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피터 잭슨 Peter Jackson

주연
일라이저 우드....프로도 배긴즈
Elijah Wood....Frodo Baggins
숀 오스틴....샘 와이즈 '샘' 갬지
Sean Astin....Samwise 'Sam' Gamgee
이언 맥켈런....간달프
Ian McKellen....Gandalf
비고 모르텐젠....아라곤
Viggo Mortensen....Aragorn
앤디 서키스....스메아골/골룸
Andy Serkis....Sméagol/Gollum
존 리스-데이비스....김리
John Rhys-Davies....Gimli
올란도 블룸....레골라스 그린리프
Orlando Bloom....Legolas Greenleaf
빌리 보이드....페레그린 '피핀' 툭
Billy Boyd....Peregrin 'Pippin' Took
도미닉 모나한....메리아독 '메리' 브렌디벅
Dominic Monaghan....Meriadoc 'Merry' Brandybuck
미란다 오토....에오윈
Miranda Otto....Éowyn
버나드 힐....세오덴
Bernard Hill.... Théoden
휴고 위빙....엘론드
Hugo Weaving....Elrond
데이빗 웬햄....파라미르
David Wenham....Faramir
존 노블....데네소르
John Noble....Denethor
리브 타일러....아르웬 운도미엘
Liv Tyler....Arwen Undómiel
케이트 블란쳇....갈라드리엘
Cate Blanchett....Galadriel

프로도와 샘

전 지금까지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속한 영화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계속 전체 작품을 다 봐야한다고 우물거리며 최종 평가를 미뤄왔습니다. 물론 전 지금도 그런 짓을 계속할 수 있어요. 프로도 배긴즈의 여정은 일단 끝났지만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확장판을 보려면 아직 1년 정도 더 기다려야 하니까요. [반지의 제왕] 영화들은 극장판만 따져도 괜찮은 작품이지만 아무래도 확장판들이 더 낫습니다. 영화들이 더 깊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두 개의 탑]의 극장판을 본 관객들은 파라미르의 얄팍한 묘사에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그 영화의 확장판에는 왜 파라미르가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지를 설명하는 상당히 그럴싸한 장면이 삽입되어 있죠. 물론 원작과는 여전히 다르고 파라미르의 아버지 데네소르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변화시킨 구석이 있긴 하지만 결과는 극장판보다 더 설득력 있었습니다. [왕의 귀환]에도 최종 평가를 유보해야할 부분들이 몇 개 있습니다. 그들 중 하나는 한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사루만의 등장 부분이죠.

그러나 아무리 확장판이 기다려진다고 해도 이 정도면 충분히 삼부작의 결말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확장판이 영화에 무언가를 덧붙일 수는 있겠지만 영화의 기본 성격까지 바꾸지는 않죠. 적어도 우린 두 편의 확장판과 한 편의 극장판을 보면서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습니다.

우선 [왕의 귀환]이라는 영화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하죠. 영화는 일단 충분한 결말 노릇을 합니다. 프로도의 여정은 드라마틱한 종지부를 찍고, [두 개의 탑]에 나왔던 헬름 협곡 전투를 능가하는 전쟁 장면이 우르르 나옵니다. [반지의 제왕] 영화들의 평균 길이를 고려해도 상당히 긴 영화지만 꽤 재미있고 속도도 빠른 편이어서 결코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많이들 결말이 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3년 동안 끌어온 영화가 그 정도로 느긋하게 작별 인사를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겁니다. 그게 또 톨킨의 정신에 충실한 것이기도 하고요. [반지의 제왕]은 좋은 맥주와 담배가 주는 소박한 쾌락을 중간 대륙의 운명을 건 전쟁만큼이나 중요시했던 작품이니까요. 영화를 끝맺는 샤이어의 조용한 풍경은 미나스 티리스의 전투와 같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전 특히 고향으로 돌아온 네 명의 호빗들이 맥주잔을 들고 술집 구석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이 참 좋았답니다. 특별한 대사 없이 그들이 느끼고 있는 서글픔과 어색함, 조심스럽게 다시 싹트는 행복을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참 풍요로운 장면이었어요.

그러나 이 영화는 삼부작에 속해 있는 세 편의 영화 중 가장 시리즈에 종속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반지원정대]를 보는 데 특별한 사전 지식은 필요없습니다. [두 개의 탑]에는 사전 지식이 조금 필요하긴 하지만 반지원정대의 대원들이 따로따로 겪는 이야기들은 거의 독립된 이야기로 취급될 수 있을 정도였지요. 하지만 [왕의 귀환]은 앞의 두 영화 없이는 제대로 감상될 수 없습니다. 작품 고유의 성격도 부족한 듯 싶고요. 예를 들어 수많은 전쟁 장면들은 그냥 [두 개의 탑]의 연장처럼 보이거든요. 물론 이걸 꼭 영화의 단점이라고 밀어붙일 수는 없겠죠. 마지막 편의 어쩔 수 없는 성격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거예요. 반복적인 전투 장면들은 [두 개의 탑]에서는 거의 부당할 정도로 무시되었던 호빗 족 캐릭터들의 활약에 의해 보완되고요.

대충 언급할 건 언급했으니, 슬슬 삼부작 전체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끝을 보긴 해야 하니까요.

우선 제가 톨킨의 원작에 대해 별다른 애정이 없다는 것을 다시 밝혀야겠습니다. 근처 장르의 전문 작가 취급을 받는 통에 계속 이 작품에 대해 뭔가 말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긴 하는데, 전 정말 톨킨의 세계에 매료된 적이 없어요. 그건 피터 잭슨의 삼부작 영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같은 이야기라도 제대로 된 상하수도 시설과 전기가 있는 곳에서 일어나길 바랍니다. 설정이 이렇게 중세풍이라면 드레스입은 여자 캐릭터들이 더 많이 나오길 바라고요. 아무리 전쟁 이야기라도 말입니다.

물론 전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피터 잭슨의 삼부작 영화들도 좋게 봤으며 확장판 DVD세트를 모으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 이 작품에 어떤 특별한 감정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시작부터 그랬어요. 잭슨이 [반지의 제왕] 삼부작을 만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제 머리 속에 맨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이런, 앞으로 한동안 그의 '신작'을 못보겠구나."라는 것이었으니까요. 비교적 피터 잭슨의 평작으로 알려진 [프라이트너]의 계획을 따라갈 때도 이보다는 더 흥분이 되었었답니다.

그건 잭슨의 [반지의 제왕]이 어쩔 수 없이 종속적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잭슨보다는 톨킨을 위한 영화지요. 잭슨은 모험을 하는 대신 충성스러운 팬처럼 톨킨을 재해석했습니다. 영화는 만족스러웠지만 징그러울 정도로 개성적인 남자인 피터 잭슨이 내놓은 신작으로서의 가치보다는 블록버스터 스케일로 만든 장중한 톨킨 영화로서의 가치가 더 컸습니다.

물론 아무리 팬의 입장이라고 해도 자신의 비전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 문자 매체에서 영상 매체로 옮겨지는 동안 필연적인 개조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가장 불만스럽게 느꼈던 건 잭슨이 자신의 개성을 담는 대신 이 영화를 지나치게 블록버스터 풍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알아요. 그는 정통적인 톨킨 영화를 만들려 했지요. 그러나 그가 만든 최종 결과물은 순수한 톨킨 영화로 보기엔 지나치게 할리우드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차라리 그럴 거라면 잭슨 고유의 개성을 조금 더 담는 게 나았을 거라고 느껴질 정도로요.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군요.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은 원작에 충실하기엔 지나치게 원작에 충실한 영화였습니다.

톨킨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시적으로 미화된 중세였습니다. 수많은 전쟁이 묘사되고 설정이 어두웠지만 놀라울 정도로 목가적이고 낙천적이었으며 수많은 노래가 녹아 있었지요. 하지만 영화는 이들 대부분을 지워버렸습니다. 대신 톨킨이 극도로 말을 아껴 묘사했던 전쟁의 스펙터클을 잔뜩 늘려놓았지요. 물론 그것들은 대단한 장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이 작품은 비교적 전형적인 블록버스터가 되고 말았어요. 어떤 분이 게시판에서 언급한 쉴롭의 묘사도 그래요. 원작에서 쉴롭은 음산한 개성을 갖춘 흥미로운 괴물입니다. 하지만 잭슨의 영화에서는 그냥 거대하게 부푼 거미일 뿐이지요. 스크린 위에 뜬 쉴롭의 모습은 아무 문제가 없긴 해요. 하지만 원작을 잊는다고 해도, 이 영화가 무시무시한 좀비 엄마의 습격을 그렸던 [데드 얼라이브]의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걸 생각하면 조금 맥이 풀리죠. 원작의 '동화적'인 요소들은 분명 영화의 진지함과 사실성을 살리는 데 장애가 되긴 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삭제 과정 중 영화가 자기만의 특별한 개성과 시를 얻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잭슨의 개성이 완전히 묻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왕의 귀환]에 나오는 죽은 자들의 군대를 보고 "아, 결국 피터 잭슨이 좀비 영화를 만들었네!"라고 말했지만, 사실 영화 곳곳에 잭슨이 좋아할만한 요소들이 숨어 있는 것도 역시 사실이지요.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인 골룸만 해도 그래요. 정말 잭슨이 만들고 사랑할 법한 괴물이 아닌가요? [반지의 제왕]에서 그로테스크한 부분은 우리가 익숙한 잭슨식이었고, 리벤델의 묘사와 같이 화사하게 아름다운 장면들은 [천상의 피조물]과 같은 영화들에서 우리가 살짝 엿보았던 그의 보다 섬세한 측면을 분명히 보여주는 부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과는 그 주류 스튜디오 영화식 거대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피터 잭슨은 모세와도 같은 에너지와 비전으로 요새 할리우드를 지배하고 있는 비즈니스 스쿨 출신 CEO들이 감히 상상도 못할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사시켰습니다. 그것도 뉴질랜드라는 영화의 변방에서요. 잭슨이 몇 년 동안 [반지의 제왕] 삼부작을 만드는 동안 뉴질랜드의 영화인들은 엄청난 기술적 경험을 쌓았습니다. 최근 개봉된 [마스터 앤드 커맨더]도 그 성과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뉴질랜드 사람들이 피터 잭슨을 국민적 영웅으로 떠받들만 해요.

[반지의 제왕]을 일단 완성시킨 지금의 잭슨은 더 이상 왕년의 컬트 영화 감독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실 B. 드밀이나 데이빗 O. 셀즈닉과 같은 위대한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의 직계 후손처럼 보이기까지 해요. 그의 이런 측면은 차기작인 [킹콩]이 완성되면 더욱 분명해질 겁니다. 하지만 전 여전히 그가 다시 왕년의 컬트 영화 감독으로 돌아가 작고 괴팍한 영화들을 만들 날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03/12/23)

DJUNA

기타등등

확실히 시리즈 영화라는 게 아쉬움과 여운을 남기는 건 분명한 것 같군요. 다음 크리스마스 시즌에 [반지의 제왕] 영화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게 굉장히 신기하고 이상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