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주인 無限住人 


영국-일본, 2017.    


An OLM/Kenon Group/Asahi TV/Kodansha/J Storm Co-Production, distributed by Warner Brothers Japan. 2시간 21분, 화면비 2.35:1 


Director: Miike Takashi 三池崇史 

Screenplay: Oishi Tetsuya 大石哲也 

Producers: Saka Misako, 坂美佐子 Jeremy Thomas, Maeda Shigeji 前田茂司 

Based on a graphic novel by Samura Hiroaki 沙村弘明 

Cinematography: Kita Nobuyasu 北信康 

Music: Endo Koji 遠藤浩二 

Martial Arts Action Design & Coordination: Matsui Yuichi, 松井祐一 Miyoshi Norihiro 三好史洋 


Cast: Kimura Takuya 木村拓哉 (만지), Sugisaki Hana 杉咲花 (아사노 린/마치), Fukushi Sota 福士蒼汰 (아마즈 카게히사), Toda Erika 戸田恵梨香 (오토노타치바나 마키에), Yamamoto Yoko 山本陽子 (야오비쿠니), Ichihara Hayato 市原隼人 (시라), Ichikawa Ebizo 市川海老蔵 [Horikoshi Takatoshi] (시즈마 에이쿠우), Mitsushima 

Shinnosuke 満島真之介 (마가츠 타이토), Kuriyama Chiaki 栗山千明 (햐쿠린), Ishibashi Renji 石橋蓮司 (아바야마), Yamazaki Tsutomu 山崎努 (이바네 켄즈이), Kitamura 

Kazuki 北村一輝 (쿠로이 사바토), Kaneko Ken 金子賢 (시도 히시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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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주인] 은1993년에 시작해서 2012년에 일단 최종회를 맞이할 때까지 20년에 가깝게 연재된 장수 만화 시리즈의 영화판이다. 무슨 마블이나 디씨의 수퍼 히어로처럼 하나의 캐릭터를 여러 작가들이 돌아가면서 그려내는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작가가 20년을 넘게 하나의 스토리 라인을 유지한다는 것은 허리 기운이 쑥 빠질 정도로 긴 세월로 느껴지긴 하지만, 일본 만화의 세계로 국한해서 말한다면, 긴 편이긴 하지만 가장 긴 작품 중 하나라고는 할 수 없다. 1976년 (…;;;) 에 시작되어 아직도 얘기가 안 끝난 [유리가면] 같은 극단적인 예를 들지 않더라도, 누구나가 익히 잘 아는 서사인 [삼국지] 의 경우도 요코야마 미츠테르의 만화 번안본의 경우 1971년부터 1987년까지 세 번이나 게재지를 바꾸어서 16년에 걸쳐 연재된 바 있고, 연재가 끝난 직후에 우시오 출판사 (신흥종교 창가학회에서 운영하는 출판사) 에서 내놓은 단행본 전집은 60권이라는 장대한 분량이었다. 이러한 일본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20년정도 계속되었다고 해서, 시리즈물의 진이 다 빠진 상태로 이미 아니메이션도 만들고 심지어는 무대극으로까지 번안된 작품을 누가 또 영화로 새삼스럽게 보겠나, 그런 종류의 걱정을 해 줄 필요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적역을 얻어낸 키무라 타쿠야의 열정 넘치는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 한편은 흥행적으로는 결국 별로였던 모양이다. 다분히 후속작을 의식한 전개와 결말이 담겨있는 데, 약간 머쓱한 결과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일본 만화의 장르 중에서는 (고전기 닌자 만화를 제외한) 시대극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쪽이고, 사무라 히로아키처럼 일러스트레이터적인 "극화조" 의 만화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북미에서 오오토모 카츠히로 같은 스타일의 만화작가들이 돌출적인 인기를 누리는 현실에 대한 반감도 하나의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무한의 주인] 은 간혹 가다가 접한 적은 있어도 [사이보그 009] 나 이와아키 히토시의 작품군처럼 오랜 세월을 걸쳐서 탐독한 경험은 없다. 나에게 있어서 [무한의 주인] 이 지닌 고독한 "외톨이 늑대" 적 안티 히어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를 위시한 로맨틱 판타지적인 요소는 사실 별로 매력이 없다. 그런 측면에 과도하게 집중하다 보면 키타무라 류우헤이 사극 같은 췌장에 바람 들어간 결과물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 싶다 (키타무라 감독작들의 팬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뭐 좋아하시는 분들의 심정도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다만...). 이 한편이 나에게 특별히 다가왔던 매력이라면, 오히려 제 2차 일본 영화 황금기 (50년대부터 60년대 초반까지) 에 삭막하게 벼려진 실험정신과 더불어, 장르적인 공식들을 살벌하기 그지없는, 때로는 거의 반사회적이고 반인도주의적 방식으로 찍고 잘라버렸던 일련의 시대극들-- 이 분야에는 거장 코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하라키리], [사무라이 반란 上意討ち:拝領妻始末] 을 위시해서 쿠도 에이이치의 [대살진 大殺陳],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의 [암살], 오카모토 키하치 감독의 [대보살 고개], [사무라이], 이마이 타다시 감독의 [무사도 잔혹설화 武士道残酷物語],[복수 仇討ち]등 수많은 걸작 문제작들이 존재한다-- 에 대한 미이케 타카시 감독의 애정과 충성심(?) 이 아니었나 싶다. 미이케 감독은 이미 쿠도 에이이치의 광기가 감도는 처참한 게릴라전투 시대극 [열세 명의 자객]을, 자신의 특이한 유머감각을 섞어서 그러나 고전 시대극의 외양에 대한 존중심을 한껏 담아서 리메이크한 바 있고, 심지어는 이 "사회비판적 사극" 작품군 중 가히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하라키리]까지도 원작소설을 자기 식으로 각색한다는 접근 방식을 통해서 다시 만들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미이케 감독이, [무한의 주인] 이라는 신작 안에,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고전 일본 시대극영화에서 느껴볼 수 있는, 아주 예리하게 갈아서 세운 칼날 같은 풍미를 다시금 캡처했을 뿐 아니라, [요괴대전쟁] 이나 [얏타맨] 같은 만화의 영화화들에서 보여준 천의무봉의 상상력을 구사해서 어떤 새로운 경지의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지니고 찾아 보게 된 것이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미이케 감독의 한계를 넘어서는 한편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다. 가장 큰 문제는, 복잡다단하고 장구한 서사를 통해 진화를 거친 다채로운 캐릭터들을 2시간 반 남짓한 시간에 축약적으로 담아내는 데 있어서 장인적인 실력을 발휘하긴 했지만, 결국 원작의 고유한 매력을 백 퍼센트 살려내지는 못한 오오이시 테츠야 ([데스노트] 극장판과 [엑스크로스 마경전설] 등의 각본가) 의 각본에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미이케 감독은 전에도 얘기했지만 자신이 뭔가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나 주제나 사상적 집착을 가진 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풍은 그 괴이함과 파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고전기 헐리웃 영화의 감독들과 연계되는 구석이 있다. 심지어는 [이치 더 킬러]처럼 관객들의 건전한 상식을 악독하게 짓밟아버리는, 겉보기는 한없이 추잡한 한편도, 그 내실을 따지자면 프랭크 헤넬로터 같은 괴작 전문가들의 작품보다는 리처드 플라이셔 같은 재능이 넘치는 장인들의 그것에 더 가까운 "말끔함"을 지녔다. 이것은 사상적으로 고전기 미국영화들을 추인 (追認) 하는 쿠로사와 키요시 감독과는 미묘하게 다른 특질이다-- 그의 작품들은, 자신의 영화들의 각본을 손수 집필하는 글쓰기 출신의 쿠로사와 키요시의 경우와는 달리 (쿠로사와 감독은 자기 각본의 소설화까지 직접 맡아서 쓰는 수준) 각본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여성 각본가가 집필한 [착신아리], [식녀-쿠이메] 등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이 미이케의 다른 남성 동료들이 집필한 야쿠자 알탕영화나 아방가르드적인 폭력영화들에 나오는 그들과 천양지차로 다르고, 텐간 다이스케가 각색한 [오디션] 과 [열세 명의 자객] 이 미이케 작품들 중에서도 돌출적인 "퀄리티" 를 보여주고 있는 것도 그러한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요번 작품도 내 욕심 같아서는 텐간 다이스케가 각본을 맡아서, 대담하게 서사의 잔가지들을 쳐내고 "영원히 사는 것 (불사)" 의 의미라던가, 끝없이 반복되는 폭력과 살륙의 전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업" 에 관한 고뇌라던가, 그런 실존주의적 주제를 탐구해 주었더라면 조금 더 훌륭한 한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소소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한의 주인]을 무척 재미있게 보았다. 도입부의 흑백으로 찍은, 만지의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이 사실 가장 마음에 들었고, 전편이 흑백이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 어마어마한 양의 만화 연재분을 축약한 것 치고는, 서사나 캐릭터의 동력에 있어서 크게 문제 삼을 만한 부분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바쿠후와 "일도류" 암살단의 비열한 뒷거래 같은 부분이 지나치게 생략되어서, 보는 관객들이 적당히 상상력을 동원해서 설명부족인 부분을 메꾸어야 하는 개소가 좀 있기는 있다만, 뭐 이러한 한편에 반드시 서사의 정교함을 기대하고 보러 오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연기자들도 다 매력적이고 대부분 적역이다. 키무라 타쿠야는 만화 주인공이라고 하면 공식적으로 읊을 것 같은 시비조의 대사들을 무척 진지하게, 쪽팔림 없이 연사(連射) 하는데, 참으로 예쁘다고 해야 하나, 30대의 여성 미인처럼 "쯔야 (艶)" 가 깃들인 그 얼굴을 흉측한 칼자국으로 삼등분하고 한쪽 눈동자가 없어진 끔직한 메이크업을 하고도, 로맨틱한 오오라를 마구 뿜어댄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열 세 살짜리 소녀로 보이기도 하고, 20대의 성인으로 보이기도 하는 스기사키 하나와의 쓸데없는 로맨스가 배제된 케미스트리도 좋다. 이 만지라는 놈은 닌자만화의 고전 걸작 [이가의 카게마루] (요코하마 미츠테르 원작) 에서 주인공 카게마루만큼 매력이 넘치고,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도 더 윤리적인 "불사신 악당" 아마노쟈키에서 영감을 받은 존재인 것 같은데, 아무리 찌르고 베어도 죽지 않는 다는 것이 특수능력이다 보니까, 절대적으로 강한 통상의 만화 주인공들과는 달리 강력한 적한테는 마구 팔을 잘리고 폐를 관통당하는 등, 온갖 처참한 방식으로 패배를 당한다. 그런 주인공의 "육체적 약함" 이 이 한편에 독특한 풍미를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위악적으로 보이는-- 앗다, 좀 피할 수 있으면 피해라! 그냥 들입다 뎀벼가지고, 이리 잘리고 저리 찍히고 그러지 말고 좀. 마조히스트냐-- 측면도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적 측 캐릭터들은 유감스럽게도 (예를 들자면 [데어데블] 시리즈에 등장하는 킹핀의 경우처럼)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그 입체적인 면모를 묘사하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자면, 원작의 농민 출신 자객 마가츠 타이토는 [7인의 사무라이] 의 키쿠치요를 펑크 고스 (Goth)판 악당으로 만든 것 같은 독특한 존재인데, 영화판에서는 그냥 만지와 한 판 붙고는 끝이다. 금발머리 하쿠린과 (에도시대인데 선글래스를 끼고 등장하는) 기이치 같은 캐릭터들은 아마도 속편에서 써먹을 생각이었는지, 얼굴만 비추고 사라지는 단역이고. 가장 인상에 남고 감독도 공들여서 묘사하는 인물은 삼절곤과 나기나타 (여성들의 무기로 간주되어온 손잡이가 창처럼 긴 장도[長刀])를 합친 것 같은 무기를 쓰는 여성 검객 오토타치바나인데, [데스 노트] 영화판의 미사 역으로 잘 알려진 토다 에리카가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면서 연기하고 있다. 그녀가 등장할 때 마다 극장에서 보는 북미 관객들이 으와~ 하고 탄성을 지를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열세 명의 자객] 의 스탭들이 많이 다시금 참여해서 높은 프로덕션 퀄리티를 유지해 주고 있는데, 고전적인 "찬바라" 의 율동과 CGI 를 가미한 현대적인 움직임을 적절히 배합한 액션이 뛰어나고, 각 캐릭터들의 이국적인 (아이누족의 의상이나 도구를 많이 참조한 듯) 옷차림과 메이크업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지만, 그렇다고 싸구려로 보이게끔 지나치게 현란한 묘사는 적절하게 억제하고 있음이 보인다. 내가 흥미 있었던 것은 엔도 코오지가 작곡한 음악인데, 도중에 "어? 저건 가야금에다가 아쟁?!" 라고 귀를 쫑긋거리게 만들었던 부위가 있었는데 나중에 엔드 크레딧에서 확인해 보니 정말 국악 연주자들이 합류했더라. 일본영화, 그것도 에도시대 배경의 찬바라 시대극에서 전통 한국 악기들을 듣게 되다니, 참 세상 바르게 변했구나 (비꼬는 말 아니고 진심임. 국악을 위해서도 좋고, 찬바라를 위해서도 좋고. 이것이 진짜 일한-한일 문화교류가 아니고 무엇이랴) 라는 감회가 새롭다. 


사지가 절단나고 선혈이 강처럼 흐르는 폭력묘사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특정 시대의 일본 시대극에 대한 향수랄까 덕심을 지닌 팬들에게는 마음이 훈훈해지는 (?) 역작으로 다가온 한편이다. 후속편이 나온다면 흑백필름으로 찍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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