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던 리치: 소멸의 Annihilation 


영국-미국, 2018.     


A DNA Films/Scott Rudin/Skydance Media Co-Production, distributed by Paramount Pictures. 화면비 2.39:1, 1시간 55분. 


Director & Screenplay: Alex Garland 

Based on a novel by Jeff Van Der Meer 

Cinematography: Rob Hardy 

Production Design: Mark Digby 

Music: Geoff Barrow, Ben Salisbury 

Editor: Barney Piling 

Sound Design: Ben Barker, Glenn Freemantle, Danny Freemantle 

Special & Visual Effects: Milk Visual Effects, Double Negative, NVisibible, Union VFX 

 

CAST: Natalie Portman (레나), Jennifer Jason Leigh (벤트리스 박사), Oscar Isaac (케인), Tessa Thompson (조시 레닥), Gina Rodriguez (아냐 소렌슨), Tuva Novotny (캐스 셰퍼드), Sammy Hayman (메이어), David Gyasi (대니얼), Benedict Wong (로막스), Sonoya Mizuno (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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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 마키나] 에 이은 알렉스 갈란드의 SF 작품인데, 제작 과정에서 스콧 루딘-- [데어 윌 비 블러드], [소셜 네트워크] 등의 명 제작자-- 이 스카이댄스 미디어-- [지오스톰], [잭 리처] 시리즈 등을 제작한 회사-- 로부터 자본금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공개 방식을 두고 마찰이 있었던 모양인지, 북미에서만 일반 극장 공개를 하고 나머지 국가에서의 판권은 넷플릭스가 인수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넷플릭스에 헐값에 팔아버렸다" 가 실제 상황을 제대로 표현한 것인 듯 하다. 영화를 관람한 후, 한국에서 보시는 관객 분들의 경우에는, 호화 캐스트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영화 개봉하시는 분들이 톰 크루즈나 브래드 피트 말고 북미 연기자들 캐스팅에 신경 쓰시기는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단관 상영 정도로 빨리 종영하고, 웬만한 지방에는 걸리지도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넷플릭스에서 4K 울트라 HD 로 걸리는 영화들의 경우, 극장용 스크린보다는 작지만 벽걸이 TV 보다는 큰 상영장을 무슨 영화 까페 같은 공간을 활성화해서 마련한 다음, 보고 싶은 분들끼리 모여서 옹기종기 관람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공상도 해보는데, 누군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자본력 있으신 분들은 한번 넷플릭스와 교섭을 해보시면 어떨는지. 


나는 [엑스 마키나] 가 멋있고 머리 좋은 영화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마음에 확 들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한편도 북미 평단의 비교적 고른 지지에도 불구하고 기대 수준을 조절하고 보러 갔는데, 한편으로는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예상외로 재미있게 또 감동적으로 보기도 하였다. 기본적으로는 여성 과학자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인과 만나서 안 그래도 심란한 인생이 송두리째 뒤집어지는 체험을 하는 이야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테드 장 원작의 [Arrival (난 이 영화를 한국어 제목 "컨택트" 라고 부르지 않으련다. 엄연히 Contact 라는 영화가 있는데 왜 또 난린겨, 헷갈리게시리)] 과 비교하게 되는 데, 정 우열을 가리자면 [Arrival]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물론 정확하게 따지자면 [소멸의 땅] 이 [Arrival] 보다 못 만들었다거나 사상적으로 밀린다거나, 심지어는 "하드 SF" 적인 논리성이 부족하다거나 (테드 장의 소설도 엄밀히 따지자면 일종의 "문학적 은유를 과학적 설정으로 몰래 치환하는" 트릭을 원용하고 있기 때문에 제프 반 데어 메어의 소설이 더 애매한 구석이 많다고 해서 덜 "과학적" 이라는 것은 불합리한 분석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것은 아닌데, 의외로 [소멸의 땅] 쪽이 더 "정통적," 심지어는 "전통적" 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런 측면의 오리지널리티가 모자란다는 점에서 [Arrival] 쪽이 다소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좀 잘난 체 하면서 "예술 영화적" 인 수사와 기법을 보란 듯이 이용하지만, 살을 떼내고 골격만 보면 결국은 통상적인 내용의 작품들을 만들고 있다 (자기네들은 아니라고 생각할 지 몰라도) 는 점에서도, 드니 빌뇌브와 알렉스 갈란드는 엇비슷하게 비교되는 감독들인데, 여기에 있어서도 나에게는 빌뇌브가 약간 덜 거슬리는 듯 하다. 갈란드는 뭔가 플롯상의 굉장히 중요한 전개를 지극히 평화스러운 음악을 배경에 깔면서 보여준다 던지, 그런 자의식 넘치는 터치에 좀 발목을 잡히는 경향이 있다. 


영화는 군대에서 7년동안 여군으로 복무하다가 세포 연구를 주제로 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 편리하기 이를 데 없는 경력을 지닌 레나의 시점에 철저하게 복속되어서 전개된다. 또한 이 한편은 시각적으로도-- 이점은 [엑스 마키나] 와 동일한데-- 레나가 강의 시간에 보여주는 잔털이 잔뜩 돋은 세포가 징그럽게 분열하는 양태의 슬라이드 라던가, 사물들이 물을 담은 유리컵이나 금이 간 거울에 비추어져서 "굴절" 된 모습 등의 주요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변주의 형태로 소환하면서, 대사와 플롯을 따라가는 주된 서사에 중첩되는 비주얼 스토리텔링의 양상을 보여준다. 레나가 남편 때문에 반 지원 반 강제로 참가하게 된 탐사 팀이 정체불명의 외계생명체가 지역 생태계를 변이시키고 있는 "X 구역" (난 "서던 리치" 가 이 상황-- 외계생명체의 간섭으로 "아른거림" 또는 "미광" 이 그 지역을 덮어씌우고 있다는-- 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을 일컫는 고유명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른거림"을 조사하는 임무를 맡은 정부 내 비밀 조직의 이름이라고 한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에 진입하기 전까지의 영화의 전개는 대놓고 지루하지는 않지만 관객들에게 큰 흥미를 유발시키지는 못한다. 


나탈리 포트먼은 레나 역으로 최근에 본 중에서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재키] 에서 재클린 케네디를 맡았던 것이 자신감을 안겨다 주는 경험이었던 모양인지, [블랙 스완] 이나 [제인 갓 어 건] 등과는 달리, 표현 방식에 안정감이 있고, 항상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던 신경증적인 "날카로움" 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녀가 "아른거림" 을 조사하고자 나서는 동기를 제공하는 특수요원 남편 케인 (이것 또한 성경적인 이름…) 역의 오스카 아이작이 심각한 미스캐스팅이라는 것이다. 갈란드가 캐릭터 해석을 그렇게 한 것인지, 아이작이 "감정을 억제하고 의중을 알 수 없게 연기해주" 라는 주문을 잘못 해석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케인은 영화 내내 공감이 전혀 안가는 캐릭터로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서 기분 나쁜 녀석이고, 그렇다 보니 그가 "아른거림" 안에 들어가서 무슨 변고를 겪었든 말든 감정이입이 안 된다 (X 구역 안에서 찍은 비데오-- 자세한 언급은 스포일러라서 안 하겠지만-- 안 에서는 그런 끔직한 행위를 하면서 왜 실실 웃냐 웃기는 또?). 


아이작과는 달리 X 구역에 진입하는 팀원들은 다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각자의 동기와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한 반응들도 지극히 신빙성 있게 잘 그려졌다. 이 팀원들이 처음에는 냉철하고 과학적으로 이상현상들을 분석하다가 점차 X 구역의 광기에 정신적으로 침범 당하는 과정은 서스펜스가 넘치고 캐릭터들의 시너지 효과도 좋다. 연기상을 준다면 모처럼 적역이고 강렬한 인상을 남길 기회가 주어진 제니퍼 제이슨 리 (사실 이런 종류의 역할들은 어떤 면에서는 30대 초 중반시절 리 여사의 전문이기도 한데… [Single White Female] 이라던가) 에게 돌아가게 되겠지만, 나는 사실 정보를 제공하는 대사-- 소위 말하는 expository dialogue-- 를 상당수 짊어진 채 액션 연기도 벌여야 했던 스웨덴 출신의 투바 노보트니와, 어찌 보자면 손해 보는 역할일 수도 있었던 의료 책임자 역의 지나 로드리게스의 연기를 칭찬해 주고 싶다. 테사 톰슨도 [웨스트월드] 등에서 봐온 오만하고 야심 넘치는 젊은 여자 역할들로부터 가장 대척점에 있는 신경증적이고 수동적인 캐릭터를 절제있게 구현해주고 있다. 그녀가 연기한 조시의 운명은 참 갈란드스럽게 표현되어 있어서, 좀 쓴 웃음이 나왔다는 점을 구태여 언급해둔다. 


차기 [미션 임파서블] 의 촬영감독으로 내정된 롭 하디를 중심으로 능력자 스탭이 빚어낸 X 구역 내의 뒤틀린 자연계의 모습은 지나치게 환상적이거나 인공적인 질감을 억제하고, 일면 리얼리티에 발을 딛고 있는 충분히 아름다운 비주얼을 보여주고 있으나, 기괴하게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균사류의 색감이라던가 그런 부분의 묘사는 그렇게 괄목할 정도의 독창성을 보여준다고는 하기 어렵겠다. 중간에 탐사 팀을 위협하는 괴물의 존재도 진 울프의 "신 (新) 태양기" 시리즈 등 여러 SF 에서 등장한 아이디어의 차용이고, 변이되는 생태계의 모습은 J. G. 발라드의 지구 멸망 주제의 여러 소설들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영화로 한정해서 고려해도 [존 카펜터의 괴물], [페이즈 4], [트리피드의 나날]등의 고전 SF 작품들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뭇 SF 팬들의 의견을 첨예하게 갈라놓을 요소는 이 한편의 클라이막스와 엔딩이 아닐까 싶다. 나는 "[2001년 우주 오디세이]를 연상시킨다" 라는 투의 북미 평론가들의 (게을러 터진) 감상들을 하나 이상 읽었기 때문에 아주 처절하게 바보스러운 "모이모이하게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시각효과 라이트쇼를 예상하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보러 갔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결말은 아니었고… 아니, 사실은 굉장히 "통속적" 인 엔딩이었다 ([Arrival] 과 비교해서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A. I.]에 비교해서도 "고전적" 인 "헐리웃 영화식" 결말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그리고 이 CGI 는 음… 뭐 나름대로 근사하다면 근사하다고도 봐 줄 수는 있는데, 아마도 일부의 관객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무엇이여, 백남준의 비데오 아트냐?!" 라는 식의 실망의 탄성이 흘러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레나가 겪는 부조리한 상황과, 그 결말의 함의가 묘하게 오시이 마모루판 [공각기동대] 와 닮았다는 것은 덤). 


비판을 하자면 여러 각도에서 할 수 있지만-- 이 한편도 여전히 "유전자 정보를 통해서 어떤 사람을 클론" 하는 것과 한 사람을 완전히 기억까지 "복제" 하는 것의 차이를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을 위시해서 (이 측면에 관한 한 [클로누스 호러] 같은 80년대 싸구려 스릴러들이 오히려 과학적으로 더 정확하다), "굴절" 이라는 기능으로 규정된 존재가 꼭 프리즈마틱한 색채를 띠고 나타날 필요는 전혀 없었는데 기어이 그렇게 나타난다는 식의 ("빛이 없어도 에너지원을 다른 데서 구하는 생명체" 라는 설정이라고 해서 새까만 색으로 칠한 괴물로 그려놓는 것 처럼… 실제로는 물론 빛이 없는 곳에 사는 생명체들은 흰색을 띄고 있다) 좀 답답한 접근 방식 등-- 궁극적으로 이 결말은 나에게는 충분히 먹혔다고 할 수 있다. 시각적인 측면보다도 오히려 음향효과와 제프 배로우- 벤 샐리스베리의 "분위기 중심" 전자음악이 조화롭게 맞물려 들어가면서, 이질적이면서도 어딘가 낯익은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청각 디자인이 정말 감탄스러웠다는 것도 지적해 두겠다. 


결론적으로, 나에게는 충분히 흥미롭고 아름다운 한편이었고 극장에서 보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본격 하드 SF" 라는 식의 마케팅에 넘어가서, 너무 극심하게 높은 기대를 가지고 관람하지는 마실 것을 충고 드린다. 늘 하는 말이지만, 영화의 내용이 딱 부러지게 다 이해가 되어야지 즐기실 수 있는 분들께는 비추고, [엑스 마키나] 의 스타일이나 질감을 좋아하셨으나, 그 작품의 성 정치 (sexual politics) 에 대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삐지셨던 분들께 오히려 추천 드리고 싶다. 여기서도 또 오스카 아이작이 재수 없는 남자 캐릭터로 나오긴 하지만, 나탈리 포트먼 캐릭터에게 그냥 이입하셔서 보시면 문제 없을 것이다. 


사족: 탐사 팀의 구성원이 전부 여성인 것은 제프 반 데어 메어의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온 설정이다. 영화 안에서는 여성 팀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무슨 "아른거림" 안에 여성 유전자와 반응하는 뭔가가 있어서 어쩌구 그런 "과학적" 설명이 주어질 줄 알았는데, 그런 알리바이는 일절 없고, "군인들 팀이 들어가서 아무런 소득이 없었으니 이제는 과학자들이 들어갈 차례" 라고 인선의 기준이 한 번 설명되고 나서는 더 이상 팀 구성원이 여성들이라는 것은 아예 언급도 되지 않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사족 2: 자세하게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되니까 자제하겠지만, 반 데어 메어의 원작은 무시하고-- 듣자니 3부작의 결말에 가서도 이 X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은 완전히 과학적 설명이 다 이루어지지 않는 모양인데, 아무튼-- 영화 안에서 주어진 (다소 상호모순적일 수도 있는) 단서들만으로 추정해 본다면, "외계생명체" 의 정체는 "인류 문명" 이라는 "병원체" 에 대해 누군가가 투입한 일종의 "우주적 항생제" 같은 것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섬멸 (annihilation)" 이라는 원제의 의미도 살아나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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