 도구적인 설정으로 써먹는 우행을 저지르지도 않고, 반대로 저예산 호러영화적인 말초적인 공포연출에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장르적 즐거움의 분배와 여러 종류의 사상적 함의를 내포한 서스펜스 드라마의 운행이라는 두 가지 과업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흥미있는 것은 잭 피니의 원작과 56년판과 달리, 78년판은 마치 관객들이 피니의 원작을 다 읽고 영화를 보러 올 것을 상정한 것처럼, 모두에 우주를 방랑하는 식물의 종자 형태의 괴생물체의 군집이 지구 북반구, 그것도 샌프란시스코에 하락하는 영상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또 이 외계생물체가 샌프란시스코에 서식하는 여러 나무와 꽃들의 잎사귀에 균사(菌絲)를 뻗어서 말려 죽이고, 본체의 꽃 대신 독한 선홍색의 "꽃잎"을 피우는 기생식물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묘사에서, 이미 지구가 모종의 외계생명체의 침략을 받았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원작과 56년판에서는 따라서 주인공들이 도대체 왜 사람들이 갑자기 차갑고 비인간적으로 변했는지 해명하는 부분이 상당한 시간을 차지하는 데 비해서, 이 한편에서는 관객들이 이미 외계인들의 침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인공 매튜와 엘리자베스가 키브너 박사처럼 심리학적인 분석으로 이 상황을 설명해버리려는 시도에 대해 어떻게 논리적으로 반대의견을 전개하는가에서 상당한 서스펜스를 끌어내고 있다.


이 한편에서는 매튜와 엘리자베스가 자연스럽게 맺어진 커플이 아니라는 점에 리얼리티가 있다. 그들은 로맨틱한 관계라기보다는 서로의 취향과 사상을 존중해주는 데서 관계를 발전시킨 아주 친한 친구와 같은 커플이고, 엘리자베스의 의사 남편은 애초에 콩깍지인간으로 변하기 이전에도 엘리자베스와 인생의 상당부분을 서로 공유하는 관계로는 보이지 않는다. 즉, 원작과 56년도판의 누구나가 누구나를 너무도 잘 아는 촌락공동체적인 사회배경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78년도판의 특수성은 샌프란시스코라는 대도시라면 대도시지만 중소도시적이고 친밀한 측면도 소유한 공간적인 배경과 함께, 대인관계가 SNS와 스마트폰 등 통신기술의 발달로 완전히 파편화 내지는 부족화 (部族化) 되기 직전의 70-80년대 "ME Generation" 미국의 자아도취적인 일상이, 그 이면에서는, 역설적으로 얼마나 주체적 자아를 형해화시키는 집단주의적 행태를 발현시키는가를 탐구하는 사상적 배경에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시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스타 트렉] 의 스포크 박사로 유명한 레너드 니모이가 분하는 키브너 박사의 언설이다. 키브너는 엘리자베스에게 자신의 남편이 "진짜 남편" 이 아니라는 의심이 이러한 첨단소비사회에서 비롯된 일종의 집단 히스테리라고 거의 납득을 시키는 데 성공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엘리자베스와 매튜에게 진상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은 이 두 사람에 비하면 공상가이고, 사회적 적응도가 낮아 보이는 문학도 잭과 찜질방 (어… 정확하게는 mud bath) 도우미인 낸시이고, 실제로 잭을 복제중인 (아마도 콩깍지인간 고객이 가져다놓은 식물로부터 확장-변신하는) 생명체를 발견하는 것도 낸시와 잭이다 (잭이 잭 런던 같은 작가가 요즘 세상에 어딨냐고 성토를 하고, 낸시는 올라프 스테플던의 [최후와 최초의 인간]을 고객에게 추천할 정도의 SF팬이라는 것을, 각본가 W. D. 리히터는 스리슬쩍 알려준다).


물론 [신체 강탈자]는 추상적이고 심리적인 서스펜스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고, 현대SF물답게 콩깍지인간을 복제하는 과정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릭 베이커나 딕 스미스의 블래더(바람을 넣어서 레이텍스조직을 확장하는 기법)를 다용하고, 주름이나 체모 등의 디테일과 멋진 조형에 기초를 둔 메이크업 대신, 토머스 버먼은 점액질(粘液質)적 이고, 보기만해도 속이 언짢아지는 솜털에 둘러싸인, 눈도 안 뜨게 막 태어난 신생아 같은 물컹한 재질의 "콩깍지인간"들의 본 모습을 구현하고 있는데, 중반에서 잠이 든 매튜와 엘리자베스를 복제하는 시퀜스는 가히 그 기괴함에 있어서 특필할 만하다. 스티븐 킹이 그의 호러 평론서 [죽은 자들의 춤]에서 이 장면을 특별히 언급하면서, 완성되지 못한 콩깍지인간의 얼굴을 혼비백산한 매튜가 호미로 찍자 마치 썩은 과일처럼 푸석… 하고 으깨져버리는 장면을 목도한 자신이 입을 콱 틀어막고 "18! 어떻게 이 영화가 PG 등급을 받았단 말이가!" 라고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라고 칭찬하고 있는데, 그 장면도 물론이지만, 56년도판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보여줄 수가 없었겠지만) "복제품이 완성된 다음에 원본은 어떻게 되는가" 의 의문에 대답해주는 막판의 신도 피가 튀기는 고어장면이 아니고 식물적인 질감을 북돋는 메이크업효과를 사용한 만큼, 이질적이고도 더욱 처참하다. 벤 버트가 담당한 불안감을 한껏 조성하는 음향효과와 그와 어우러지는 데니 자이틀린의 아방가르드 재즈 음악의 공헌도도 작지 않다.


두말하면 잔소리 최고의 성격배우 도널드 서덜란드, 너무나도 매력적인데 일급 스타로 등급은 못했던 브루크 아담스, 이 무렵만 해도 얼굴이 뽀얀 것이 거의 소년티가 나는 젊디 젊은 제프 골드블럼, [에일리언], [이스트윅의 마녀] 등에서 계속 당하는 역할(?) 로 유명해진 아역배우 출신 베로니카 카트라이트,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레너드 니모이 등의 자연주의적인 연기 (대사가 겹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일상회화적인 호흡으로 계속 빨리 대사를 읊는 양식의) 가 특출나게 좋고, 여러 버전중에서 최고의 연기력을 과시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겠다. 카우프만 감독이 대부분 실제 장소에서 로케이션 슈팅으로 담은 샌프란시스코의 경관은 멋지기 이를 데 없는데, 그는 그것에다 연출이 가미된 동적인 장면들과, 날로 찍어낸 심드렁하고 표정없는 군중들의 푸티지를 적절히 배합하여 중저음적인 불안과 공포감을 강렬하게 조성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56년판에는 없는 새로운 콩깍지인간들의 능력 중 하나가 자신들이 아닌 "날" 인간들이 가운데 섞여 있을 때 "저놈 인간이다!" 라는 의미라고 추정되는 금속질의 "비명"을 지르는데, (공포감 조성의 도구로서는 지극히 효과적이다) 그걸 보면 이 콩깍지인간들은 인간들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게 아니고, 단지 인간을 "흉내" 만 내고 있다는 심증이 든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전부 복제된 세상에서는 그들은 인간들을 흉내낼 필요가 없으니 그냥 물컹하게 식물로서, 거의 아무것도 안하고 지내게 되는 게 아닐는지? 실질적으로 카우프만 감독은 최후에서 "콩깍지인간" 들만으로 구성된 사회가, 비현실적인 정확성과 정밀함과 더불어 인간들의 사회를 "모방" 하는 양태를 잠깐 보여주는데, 그 장면으로 그냥 끝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실제 영화가 끝나는 샷은 스포일러가 되니 묘사하지는 않겠지만, 폴린 케일 같은 약간 스노비쉬한 평론가들이 잘했어 하고 갈채할 만한 스타일의 엔딩이다. 난 56년판에서 프로듀서들이 어거지로 삼입했다는 "타협성" 엔딩이 꽤 괜찮다고 믿는 사람인지라, 이 비타협적인 엔딩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음을 고백한다. 여담이지만 잭 피니 원작의 엔딩은 두 버전의 엔딩과 전혀 다르다. 어떻게 보자면 좀 느슨하고, 실제 자연현상 (예를 들자면 전염병의 확산) 의 전개와 비슷한 전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장 과학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TV에서 상영하는 것을 멀거니 보기 시작해서 결국 끝까지 다 본 것까지 합치면 열 몇 번은 족히 본 한편이지만, 요번 리뷰를 위해서 다시 한 번 봐도 여전히 쇼킹한 장면에서 움찔하고, 완전 몰입해서 보았다. 시대를 뛰어넘어 공력을 과시하는 SF호러의 고전의 자격증을 충분히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국의 대도시를 배경으로 비슷한 스타일의 편집증적 SF호러 (외계인의 침공이 주제가 되건 아니건)를 기획하는 조선땅의 영화인분들은 요즘 미국에서 나오는 시끌벅적한 "SF블록버스터" 들-- 무슨 [제 5침공] 이니 그런 잡동사니들-- 은 깨끗이 무시하시고 이 [신체 강탈자들의 침입]을 참조하시길 충고 드린다.


사족: 매튜가 영화안에서 "당신이 미쳤다면 그 눈 가지고 하는 거 못 할거야. 그거 어디 한번 해봐요." 라고 엘리자베스에게 말하자 브루크 아담스 연기자가 문자 그대로 "동공지진"을 실연해 보인다. 이건 아무리 봐도 CGI로 찍은 특수효과로 밖에는 안 보이는데, 카우프만 감독에 의하면 실제로 아담스 연기자가 이 묘기를 시전해서 날로 찍은 영상이라고 한다 (하기사 그렇겠지, 78년도에 무슨 눈알을 그리는 CGI가?). 이 영상을 보면 "동공지진" 이라는 것이 은유적인 표현이 아님을 깨닫게 되실 것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음. 직접 보셔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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