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6 01:34
- 2018년작이고 상영 시간은 1시간 53분. 스포일러는 없게 적겠습니다.
(미아 고스는 별 역할 아닙니다. 혹시 팬이시라면 큰 기대는 마시고...)
- 로버트 패틴슨이 애 아빠네요. 아가는 혼자서 모니터에 비치는 이상한 자연 다큐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영상을 보며 놀고 있고 패틴슨은 우주복을 입고 우주선 밖에서 뭘 뚝딱뚝딱 고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통신으로 애한테 말을 걸며 달래고 있구요. 그러다 모니터의 화면이 좀 아름답지 못한 게 나오니 애는 울음을 터뜨리고 패틴슨은 우주선 고치던 도구를 떨어뜨려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10분간 패틴슨이 애 보는 모습만 보여줘요. ㅋㅋㅋ 우주선 안의 텃밭에서 키운 채소로 이유식 만들어 먹이고, 오줌 싸는 거 도와주고, 그러고 혼자서 주절주절 애한테 말을 걸죠. 니 쉬랑 응가는 아무리 정화되어서 멀쩡한 것처럼 보여도 먹으면 안 된단다. 그걸 '터부'라고 해. 알겠니? 터부. 터어부. 터어어어부. 터부! 그러고는 무슨 알람이 울리자 통신장비 비슷하게 생긴 허름한 자리에 앉아서 아마도 지구의 관리자들을 위한 것 같은 보고를 합니다.
근데 슬슬 좀 궁금해지죠.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딨지? 바로 그 순간에 호기심을 해결해주는데... 패틴슨은 대략 대여섯구 정도 되는 시신을 보관하고 있는 방으로 가서 하나하나 꺼내서 우주복을 입힙니다. 그리고 우주선 밖으로 다 떨어뜨려요. 그리고 막막한 우주 공간에 사이좋게 둥실둥실 떠 있는 우주복 시체들을 화면 가득 비추면서 타이틀이 뜹니다.
이제 그 다음부턴 도대체 이게 뭔 상황인지... 를 보여주기 시작하고 그게 이 영화의 메인 스토리겠죠. 스포일러는 아닌 기본 설정만 대략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지구는 슬슬 수명이 다 해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블랙홀로 우주선을 보내서 블랙홀 에너지를 활용해 지구의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게 되는데... 성공 가능성도 극히 낮고 왕복에 수백년이 걸릴 프로젝트에 자원할 사람을 못 구했는지 사형수들 중에서 사람을 뽑아 보냈다는 겁니다. 물론 필요한 지식들은 다 가르쳐서 보냈겠죠. 애초에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의사, 파일럿, 선장 등)을 뽑기도 했구요. 보아하니 애초에 이 우주선은 항로를 바꾸거나 하는 일이 불가능한 데다가, 선장의 손가락에 이식해 놓은 칩을 통해 하루에 한 번씩 지구에 보고를 하지 않으면 걍 생명 유지를 중단해서 다 죽여버릴 수도 있는 모양이에요. 사형수 군단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이겠죠.
그런데 여기엔 실질적 리더를 맡고 있는 줄리엣 비노쉬 의사님이 계시고. 이 분 또한 괴상한 임무 하나를 맡고 있으니... 바로 우주 공간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겁니다. 우주 방사선 때문에 임신은 돼도 출산은 거의 불가능하다는데, 암튼 우리 의사님은 그걸 기어코 해내고야 말 작정이고 그러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실질적인 갈등과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 이 의사님 프로젝트로부터 나와요. 과연 이 양반이 뭔 짓을 어떻게 했길래 승무원들이 그렇게 죽어나갔을까요. 그리고 그 아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그리고 블랙홀의 인력 바로 밖에서 꼼짝도 못 하는 우주선에서 살고 있는 패틴슨과 그 아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우주선 승무원들 단체샷. 말이 좋아 승무원이지 실상은...;)
- 적다 보니 제 글 중에선 역대급으로 긴 '도입부 설명' 파트가 되었네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영화가 상당히 불친절해서 간단하게 요약을 못 하겠더라구요.
일단 고독한 예술혼에 불타는 감독의 영화답게 이야기 전개나 편집의 리듬이 일반적인 상업 영화들의 그것과는 좀 다릅니다. 말 했잖아요. 영화 시작하고 10분동안 주인공이 혼자서 애만 본다니깐요. ㅋㅋㅋ
그리고 일단 이야기가 흘러가기 시작하면 그것도 살짝 불편한 게, 수시로 예고 없이 시간대를 점프를 해요. 과거로 갔다가 더 과거로 갔다가 언뜻언뜻 현재(?) 시점으로 돌아왔다가...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간엔 딱히 복잡하고 속 깊은 사정이나 스토리 같은 게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거. 그래서 그냥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만 캐치하면 '나 지금 뭐 보고 있니?' 라는 고통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오해하실까봐 굳이 강조하자면, 이야기 따라가기 힘든 영화 아닙니다. 그냥 편하게 봐도 따라가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잘 따라가면서 '이거 좀 불친절하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 로만 불친절해요. 적고 보니 되게 말장난 같네요. ㅋㅋㅋㅋ
(이래뵈도 광속까지 가속해서 날아가는 우주선입니다.)
- SF이고 우주선이 배경이지만 보통 우리가 'SF'에서 기대할만한 비주얼 같은 건 별로 없습니다.
대충 떠올려 보면 이 영화의 배경이라는 게... 통신실, 사다리 있는 방, 우주복 갈아 입는 곳, 의사 사무실, 19금 방(...)에다가 주인공 방, 여자들 방에다가 복도 하나랑 텃밭 정도. 이게 정말로 거의 다이고 그 방이란 것도, 복도도 텃밭도 모두 좁아 터졌어요. 덧붙여서 cg 같은 게 필요한 '미래적' 아이템 같은 거 하나도 안 나와요. 게다가 이 중 대부분이 우중충 지저분한 톤이구요. 잠깐 에일리언3도 생각이 나고 그랬습니다만, 그건 데이빗 핀처의 선택이었겠지만 이건 그냥 돈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네요. 뭐 어차피 감독이 하고픈 이야기 하는 데엔 이걸로도 충분했으니 괜찮겠지만요.
(미래입니다! SF라구요!!!!)
그래도 그 와중에 영상미는 상당히 좋습니다. 그 영상미란 게 상당히 아트하우스 필름스런 아름다움이라 취향은 좀 타겠습니다만, 암튼 보면서 저렴한 제작비를 감지할 수 있을 지언정 화면빨이 '후지다'고 느낄 일은 없으실 거에요. 그리고 몇 번, 많지 않게 나오는 우주 장면들은 많이 아름답구요.
- 그리고 메인 스토리는...
위에서 말 했듯이 '2세를 만들자!!'는 게 메인 이벤트이자 갈등이다 보니 19금 장면이나 설정들이 많이 나오고... 그것들이 하나 같이 다 정상이 아닙니다. ㅋㅋㅋ 건전하면서 상식적인 이야기 아니면 못 견디시는 분들은 안 보시는 게 좋아요. 목표가 애 만드는 것인 이야기인데 정상적인 섹스씬이 단 한 번도 안 나오지 뭐 당연한 귀결이겠죠.
그리고 등장 인물들이 죄다 언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사형수들이고,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이 분들의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질 뿐더러... 결국 이들이 다 어떻게 되는지도 처음에 보여주고 시작하니 뭐. 많이 불쾌한 사건들이 줄곧 일어날 거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겠죠.
다만 또... 그게 그렇게 견디기 힘들정도로 불쾌하진 않습니다? ㅋㅋㅋ 어째 적다 보니 이번 글은 계속 이런 전개를 반복하고 있는데요.
암튼 내내 괴상하고 뒤틀리고 변태적인 느낌을 주는 이야기이지만 이 또한 대충 견딜만한 선을 크게 넘지 않아요.
이건 아마도 주인공의 캐릭터 덕인 것 같습니다. 우주선 안에서 별명이 '수도승'인 인물답게 다 함께 미쳐 돌아가는 와중에도 이 분은 일관되게 제정신을 유지하며 관객들에게 기댈 곳을 만들어 주거든요. 뭐 그 역시 사형수이고 아름답지 못한 과거가 있는 인물이지만, 적어도 이 우주선 안에선 괜찮습니다. ㅋㅋ
(본격 저출산 극복 SF영화이기도 합니다. 국민 여러분, 애를 낳읍시다!!!)
-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보고 나서 생각이 명쾌하게 정리가 안 되고 있는데요. 그래서 글도 굉장히 횡설수설하네요.
암튼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해 본 결과. 헨타이 아티스트 버전의 스페이스 오딧세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헨타이 SF 버전 창세기 리메이크(...)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종교적 상징, 신화적 요소, 거기에 인간의 욕망이라든가 죄책감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범벅이 되어 있고 계속해서 뭔가 '의미심장'한 것들이 쏟아져 내리는 영화입니다. 다 보고 나서 영화의 주제가 무엇이네, 어떤 장면에서 무엇이 의미하는 것은 뭐였네 이런 걸 따져가며 해석하고 추리하며 나만의 의미 만들기 놀이... 이런 걸 즐기기 딱 좋은 영화구요.
하지만 무식하고 생각이 짧아서 그런 쪽으론 영 재능이 없는 제 입장에서 아주 단순하게 평하자면... 다소 불친절하고 불쾌하며 자주 불편하게 만들지만 독특한 매력이 있는 영화입니다. 제목에 적어 놓은 대로 대놓고 아트하우스 무비 쪽 성향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지루하거나 따라잡기 힘들지 않아요. 계속해서 흥미를 자극하고 궁금하게 만드는 스토리에 배우들 연기도 좋고... 뭣보다 결말이 그렇게 무책임하게 염세적이지 않은 게 좋았습니다. 뭐 마지막 장면은 당연히도(?) 모호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의미가 천차만별로 달라지겠습니다만. 착하고 고운 심성을 가진 저는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거든요. ㅋㅋㅋ
다 비슷비슷한 장르물들 홍수에 살짝 질려서 좀 괴상한 체험을 해보고픈 분들께 추천합니다. 가끔 이런 영화도 봐 줘야 다시 오랫동안 무난한 장르물도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법이지요.
+ 로버트 패틴슨의 애 보는 연기는 꽤 괜찮더군요. 갑자기 이 배우에게 없던 호감이 좀 생겼습니다. 정말로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많이 애쓰고 있는 것 같아요.
++ 중간에 줄리엣 비노쉬가 보여주는 한 장면은... 하하하. '블루' 같은 영화를 보며 이 분 미모에 감탄하던 시절엔 20여년 후에 이 분이 나이 먹고 이런 연기를 하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죠. 사실 뭐 주인공은 로버트 패틴슨이라지만 이 영화를 가장 몸 바쳐 하드캐리하신 분이 줄리엣 비노쉬입니다. 본인 혼자 라스 폰 트리에 영화 캐릭터를 연기하시는 느낌(...)
(멀쩡한 사진 고르느라 힘들었습니다. ㅋㅋㅋ)
+++ 패틴슨 딸래미는 아기 때도 귀엽더니 다 자란 모습은 정말 예쁘더라구요. 근데 진짜로 문자 그대로 '아기' 때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좀 신기했습니다. 패틴슨이 육아의 마술사였거나, 아님 꽤 시간을 두고 친숙해지는 단계를 거쳤거나... 아니면 미칠 듯이 많은 테이크를 가져가면서 간신히 뽑아냈거나. 아마 2번 아니면 3번이겠죠?
(이제 그만 좀 감독님이 원하는 행동 한 번 보여줄 때도 되지 않았니???)
2021.06.06 08:04
2021.06.06 11:03
요즘 프랑스 영화를 잘 안 봐서 모르겠지만 90년대에 영화를 가장 많이 보며 살았던 입장에서 프랑스 영화인데 아트하우스 느낌이 아예 없으면 오히려 그게 이단 아닌가... 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당연히 잘못된 선입견이겠지만 그 시절에 보던 영화들이란 게 죄다 누벨바그 아니면 레오 까락스 뭐 이런 식이었다 보니. ㅋㅋ
패틴슨도 스튜어트도 둘 다 어떻게든 트와일라잇 이미지를 지우고 싶어서 그런 것일 텐데, 사실 이미 평생 놀고 먹고 자손 물려줄 정도로 벌어 놓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제 2의 배우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는 걸 보면 그래도 진심이 느껴져서 좋더라구요. 물론 그 노력의 와중에도 재산은 꾸준히 늘고 있겠지만(...)
안 그래도 제가 이 영화 직전에 본 줄리엣 비노슈 연기가 고질라였어요. ㅋㅋㅋ 어? 줄리엣 비노슈네? 하고 놀랐는데 바로 퇴장해버려서 뭐야 헐리웃 대접 왜 이래... 라고 생각했었죠.
2021.06.06 13:13
그게 우리나라 수입되거나 알려지는 영화들이 그런 스타일이라서 그렇지 프랑스도 다른나라처럼 코미디나 다른 장르영화 많이 나오긴 한다더군요. 막상 영화 매니아들 아니면 저런 예술영화들이 그렇게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줏어들은 것 같습니다.
줄리엣 비노슈는 할리우드 활동도 활발히 했는데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오스카 수상한 걸 제외하면 이렇다할 대표작 찾기 어려운 것 같네요. 제레미 아이언스랑 불륜하던 그 영화도 생각나고
2021.06.06 13:49
사실 그게 당연하긴 하겠죠. ㅋㅋ 근데 보면 프랑스 영화 감독들 중에 '이 놈에 동네는 영화제용 영화 아님 너무 만들기 힘들어!' 라며 헐리웃 진출하고 이런 경우도 있고... 뭐 사실 한국이 특이한 경우겠죠. 자국 영화들이 헐리웃 블럭버스터랑 흥행 성적으로 맞짱 뜨는 나라가 지구상에 몇 군데 안 된다고 하니까요.
한때 프랑스 여배우들이 헐리웃 진출 활발히 하던 시절 생각 나요. 소피 마르소도 그렇고 엠마뉴엘 베아르도 그렇고... 결국 다들 블럭버스터 영화에서 별 중요하지 않은 역할 정도로 소모되다 끝났던 걸로.
2021.06.06 14:42
2021.06.06 09:04
2021.06.06 11:06
ㅋㅋㅋㅋ 잠시 생겼던 패틴슨에 대한 좋은 오해가 바로 이렇게.... ㅋㅋ
찾아보니 패틴슨 친구라는 애 아빠가 '트와일라잇' OST에도 참여했던 영국 사는 뮤지션으로 나오네요. 영화 촬영은 베를린에서 했다는데 그럼 아빠도 영화 촬영 현장에 함께... 프리랜서란 좋군요. 허허.
2021.06.06 13:48
사형수의 유전자를 물려받으면 사회체제 유지에 별로 안좋을텐데.. 김대중님 같은 정치범 사형수였나봅니다.
2021.06.06 13:50
애초에 무사 귀환할 확률이 거의 0에 수렴하는 임무니까요. 2세 만들기 기술을 획득하는 게 목표이지 갸들끼리 번식해서 뭘 해보라는 게 아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ㅋㅋ
주말에 빡센 걸로 하나 달리셨군요 ㅎㅎ 사형수 승무원들이랑 2세 낳기 프로젝트 설정 정도만 기억나는데 사실 그게 거의 다긴 하네요. 할리우드에서도 제작년에 애드 아스트라 그런 것처럼 간혹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제작비나 규모가 꽤 있는 이런 장르에서 이정도로 심하게 아트하우스 스타일로 가는 건 역시 프랑스라 가능한 건가 싶기도 하구요 ㅋ
패틴슨은 트와일라잇 이후로는 강박적으로 이렇게 도전적인 작품들만 선택해왔더라구요. 그러다 작년 테넷에 이어 배트맨으로 슬슬 다시 주류로 돌아오려는 느낌입니다. 당시 같이 작품 내외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크리스틴 스튜어트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게 참 재밌어요. 줄리엣 비노슈 누님은 상대적으로 다른 레전드 여배우들보다 언급이 좀 적지만 정말 작품, 캐릭터 소화하는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이러면서도 할리우드 고질라 같은 작품에서 그냥 전형적인 어머니 같은 역할도 위화감 전혀 없이 소화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