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7 07:31
1.전에 썼듯이 파묘는 별로였어요. 영화감상 삼아 여담이나 해 보죠.
의뢰인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친일파라는 걸 되게 숨기는 것 같은데 글쎄요. 그게 그렇게까지 숨기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어요. 물론 연좌제와 멍석말이가 횡행하는 세상이니까 그런 건 알겠는데 저 가족들은 연예인은커녕 그렇게 알려진 부자도 아니기 때문에 별 페널티가 없을 거거든요. 차라리 대중에 좀 알려지고, 평판에 매우 신경써야 하는 부자로 설정했으면 어떨까 싶었어요.
2.그리고 장재현 유니버스-그런 게 있다면 말이지만-의 한국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작중 묘사되는 걸로 보면 일본 주술사가 한국의 허리에 박아넣은 저주는 매우 실제적이예요. 그렇지 않다면 주인공들은 그리 실제적이지도 않은 저주를 상대로 목숨을 걸고 호들갑을 떤 거니까요.
그러니까 이 영화가 끝나고 난 뒤의 한국은 '호랑이의 힘'을 되찾거나 좀더 부강해지거나 하는 등의 버프를 받아야 하는 게 설정상 맞아요. 만약 장재현이 만드는 영화들이 다 이어지는 거면, 파묘 이후를 다룬 그의 영화에서 더 강해진 한국이 나와야만 하는 거죠. 사실 한국은 지금도 꽤 발전했는데, 지금까지의 한국이 허리를 끊긴 호랑이였다면 앞으로 대체 얼마나 더 강해지는 건지? 허리가 끊긴 상태에서 이미 전세계 10위쯤은 되는데 5위 이상으로 올라가는 건가?
3.어쨌든 전반부에 나오는 할아버지 귀신은 생각해 보면 나름 착한 사람 아닐까 싶어요. 그도 그럴게 본인가족들 말고는 안 죽이잖아요. 그가 오랜 세월동안 이상한 데 묻혀서 힘들었던 걸 감안하면 그 정도 복수는 인지상정이죠.
게다가 최민식에게 굳이 여우가 호랑이의 허리를 끊었다는 말까지 해주는 걸 보면 그 사람 또한 강한 대한민국을 되찾고 싶어하는 생계형 친일파 아니었나 싶어요. 진짜 마음속으로 일본에 충성한 놈이면 그런 언질은 안할 테니까요. '최민식! 너에게 맡긴다...부탁이야! 다시 우리나라에 호랑이의 기운을!'이라고 말한 건 아니지만...그런 말을 하는 건 너무 낯뜨거우니까요. 적당히 둘러 말한 걸지도.
4.휴.
5.물론 강한 한국을 되찾는 것보다는, 자기 아래 묻혀서 자길 못살게 군 일본 귀신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어쨌든 영화를 복기해 보면 할아버지 귀신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예요.
6.부자가 묵는 호텔은 작중 내적으로만 보면 좀 이상하긴 해요. 영화 외적으로 보면 그냥 장소섭외를 플라자 호텔로 한 거겠지만, 광화문 쪽에는 포시즌스도 있고 조선호텔도 있단 말이죠. 왜 굳이 플라자 호텔일까?
물론 영화에서 묘사되는 의뢰인의 재력쯤 되면 호텔의 급을 따지고 있는 수준은 넘었겠죠. 포시즌스가 좋냐 플라자가 좋냐로 따지는 건 호텔로 플렉스하려는 사람들이나 신경쓰는 걸 테니까요. 게다가 그 사람은 어느 호텔에 묵을지 고민할 상황도 아니긴 했고.
그렇더라도, 나라면 그 부자가 묵는 호텔을 조선호텔로 설정했을 것 같아요. 포시즌스가 지어진 시기를 보면 그 사람이 미국에서 한참 살 때 지어진 거니 애착이 없을 테고...어린 시절 한국에서 조선호텔에 꽤나 간 적이 있음직한 부자로 설정하면 딱 좋으니까요. 아무튼 사소한 부분이지만 자꾸 플라자 호텔이 나오는 게 갸우뚱하긴 했어요.
7.안타까운 부분이지만 일본 주술사가 사진으로 등장할 때의 연출은 애나벨2를 너무 따라한 것 같아요. 좀 다르게 연출할 수는 없었는지. 어쨌든 그 일본 주술사의 설정은 꽤 좋은데 실제로 등장은 안 하니까 좀 허무했어요. 그놈의 일본 귀신보단 차라리 그 주술사를 등장시켜서 이야기를 푸는 게 좋지 않았을지. 나중에라도 등장하려나요.
8.위에 쓴 대로 파묘에서 대한민국의 정기를 되찾는 설정이면...감독의 이전 작들에서 보여준 묘사들도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지. 검은 사제들이나 사바하에서 한국 무속인들이 발리는 묘사들이 '그동안 한국의 허리가 끊어져 있어서 코리안 샤먼들의 힘이 하락되어 있었다'로 퉁칠 수 있으니까요.
그럼 검은 수녀들에서 중간에 한국 무당이 악마에게 지긴커녕 그냥 이겨버리고 '영화 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송혜교가 박수를 치며 '브라보! 멋지다 한국무당!'이라고 외치며 스탭롤이 올라가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