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작이고 영국 영화입니다. 런닝타임은 2시간 9분. 장르는 드라마구요. 스포일러는 없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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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제가 즐겨보는 영화라면 저 불길하게 생긴(?) 나무 아래에 저 삽으로 사람을 묻어야 하지만 그런 거 안 나오구요.)



 - 배경은 영국, 런던입니다. 톰과 제리(의도적인 작명이겠죠. 극중 본인들도 이걸 의식하고 있거든요 ㅋㅋ)라는 초로의 부부가 주인공이고 이들이 사는 집이 주요 배경이에요. 이 둘은 정말 인위적이다 싶을 정도로 완벽한 삶을 살고 있죠. 둘 다 환갑이 넘은 나이까지 전문직 현역으로서 능력 발휘하며 잘 살고 있구요. 아들 하나 낳아서 바르고 쾌활한 녀석으로 잘 키웠구요. 셋이 모두 다 함께 투게더로 관계도 넘나 좋아요. 다들 사상도 정치적으로 올바르면서 교양 넘치고 언변들도 좋고 주변 사람들 잘 챙기구요. 도대체 저 인간들 삶에 그림자라는 게 존재는 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셋입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이 셋으론 얘기가 안 되겠죠.


 그래서 제리의 직장 동료 메리라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이 분은 그야말로 톰과 제리에게 결핍(?)된 모자람들을 다 집약시켜 놓은 듯한 양반이에요. 나이는 이 둘보다 살짝 차이가 나게, 상대적으로 젊습니다만 그래도 일반적인 의미로 '젊은' 나이는 전혀 아니구요. 늘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매우 비자발적인 싱글로 살면서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인생이 쭉 우울하긴 했지만 본인의 하소연을 잘 들어보면 결국 다 본인의 잘못된 선택들이 거듭된 결과이구요. 경제적 상황도 안 좋고. 상황 판단력이 심히 떨어지는 와중에 눈치도 없고 결정적으로... 아닌 척하지만 결국 자기 밖에 모릅니다. 어찌보면 지금 그 모양 그 꼴로라도 살아서 사회생활하며 버티고 있는게 용타 싶을 정도로 멘탈도 다 망가져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바로 이 '메리'가 도덕책 속 삽화 가정의 실사 버전 같은 톰과 제리가 살고 있는 인생의 일부분이 되길 간절히 원하며, 자꾸만 출몰해서 좌충우돌하다가 스스로의 목을 조여가는 과정을 참으로 차분 무심 시크하게 보여주는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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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재밌어서 올려 보는 다른 나라 버전 포스터. 다 좋은데 레슬리 맨빌은 별로 안 닮았...)



 - 원제는 'Another Year' 더군요. 그대로 번역하자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또 한 해' 정도 되려나요. 근데 뭐 지금 제목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세기말 유행이었던 '세상의 모든 ~~' 시리즈 생각도 나고 좋더군요. ㅋㅋ 다만 그렇게 영화 내용과 잘 맞는 것 같지는 않구요. 영화 구성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되어 있거든요. 그렇게 일년 동안 계절별로 톰과 제리가 보내는 하루(혹은 이틀)를 보여주는데 거기에 매번 메리가 튀어나와서 친한 척하다가 결국 사고를 친다... 는 식이에요.



 - 영화의 만듦새에 대해 뭐라뭐라 떠드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또 제가 뭐라 할 말이 없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워낙 제가 즐기는 장르가 아니기도 하구요. 그래서 다짜고짜 결론부터 내고 아무 소리나 떠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뭐랄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하지만 별 특별한 건 없는 듯이 유유히 흘러가다가 순간순간 헉! 하는 순간들을 안겨주는 그런 이야기이고 그걸 정말 자연스럽게, 완벽하게 만들어 놨어요. 식상한 표현이지만 '대가의 솜씨' 같은 식의 미사여구로 대충 때우고 넘어가고 싶어지는. 뭐 그런 영화였구요.

 배우들의 연기 또한 당연히 좋았고 그냥 좋은 게 아니라 되게 좋습니다. 주인공 3인방의 연기 구경만 해도 2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을 다 보상 받고도 좀 더 얹어서 돌려받는 느낌. '이런 게 진짜 잘 하는 연기구나'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계속 감탄하면서 봤네요. 

 그리고 그게 또 영화의 톤과 완벽하게 녹아들어서 더 좋았습니다. 따지고보면 혼자서 막 튀는 캐릭터인 메리를 연기한 레슬리 맨빌의 연기조차 딱히 '화려하다'는 느낌이 없어요. 그냥 모두가 다 자연스럽고, 모두가 다 현실의 사람들 같습니다. 앞서서 톰과 제리가 참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이라고 얘기했는데, 그것도 상황만 따지자면 그렇단 얘기고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런 느낌도 전혀 없어요.

 그 외에도 촬영 같은 것도 그렇고 각본도 그렇고 다 '별 거 없는 것 같으면서 그냥 자연스럽고 진짜 같은' 느낌을 계속 주고요. 음... 이런 얘긴 그만하구요. 

 암튼 평소의 저와 참 안 어울리고, 또 감당도 안 되는 영화였지만 그냥 좋았습니다. 이게 제 감상이구요. 이제부터 아래에 적을 얘긴 다 그냥 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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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완벽한 부부 톰과 제리, 앉은 순서대로 제리와 톰입니다.)



 - 처음엔 좀 당황스럽습니다. 제가 워낙 장르물만 보며 살다 보니 이렇게 느긋하게 스타트 끊는 영화를 볼 때마다 당황하곤 하죠. ㅋㅋ 저엉~말 느긋하게, 별다른 설명 없이 걍 제리를 보여주다가, 톰을 보여주다가, 둘이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으로. 특별한 맥락 없이 흘러가는 장면들을 보면서 충분히 시간을 들이고 나면 대충 '아 이런 사람들이구나'라고 감이 잡히고. 그 때쯤에야 이제 메리가 출동을 해요. 그러고 갑자기 이야기에 긴장감이랄까 자극이랄까... 그런 게 생기는 것인데요.


 그 긴장과 자극은 당연히 스릴러나 호러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뭐랄까... 그러니까 이런 거죠. 나랑 친하거나 내가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알긴 어느 정도 잘 아는 사람이 아무리 봐도 톡톡히 개망신 당할 것 같은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이랄까요. 어떤 측면에선 어지간한 스릴러나 호러보다 더 긴장감이 쩐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표면적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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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들의 행복에 홀려 침입을 시도하는 메리! 라고 하면 꽤 스릴러 같은데 말이죠.)



 - 사계절을 거치고 런닝타임을 흘러 보내는 가운데 관객은 당연히 메리와 톰 & 제리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메리는 그냥 멘탈이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여러모로 이미 글러 먹었다(...)는 거라든가. 처음엔 톰이 메리에게 무심해 보이고 제리는 잘 챙겨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톰보다도 메리에게 더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판단하며 대하는 게 제리였다는 거라든가... 그래서 보면서 계속 생각을 하게 돼요. 메리가 힘들고 외로운 사람인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해서 저런 행동이 정당화 될 수가 있나. 톰과 제리는 메리에게 참 잘 해주는 것 같긴 한데 과연 저게 최선일까. 최선이 아니라면 당최 어떡해야 본인들 생활도 지키면서 메리를 도울 수 있나 등등. 물론 당연히 답은 쉽게 안 나오구요.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메리는 점점 선을 넘게 되죠. 그 절정은 정말로 바라보기 민망하고 낯뜨겁습니다. 응? 지금 설마 저 양반이... 아악 진짜네. 이 인간아 지금 뭐하는 거야 하지마! 하지 말라고!!! 이런 기분이. ㅋㅋㅋㅋ 그 이후의 일들은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을 테니 언급 안 하겠지만요. 여기서 제가 좀 재밌다고 느꼈던 건 이겁니다. 누가 봐도 메리는 확실하게 선을 넘었거든요. 거기에 대한 톰과 제리의 조치는 매정하긴 커녕 정말 최대한 사정을 봐줬다 싶을 정도구요. 하지만 지금껏 봐온 것들 때문에 이걸 좀 더 깊이 생각해보게 돼요. 저게 참 상식선에서 절대 비난받을 일이 아닌, 거의 부처님급 반응인 건 맞는데, 근데 저게 올바른 반응인 게 맞나. 혹은 '인간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나. 이런 생각들이 끊임 없이 솟아서 절 귀찮게 하더군요.


 그러다 마지막엔 참 뭐랄까. 그나마 해피엔딩인 듯 완전한 새드엔딩인 듯. 냉정하고 시크한 듯 그냥 자연스러운 귀결인 듯. 뭐라 콕 찝어서 말하기 힘들지만 어쨌거나 엄청 자연스럽고 튀지 않게 완벽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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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좋은데 지금 여기 자네만 없다면 완벽할 것 같은데말야?)



 -  소올직히 말해서 전 '메리'에게 전혀 감정 이입을 하거나 공감하지 못했어요. 제 탁월한 근자감이 그러지 못하게 막더군요. ㅋㅋㅋ 아니 뭐 영화 속 인물들이 톰&제리 vs 메리로 이분화 되어 있고 그 와중에 톰&제리의 비현실적인 완벽함에 비한다면 현실의 우리들은 조금이라도 메리 쪽에 더 가까울 수밖에 없다... 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요. 하지만 애초에 톰&제리와 메리의 사이가 거의 동해 바다 이상으로 멀기 때문에 그 중 한 쪽에 그나마 조금 더 가깝다는 건 별로 의미가 없죠. 


 그런 맥락에서 전 톰&제리가 사실은 위선적인 사람들이라든가, 챙겨주는 척 하지만 사실 벽을 치고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든가... 그런 식으로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뭐 겉으로 말하고 대하는 것에 비해 늘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도 맞고 메리가 선을 넘을 때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해버린 것도 맞아요. 근데, 도대체 어떻게 그 이상을 해줄 수가 있나요. 메리가 톰&제리에게 바라는 건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환상이었잖아요. 메리의 삶은 비극이죠. 그걸 다 자기가 불러왔다고 해도 그걸 메리의 '잘못'으로 비난할 수 없는 것도 맞아요. 하지만 톰&제리는 그런 메리의 비극을 수습해줘야할 사람들도 아닐 뿐더러 그걸 수습할 수 있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그들이 극중에서 메리가 원하는 걸 다 들어주면 과연 메리는 행복해질까요. 흠. 전 아닐 거라고 봅니다.


 그냥 톰과 제리는 선량하고 현명하면서 인생에 운도 많이 따라준 보통 사람들이고. 메리는 자신의 불행을 스스로 수습할 수 없는 보통 사람이고. 영화는 어쩌다 그들이 관계를 맺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고. 그게 다라고 생각해요. 감독이 특별히 어느 한 쪽을 편들거나 폭로하려고 만든 이야기, 캐릭터는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그렇게 무심 시크하게 '보여주기'만 하고 빠지는 영화이니만큼 해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요.



 - 제가 전에 '렛 힘 고'를 보고 레슬리 맨빌 연기를 칭찬하니 여러 유저님들께서 언급하고 추천하셨던 영화였는데요. 덕택에 존재도 몰랐던 영화 아주 잘 봤습니다.

 그리고 검색을 해 보니 개봉 당시에 듀게분들이 보고 와서 올린 글들이랑 댓글들이 보이더라구요. 10년 전이니 아마 제가 듀게 글들을 거의 다 읽고 살던 시절이라 당시에도 읽긴 했을 텐데. 그게 이렇게 10년만에 제게 와닿는 의미들로 되살아나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대략 10년 뒤에도 듀게가 존재해서 그때 유저들이 요즘 회원분들 올리시는 글들을 찾아 읽게 된다면 참 좋을텐데요. 음...;




 + 올레티비 vod의 화질은 참으로 구립니다. 20세기에 비디오로 출시된 영화급이었어요. 다행히도 번역은 그냥저냥이었구요.

 전 무료로 봤지만 시리즈 온, 웨이브, 티빙에 있고 모두 천원입니다. 화질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웨이브는 애초에 iptv 컨텐츠를 중복으로 써먹는 것 같으니 좀 의심이 가네요.



 ++ 문득 '메리' 역의 레슬리 맨빌을 제가 처음 접했던 '리버' 생각이 났는데. 그 드라마 속 모습을 짧게 다시 보고 싶지만 이제 넷플릭스에서 내려갔죠. 아쉽네요.



 +++ 인터넷으로 짤을 검색하다가 이걸 보고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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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명대사 짤이라고 돌아다니던데. 여기에 바로 이어지는 대답이... ㅋㅋㅋㅋ 사기잖아요 이건.


 

 ++++ 요즘 듀게가 또 글 가뭄이네요. 게시판에 도배하는 것 같아 전에 적어놓았던 걸 묵혀두다가 그냥 올립니다. 이러다 듀게가 제 일기장이 되어도 제 책임은 아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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