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AVORITE BLU RAY 2023 TEASER PHOTO 2.10.24


2023년의 타이틀 구입 내력을 보니 그 전년도에 비해 또 7 퍼센트 정도 줄어들긴 했습니다만, 별 의미가 없는 듯 합니다. 예년에 비해서 한국과 일본에서 출시된 블루레이를 긁어모으지 않은 탓도 있고, 지난 가을 시즌에는 그냥 진짜로 정신이 없어서 거의 자동적으로 버튼을 누르는 구매 행태도 영향을 받은 듯 싶기도 합니다만,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영어 버전에 썼듯이, 전두엽이나 시신경이 가버려서 더이상 영화가 뭔지도 모르게 되거나, 아님 전 지구가 작살이 나서 광학 미디어 자체가 생산이 안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때까지 이 리스트는 매년 올라가지 않을까 싶네요. 


언제나처럼, 이 리스트에 올라간 타이틀들은 그해 최고의 복원이라던가, 역사적이나 미적인 가치, 또는 평론가들에게 사랑받는 작품들, 이러한 일반적인 “좋은 영화” 기준들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드리고요. 아주 나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금년에 나에게 발견, 재발견 그리고 예상을 뒤엎는 즐거움을 선사해 준 타이틀들을 우선적으로 모았습니다. 예년에 비해서 세버린과 애로우 등 특정 레벨에 더욱 경도되는 것 같은 느낌도 나는데, 이것도 뭐 십년 정도 두고 봐야지 패턴을 파악할 수 있겠죠. 역시 언제나와 같이, 이미 1월달에 올라간 영어판 리스트와는 선정된 타이틀이 조금 차이가 있으니, 서로 비교해 보셔도 재미있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여느해처럼 20위부터 시작해서 역순위로 올라갑니다. 전년도 대비해서 구매량이 좀 줄었다고 했는데 여전히 타이틀을 스무개로 줄이기는 여의치 않았어요. 선정작의 숫자를 35개 정도로 늘려도 전혀 문제가 없을 수준이었습니다. 


요번에 20위에 걸린 것은 스티브 맥퀸 주연의 고전 서부극 [네바다 스미스] (1966, Kino Lorber Blu Ray- Region A) 입니다. 이 작품도 옛날에 TV에서 더빙판으로 본 뒤에는 도무지 볼 기회가 없었던 고전 서부극인데, 맥퀸이 연기하는 주인공 네바다 스미스 (영화화도 된 펄프 작가 해롤드 로빈스의 소설 [The Carpetbaggers] 에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캐릭터이므로, 이 한편은 60년대에는 드물게 보는 “프리퀄” 입니다. 원작의 영화판에서는 앨런 래드가 연기했죠) 의 진저리처질만큼 집요한 복수심의 묘사가 강하게 인상에 남아있습니다. 모두에 칼 말덴이 지휘하는 갱단이 스미스의 집에 들이닥쳐서 네바다의 원주민 어머니를 옷을 벗기고 칼로 베면서 고문하는 끔직한 장면이 어쩐 일인지 검열되지 않고 방영되었던 기억도 나네요. 영화 자체는 2시간 10분의 대작으로 약간 늘어지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만, 고전기 대하서부극적인 웅장한 요소와 마카로니 웨스턴 등의 영향을 받은 듯이 보이는 섬찟한 폭력묘사와 잔인성의 가감없는 표현 등의 현대적인 요소가 반드시 조화롭지는 않은 형태로 섞여서 존재하는 개성적인 한편입니다. 대가 루시앙 발라드가 담당한 와이드스크린 촬영의 아름다움과 장엄함도 괄목할 만 하지만, 역시 이 작품의 백미는 맥퀸을 둘러싼 아서 케네디, 칼 말덴, 마틴 란도오, 수잔느 플레셰트, 브라이언 키스 등의 명 조연진이 서부극적 아키타이프 캐릭터들을 그려내는 장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19 위는 다른 리스트의 존재감 넘치는 (퀄리티나 명성은 도외시한다 치고) 고전 영화들과는 달리 2년전에 공개된 튜니지아산 정치 스릴러 겸 다크 판타지/호러 작품 [아쉬칼 Ashkal: A Tunisian Investivation] (2022, Yellow Veil Pictures, Blu Ray- Region A) 입니다. 이 한편은 사실 “최근에 본 중에서 충격을 받을 만큼 훌륭한,” 그런 류의 수사가 적합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클라이맥스의 거대한 불길을 묘사한 CGI 등은 솔직히 많이 부족하기도 하고, 나같은 미국 사는 한국인 관객이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문화적인 측면도 비주얼 언어를 통해 구체적으로 잘 전달되어 있다고 반드시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리스트에 추가한 이유는, 이 한편이 지닌 “분신자살” 과 관련된 암울한 호러의 설정과 앙상하게 뼈만 남은 거대한 공룡들의 잔해를 연상시키는, 사막 한가운데 건설되다 말은 아파트와 빌딩들 등이 그 문화적인 이질감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현대사적인 경험에 신기하게도 맞닿아 있다는 감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아담스 가족의 [Hellbender], [Luz], 조지 로메로의 구작의 복원판 [The Amusement Park] 등을 출시하고 영화 배급도 하는 엘로우 베일 픽처즈에서 내놓은 블루 레이에는 주연배우 유셉 체비와 파티마 우살리의 인터뷰와 페스티발 프로그래머 타일러 윌슨의 에세이 등 주로 영화제지향적인 서플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18 위는 영화의 퀄리티로만 따지자면, 들쑥날쑥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찰스 밴드의 엠파이어 픽쳐스 공개작들의 애로우 비데오의 특별판 박스세트입니다. (1984-89, Arrow Video, Blu Ray- Region A) 이 영화들 자체는 옛날에 VHS 로 빌려보던 “B급” 활동사진들입니다만, 애로우에서 VHS 테이프 케이스 자체와 동네 비데오 가게를 들락거리던 시절의 추레하게 (?) 가슴 설레던 기분을 방불케하는 디자인으로 내놓은 박스세트에서 물큰 풍기는 B급영화 관람행태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야말로, 어쩌면 영화들에서 얻어지는 마이너한 즐거움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스튜어트 고든이 스톱 모션 기법을 써서 만든 저예산 거대 로봇 액션 활동사진 [Robot Jox]— [패시픽 림] 이 호나우두나 손흥민이라면 [로봇작스] 는 동네 조기축구회에서 축구 잘하는 아저씨 같은 스케일의 차이가 납니다만서도— 가 예상을 뒤엎고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캐릭터 디자인부터가 [스타쉽 트루퍼] 등보다 뛰어나고… 이런 얘기는 또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죠. 


17위는 2023년도 리스트를 제패하다시피 한 세버린 필름즈에서 별다른 프로모션이 없이 내놓은 60년대 초반의 이탈리아 흑백영화 [Libido] (1963, Blu Ray- Region A) 입니다. 영화 자체는 네 명의 문제가 많은 캐릭터들이 외딴 성곽처럼 바다를 마주보는 절벽에 세워진 저택에서 서로를 속고 속이면서 심리전을 벌이는 상당히 연극적인 소품입니다만, 수많은 이탈리아 장르영화의 각본을 집필한 에르네스토 가스탈디가 속성으로 만들어낸 플롯과 설정은 이후에 양산되는 지알로 장르의 특성들의 원형을 배태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마이너 히치코크 영화처럼 나아가다가도, 전혀 공감이 안가는 캐릭터들이 얽히고 섥혀서 막판에는 서로 죽이고 광기에 휩싸이고 하는 모습이 조금 천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종류의 착취적인 이탈리아영화의 취향이 불끈 고개들 드는 그런 한편입니다. 지알로 장르의 팬인 저로서는 문화사적인 (?) 흥미를 돋구지 않을 수 없는 타이틀입니다. 


1970년대에 중앙극장인지 대한극장에서 마른 침을 삼키면서 화면을 응시하는 관객들과 함께 관람한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 일급 스릴러 [마라톤 맨 Marathon Man] (1976) 의 Kino Lorber 4K UHD 블루 레이가 16위에 등극했습니다. 1970년대 미국영화가 왜 4K UHD 로 봤을 때에 극장에서 봤을 당시의 화면과 사운드의 질감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인지? 이것이 단순히 나의 기억에서 비롯된 주관적인 판정인지, 아니면 실제로 당시의 미국 영화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그런 퀄리티를 지니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나는 1977년에 극장 공개된 오리지널 [스타 워즈] 를 거지같은 수정주의 CGI 특수효과를 다 지워내고 4K UHD 로 복원해서 출시하고 그것을 우리 집의 홈 씨어터로 볼 수 있다면, 나의 노스탈지아를 까마득하게 초월하는 관람경험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영화 얘기를 하자면, [마라톤 맨] 은 그 스릴러로서의 공력에 있어서 하나도 쇠퇴하지 않았고요, 오히려 70년대 뉴욕시티의 풍광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타임캡술의 기능이 더해져서 역사적인 의의까지 갖추게 되었죠. 그러나 많은 고전 미국 영화—존 슐레징어 같은 “외국인” 이 감독했다손 치더라도— 들이 그렇듯이, 이 한편의 궁극적인 파워는 더스틴 호프먼과 로렌스 올리비에로 대표되는, 전혀 문화적, 기술적으로 다른 형태의 접근 방식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멱살을 잡고 놔주지 않는 연기력의 발현에서 나옵니다. 


15위는 파워하우스 인디케이터에서 출시한 영미권 고전영화의 시리즈 중의 하나인 존 휴스턴 감독의 [프로이드 Freud] (1962, Powerhouse Indicator, Blu Ray- Region B) 입니다. 영어 리스트에서는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는데, 왜 그 리스트를 작성했을 때에는 이 작품을 넣고 싶지 않았었는지, 내 마음속의 심층심리에 한번 물어보고 싶어지는 군요. 아마도 영화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프로이드 심리학의 억압의 기제에 관한 이론이 지난 2-30년동안에 어린 시절의 성적인 문제에 관해 우리가 알게 된 사실들에 의해 더이상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게 되었다는 영화외적인 문제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거의 표현주의 호러영화— 오리지널 [환상특급/제 6지대] 의 그것을 더욱 몽환적으로 만든 것 같은 제리 골드스미스의 음악이 가장 그러한 특질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고 여겨집니다만— 에 가까운 질감과 더불어, 1962년이라는 시류를 고려한다면 사실상 경이적으로 성적인 서구 사회의 터부를 뚫고 들어가는 공력을 발휘하는 한편이고, 그런 진보적이고 파격적인 요소가 더글러스 슬로콤의 흑백 촬영의 장중한 아름다움에 힘입은 형식적으로 보수적인 고전 헐리웃 전기영화적인 요소와 역시 반드시 조화롭지는 않은 방식으로 혼재하는 이색작입니다. 인디케이터의 학구적이고 역사적 맥락에 충실한 큐레이션이 더욱 빛을 발하는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4 위는 TV 영화 [퀘스터 테이프스 The Questor Tapes] (1974, Kino Lorber, Blu Ray- Region A) 에 갑니다만, 이 한편은 과연 이 글을 읽으시는 한국어 사용자분들 간에 몇명이나 기억을 하고 계실런지 궁금합니다. [스타 트렉] 의 창시자인 진 로든베리가 시리즈의 파일럿으로 구상한 TV 영화인데, 그가 [스타 트렉] 의 에피소드에서도 써먹었던— 인류를 뛰어넘는 초지성 외계인이 인류에 지나친 간섭을 하지 않으면서 그 “어리석음” 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에이전트를 심어놓는다는— 어떻게 보자면 조금 재수없게 여겨질 수도 있는 설정에 기반을 두고 있지요. 이 한편의 주안점은 스스로 머리칼을 이식하고 귓바퀴 등 미비한 부위를 제작해서 활동하는 주체적인 안드로이드 퀘스터의 캐릭터와 그를 연기한 로버트 폭스워스의 훌륭하고 정교한 연기에 있습니다. 과거에 한국에서 상영된 TV 프로그램-영화 중 AFKN 에서 뜻도 모르고 관람했거나 더빙판으로 (60-70년대의 한국의 더빙 성우들은 밑의 [콜럼보] 에서도 보듯이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고 생각합니다) 관람했던 작품들을 이제 거의 고전 극장영화의 복원판에 맞먹는 퀄리티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누차 말했지만 블루 레이 시대의 경악스러운 경험 중의 하나로 손꼽힐 만하죠. 


부천영화제에서 특집을 하기도 했던 스페인의 기재 (奇材)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의 데뷔작 [뮤턴트 행동대 Accion mutante] (1992, Severin Films, 4K UHD Blu Ray) 가 13위인데, 그냥 위악적으로 못된 정도가 아니라, 진짜 정치적 공정함을 지지밟는 태도로, 저예산 [스타 워즈] 빠꾸리에다가 가장 질알맞은 마카로니 웨스턴과 기관단총을 아무렇게나 쏴갈기는 양아치 어번 액션을 가장 괴팍하고 신경을 거스르는 형태로 조합한 한편입니다. “뮤턴트 행동대” (이름만 뮤턴트지 실제는 샴 쌍둥이와 지적 장애 거인을 포함한 신체 장애자들입니다. 이 설정부터 벌써…) 가 납치한 부호의 영양의 입에 테이프를 붙여서 자갈을 물리는게 아니라 금속 호치키스를 박아서 말을 못하게 하고, 또 이 웁웁하고 말을 못하는 여성을 코메디 소재로 써먹는 정도니까 말 다했죠. 7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를 보고 그 여성혐오때문에 불편하신 분들은 아예 이 한편에 접근도 하지 마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놀랄 노자인 것은 이 펑크적-“다 때려쥑여” 적 아나키스트적 데뷔작이 세버린의 4K 스캔으로 펼쳐지면서 완전 예술적이고 정교한 디자인의 정체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캐릭터들이 악인 선인 할것없이 다 폭발해서 산산조각이 나거나, 총에 머리가 관통되어 뇌수가 튀기거나, 팔다리가 떨어져서 고래고래 악다구니를 지르는 수퍼 고어 결말조차도 “장쾌” 하게 느껴지는데, 과연 VHS 나 퇴색된 리바이벌 프린트로 봐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감독들의 (본인들이 봐도 절라 후졌다고 여길만한) 데뷔작이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는 날은… 당연히 오지 않겠죠. 하지만 박찬욱감독의 [3인조] 를 이런 정도의 화질과 음질로 언젠가는 볼 수 있으리라는 그런 야무진 꿈도 꿀 권리가 나에겐 있습니다. ([3인조] 가 데뷔작 아닌거 알아요. 아니까 또 그런거 지적하는 코멘트 하지마셈) 


12위는 역시 세버린에서 시리즈로 내놓을 모양새인 (방금 2월에 출시된 제 2집을 구입한 직후입니다) [사자 死者의 무도 舞踏 Danza Macabra] 제 1집 (1964-71, Severin Films, Blu Ray- Region A) 이 빠질 수는 없겠죠. 이 박스세트에 수집된 작품들도 허심탄회하게 말하자면 걸작은 커녕 문제가 많은 “B급” 영화들이지만,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아르젠토나 마리오 바바의 명작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곡하게 들어찬 서플로부터 시작해서, 마치 두돈짜리 금메키 반지를 진짜 4 캐럿 다이아몬드인것처럼 정성껏 모시는 세버린의 접근방식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네요. 


11위는 [The Giant Gilla Monster-The Killer Shrews] (1959, Film Movement, Blu Ray- Region Free) 입니다. 이 두 편은 위에서 말한 B급 비데오 직통 출시작보다도 더 처연하고 추레하게 “이류” 인 작품들인데, 의외의 명성이 있습니다. [The Giant Gilla Monster] 는 펫 샵에서 판매할 것 같은 미국산 얼룩도마뱀이 별로 잘 만들지 못한 미니어처 집이나 차들을 엉거주춤 건드리면서 천천히 기어가는 “특수효과” 가 차밍하다면 차밍한 태작이지만, [The Killer Shrews] 는 훈련된 엽견 (아마도?) 들에게 털버거지를 씌워서 카무플라지를 하고, 또 접사에서는 이빨이 마구 뻐드러진 흉칙한 인형머리통으로 대치하는 역시 한심두심한 “특수효과” 에도 불구하고, 괴상할 정도로 섬찟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괴작인데요. 후자는 너무나 거지같은 화질의 판권이 없는 퍼블릭 도메인 비데오로 보다 만 경험밖에 없었던 한편인데, 엄청나게 깨끗하게 복원된 필름 무브먼트의 블루 레이를 통해 관람한 것이 2023년의 “블루 레이로 보니 그 영화가 그 영화가 아닐쎄” 경험의 최고점을 찍는 경험이었습니다. 


10위는 내가 딱히 선호하는 감독은 아니지만 파트리스 라꽁트의 솜씨가 가장 잘 발현되었다고 여겨지는 [무슈 이르 Monsieur Hire] (1989, Kino Lorber-Cohen Media Group, Blu Ray- Region A) 의 블루 레이가 차지했습니다. 프랑스영화는 일반적으로 내가 좋아하면서 자주 보게 되는 영화들보다 그 명석함이나 예술적 결기에 감탄하면서 높이 쳐주지 않을 수 없는 타이틀들이 더 많은데 (같은 라틴 유럽이라도 그런 면에서는 이탈리아 영화와는 아주 다릅니다), [무슈 이르] 는 그러한 일반론과 아무 관계없이 그냥 계속해서 보게 되고, 볼때마다 결말을 알고 있어도 주인공의 (그의 어리석음과 자기중심적인 “나쁜 점” 도 포함해서) 심리와 행동에 항상 몰입하게 되는 프랑스영화입니다. 


9위는 다시금 나의 지구상, 역사상 최애 영화감독인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버추얼 리얼리티 게임에 관한 소고 [eXisTenZ] (1999, Vinegar Syndrome, 4K UHD Blu Ray) 에 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이 작품을 극장에서 감상한지 벌써 25년, 4반세기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지난번에 영국의 101 필름스에서 애장판 블루 레이를 내놓았을 때 이걸로 끝장판이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비네가 신드롬의 4K 새로이 스캔된 판본을 보니 다시금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네요. 그리고 금년에도 또한번 탄식, 아 진짜 [M 버터플라이] 애장판-복원판은 언제 나오나. 


8위는 평소의 나의 취향을 완전히 뒤집고 월트 디즈니의 오리지널 [백설공주 The Snow White and Seven Dwarfs] (1937, Disney, 4K UHD Blu Ray) 의 4K UHD 판본을 올렸습니다. 나는 내 리스트를 읽는 분들은 감을 잡으시겠지만 디즈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디즈니에서 자신들의 보물단지인 클래식 타이틀들을 다루는 방식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 보석같은 고전 애니메이션의 명작들을 재발견하게 해주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까지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디즈니판 [백설공주] 는 사실 동화의 영화화라는 측면에서는, 심리적으로 흥미있고 발전적인 부분을 걸러냈다는 느낌이 안 드는 것은 아닙니다. 새삼스럽게 보게 되면 “마법사 계모의 등장 신이 이것밖에 안되던가?” 라는 류의 의문들이 들게 되긴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4K UHD 스캔의 판본은 이전에 본 어떤 판본보다도, 로토스코핑을 통해 실제 연기자들의 움직임을 미칠 정도로 정교하게 묘사하고 실사영화와 거의 아무런 차이가 없는 배경 그림의 음영과 심도에 있어서 “영화적인 경험” 을 선사해 준다고 여겨집니다. 실제 홈 씨어터에서 보면 화면의 “움직이는 그림들” 에서 발산되는 일종의 장엄함까지 느낄 수 있는 놀라운 경험입니다. 


7위에는 영어권 리스트의 순서를 좀 뒤집어서 고샤 히데오 감독의 마카로니 웨스턴 풍의 시대극 [키바 오오카미노스케 Samurai Wolf] 와 그 속편 [키바 오오카미노스케: 지옥 베기 Samurai Wolf 2] (1966-67, Film Movement, Blu Ray- Region A) 를 놓으려고 합니다. 고전 시대극, 소위 칼잡이 영화들 (“사무라이영화” 라는 표현 전 싫어합니다. 그건 yangnom 들이 쓰는 말이고, 그런 식으로 규정하려면 대부분의 한국의 사극은 “양반영화” 죠) 의 팬인 저로서는 기쁘지 않을 수 없는 출시작인데, 좀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타이틀들도 포함해서 고샤 히데오 감독의 시대극들이 계속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6 위는 요번도 파워하우스 인디케이터가 아니면 아마도 시도도 하지 않았을 듯한 박스 세트인 [토드 슬로터의 범죄의 양상 The Criminal Acts of Tod Slaughter] (1935-40, Powerhouse Indicator, Blu Ray- Region A) 에 갑니다. 아마도 영화사적-아카이브적인 가치로 본다면 이 리스트의 모든 타이틀들을 능가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마도 고전 영화에 정말 빠작한 분이 아니라면, 영미권에서 사는 웬만한 영화팬이라도 이름도 들어보기 힘들었을 존재인 토드 슬로터의 주연작들을 여덟편이나 복원하여 학구적인 열성이 가득 담긴 코멘터리와 주석을 달아서 내놓은 인디케이터의 공력에는 감복할 따름입니다. 이 여덟편은 나중에 팀 버튼도 영화화한 [악마의 이발사 스위니 토드] 를 포함해서 정말 여러 종류의 장르를—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고전적인 고딕 호러, 탐정물, 20세기 초반풍의 범죄극, 심지어는 제임스 본드를 연상시키는 하이 테크 (1930년대 당시의 기준으로 봤을때) 첩보 스릴러까지—섭렵하고 있는데, 물론 그것들을 다 관통하는 존재는 토드 슬로터라는 연기자가 체화한 “빌런” 이죠. 단순한 “악역” 이 아닌 연기자와 캐릭터가 융화된 “무비 빌런” 의 형성과정이라는, 문화사적 측면에서도 흥미가 차고 넘칩니다. 


5위는 도무지 저항할 수 없는 매력에 의해 다시 빠지고 마는 마리오 바바의 세계, 그의 대표작 [피와 검은 레이스 Blood and Black Lace] (1964, Arrow Video, Blu Ray- Region B) 에 바칩니다. 이 영화도 참 다양한 판본으로 관람했는데, 솔직히 애로우 비데오의 애장판을 이 리스트에 넣은 이유는 정말 그 사양의 모든 측면에서 방사능처럼 발산되는, 바바의 환상적이고 매혹적이면서 또한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타부를 건드리는 영상세계에 대한 애정 때문입니다. 요번 리스트에서는 그냥 스트리밍에서 4K 로 보는 것과 뛰어난 사양의 블루 레이 (심지어는 이 타이틀은 4K UHD 도 아닙니다) 로 보는 것의 차이점을 웅변적으로 가장 잘 말해주는 초이스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일전하여 작년의 2위와 마찬가지로 인디케이터에서 복원하여 출시한 멕시코 호러의 고전 박스세트 [Mexico Macabre] (1959-63, Powerhouse Indicator, Blu Ray- Region Free) 가 금년의 4위에 등극했습니다. 여기에 수록된 타이틀들은 Casa Negra 라는 디븨디 레이블에서 이미 출시된 바 있고 저도 네 편 중 세 편을 이미 디븨디로 소유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새롭게 수집되고, 단장되고, 다시금 아름답고 깨끗한 모습으로 재등장할 때마다 다시금 손에 넣을 수밖에 없는 것이 컬렉터의 운명이죠. 네 편 중 [The Brainiac] 이라는 수퍼맨 빌런 이름가 동일한 영제로 알려진 [공포의 남작] 은 황당하기로 따지자면 영화사상에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괴작중의 괴작인데, 심지어는 그 타이틀까지도 너무나 말도 안되는 비까번쩍한 화질과 음질로 등장하니까요. 뭘 반론이니 불평이 필요해요?


[콜럼보] 의 1970년대 시리즈 전집 (1968-1978, Kino Lorber, Blu Ray- Region A) 이 3위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어떤 타이틀이 1위를 차지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만, 이 박스세트는 원래 키노 로버에서 열 몇편의 에피소드에 첨부될 제 전문가들의 코멘터리를 녹음까지 다 했다가 막상 출시된 판본에는 추가하지 않는 바람에 온라인에서 비난의 폭풍이 일었던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고려한다손 치더라도 이 어마무시한 박스세트를 리스트에서 제외할 수는 없었죠. [콜럼보] 라는 TV 시리즈의 위대성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말해봐야 입만 아프겠지만 이 박스세트의 특출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를 들라고 한다면, 콜럼보경위가 캐릭터로 등장하는 1968년 (!) 의 TV 영화 [살인처방 Prescription Murder] 가 당시의 극장영화 복원판으로도 보기 힘든 수준의 마치 어제 만들어진 것은 화질로 복원되어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의 콜럼보는 시리즈 후기에 등장하는 항상 마누라 타령하고 닥스훈트 견공을 차에 태우고 다니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전혀 아니고, [우주 전쟁] 의 히어로 진 배리가 연기하는 냉혈한 살인범보다 더 냉혹하고 사람들의 심리를 조작하는 것을 거리껴하지 않는 “악당” 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한국의 관객들도 아주 어린 분들이 아니라면 콜럼보와 콜럼보의 마누라 타령을 모르시는 분들은 없을 터인데, 이 [살인처방] 에 나오는 경위님의 이미지를 보시면 상당히 놀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2위는 역시나 세버린에서 출시한 거대박스세트 [쿠싱선생의 이색작 모음집 Cushing Curiosities] (1962-1974, Severin Films, Blu Ray- Region Free/A)] 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 세트에 담긴 작품들은 이미 여러 기회에 출시된 피터 쿠싱선생님의 헐리우드나 영국의 유명작들— 예를 들자면 [스타 워즈]나 해머의 프랑켄슈타인 시리즈— 이 아니고 평론가들에게는 거의 무시당하거나, 또는 준수한 작품이라도 시류를 타고 유행하지 못하고 명성을 회복하지 못한 마이너 타이틀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BBC 에서 열 몇편을 제작했다가 오리지널 테이프 마스터가 유실되는 바람에 [바스커빌의 개] 전-후편을 비롯한 여섯 편밖에 남아있지 않는 60년도판 [셜록 홈즈] 를 위시해서,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은 결코 쿠싱선생님이 까메오로 얼굴만 내미는 수준이 결코 아닌, 선생님의 연기력과 카리스마를 충분히 준별할 수 있는 알찬 내용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대망의 1위는 매년마다 제가 연초에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한편이 선정되곤 하는데, 요번에도 어김없이 그렇게 되었네요. 키노 로버도, 크라이테리언도 스튀디오까날도 아닌 애로우에서 내놓은 [볼사리노 (보르살리노) Borsalino] (1970, Arrow Video, Blu Ray- Region A) 가 최고석을 차지했습니다. 이 얘기 언제도 한 것 같은데 이 한편의 제목은 “볼사리노” 가 아니고 “보르살리노” 죠. 알 하고 엘 발음의 구별이 가능한 한국어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잘못된 표기가 정착하게 된 이유는 일본어로 발음하면 “보루사리노” 가 되기 때문에 불어도 영어도 관심없이 그걸 일어로부터 엉터리 중역했던 한국의 아자씨들이 자의적으로 “볼사리노” 로 만들어 버린 것이죠. 당시의 유럽 영화들의 한국어 제목들 중에는 그냥 의미불명 정도가 아니라 제목으로서의 기능을 전혀 못하는 ([Trois hommes á abattre 도살될 세 명의 남자] 가 [호메스] 라는 제목으로 버젓이 극장공개되고 그런 일도 있었으니까) 경우가 꽤 있었고, 이것이 다 NHK 방송 부산에서 받아다 보고 빠꾸리로 TV 프로그램을 디자인하던 시절에 횡행하던 신식민지적 일본문화의 종속화라는 엄연한 현실의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꼬라지와 병행해서 학교에서 동원된 학생들은 “독도는 우리땅” 이라고 부르짖고 하던거는 예나 지금이나 별 다르지 않습니다). 


전 사실 이 한편을 극장관람에 준하는 퀄리티로 본다고 한들 그렇게 감동적으로 다가올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하질 않았죠. 그런데 일단 보고 나니까, 뭔가 금년에 본 모든 영화들 중에서, 영화라는 것을 겨우 알게 되었던 어린 시절의 가슴이 울렁거리고 멋진 것을 보면 저절로 탄성을 내뱉곤 하던 관람체험을 이제 노년의 길목에 선 나이에서 다시금 하게 해주는 최고의 한편이라는 사실을 소름돋게 깨달았습니다. 브라보 애로우! 


으햐~ 3월 1일이 다 된 시점에서 겨우 완성했군요. 그래도 늦어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요. 역시 작년처럼 겨울학기가 끝나는 3월말부터는 착실하게 영화 리뷰들을 계속 올려보겠습니다.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 ^ 예년처럼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드리고, 언제나처럼, 여러분이 출생한 연도보다 더 오래된 영화를 한달에 한번도 좋고, 아무튼 정기적으로 일부러 찾아 나서서 감상해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낡은 영화” 를 무시하고 업수이 여기는 영화계에 장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길.


출시작의 카버 사진들은 네이버 블로그인 M의 데스크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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