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트럼프 이야기가 너무 지겨웠거든요. 이제 끝물인데도 정말 징글징글하게도 끝이 안 납니다. 풍부한 국내뉴스가 있는 한국과는 달리 여기는 남의 나라 이슈를 삼켜버릴 만한 이슈가 딱히 없다보니 트럼프의 집권 이전부터 아직까지도 그의 행보는 끝없는 뉴스와 잡담과 토론의 소스입니다. 동양대 표창장 논란 수준으로 트럼프 얘기를 듣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TV에 나오는 거야 피하면 그만인데 직장에서, 사적인 자리에서 끝없이 소환되는 트럼프. 그 중에서도 가장 짜증나는 건 나에게 미국인의 입장으로 트럼프를 봐 줄 것을 강요하는 사람들입니다. 트럼프가 체통머리 없고, 인종차별적이고 쌩양아치 쓰레기라는 건 저도 인정하는데 '아니., 그래도 조지 부시처럼 해악을 끼친 대통령은 아니지.'라고 말하면 모든 사람이 '뜨악'하는 표정으로 저를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가 조지 부시를 괜찮은 대통령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아요. 인성과 품위를 떠나 얼마나 세상에 해악을 끼친 대통령인가? 라는 결과만 보면 조지 부시가 저지른 악행이 훨씬 큽니다. 대책도 없이 남의 나라를 쳐들어가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그 결과가 나중에 IS의 창궐로 이어지며 수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난민들을 발생시켰죠. '그래도 트럼프는 거짓말에 가짜뉴스를 퍼뜨리고...'라고 하면 '거짓말이라면 이라크 침공시 대량 살상무기 거짓말도 빠질 수 없네'라고 응수합니다. 그랬더니 트럼프는 스탈린과 비교될만한 독재자라고 합니다. '트럼프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던가? 못들어봤는데..'라고 하니 코로나 감염으로 죽은 사람들의 수가 그 정도는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독일의 총리, 프랑스 대통령도 스탈린에 비교되는 학살자, 독재자가 되는 건가요? '아니 너는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온 대통령으로 전 세계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게 눈에 보이지 않아?'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인 건 유감이지만 제가 사는 이 곳에는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고 유럽의 나라들도 트럼프로 인한 정치적 위기가 크게 발생한 것 같지는 않아요. 또 따지고 보면 전 세계에서 제대로된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국가는 그렇게 많은 수도 아니죠. 아니 대체 너희들이 언제부터 세계의 민주주의에 관심이 있었다고? 홍콩에서 그 난리가 일어나도 거기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하던 사람들이.미국의 영향력이 작지는 않겠지만 제 눈에는 그게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위기로는 안 보여요. 물론 트럼프 문제 많죠. 트위터로 정치하고 극단적 극우주의자 결집 시키고 행동하게 한 거..그런데 그건 트럼프보다는 구글,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미디어의 책임이 더 커요.  


오바마에 대해서도 저는 사견이 있는데 트럼프 소환과 더불어 걸핏하면 정말로 진실한 인권 대통령이라며 같이 소환됩니다. 진실한 인권 대통령이 위안부 합의를 그따위로 밀어붙였냐고 하면 '왜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인의 인권을 돌봐줄 것을 기대하냐?'고 묻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그런 너희들은 왜 미국인도 아니고 미국에 살지도 않는 나에게 미국인의 시각에서 트럼프를 평가하기를 강요하는가?'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어요. 미국인이 미국외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신경을 안 쓰듯이 미국인이 아닌 나도 미국의 대통령을 외국인의 시각에서 평가한 것 뿐이예요. 그런데 이렇게 말한 것만으로도 트럼프 지지자라는 딱지를 붙여요. 


사실 (역대 미국 대통령과 비교해서) 트럼프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르겠죠. 대만 같은 경우는 지금까지 소외받다가 미국이 중국과 각을 세우면서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을 넓힌 기회가 되었었죠.  그 사람들에게 '미국인의 시각에서 어서 빨리 트럼프가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인정하란 말이야!'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말도 안되죠. 그런데 세상은 미국인 중심입니다. 그게 누가 되었든 미국인의 시각에서 봐주길 원해요...심지어 북한 김정은은 독재자 나쁜놈인데 그런 인간과 왜 협상을 하냐? 미사일을 날려서 박살내고 죽여버려야지..이런 얘기도 해요. 이쯤 되면 이 사람들이 좌파인지 우파인지도 헷갈려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나는 한국인인데, 북한에 미사일을 날리면 남한도 쑥대밭이 되는데 그걸 나한테 편들어달라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하고 표정을 살피지만 이 사람들은 정말 그런 생각을 1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수긍하지 않으면 모두 트럼프 지지자가 됩니다. 거기에다가 매일 미국 정치를 논하죠. 승자 독식 투표 좀 아니지 않나? 트럼프같은 인간이 대통령이 되다니 대통령 자격시험을 만들어야 된다. FBI, CIA 같은 자리도 엄격한 자격 시험이 있는데 그 보다 더 중요한 자리에 자격 시험이 왜 없냐? '그런 건 미국인들이 결정하도록 맡겨두면 어떨까요?'라고 하면 이런 중요한 문제를 어떻게 미국인들에게만 맡기냐며 벌컥합니다. 그 멍청이들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는 거 못 봤냐고 하면서요.. 아니 그럼 뭘 어떻게 할 건데?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서 미국인이 되어 의견을 행사하던가 왜 여기서 이러고 왜 그 의견을 나한테 강요하냐고요오오오...

 

어쨌든 세상이 오늘의 이모양이 된 건 소셜 미디어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증거'같은 것을 오늘 발견했습니다. 호주의 TV조선인 'Sky news'라는 채널이 있어요. 정치적 포지션으로 보면 극우, 트럼프 지지, 거대자본의 편인 채널이죠. 유튜브에 추천으로 올라오는 뉴스 클립에 꼭 얘네들이 무더기로 뜹니다. 저는 이 채널의 뉴스들을 절대 클릭하지 않아요. 일부러 공영방송 채널 뉴스만 골라보는데 이상한 건 얘들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채널'을 알고리즘으로 분석한다면 이 뉴스들은 저한테 안 보여야 하는데 추천 뉴스는 항상 sky news가 모조리 차지하고 있습니다. 진짜 유튜브 알고리즘 뭘까요? 적극적으로 안 보는 저한테도 지속적으로 이 채널을 뿌려대는 이유는 뭐고 그 뒤에 숨은 알고리즘은 뭘까요?


*

김치는 한국음식으로 알려져 있고 학술적인 자료뿐만이 아니라 요즘은 수 많은 미디어 자료들도 인터넷에 방대하게 쌓여 있습니다. 한국인이 김치를 만드는 영상 자료, 한국 드라마에서 밥상에는 항상 김치가 올라오는 영상 자료, 한국 드라마에서 김장하는 자료, 김치 만드는 레시피..등등. 이러한 방대한 자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김치를 자기 나라 음식으로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엄청나게 힘든 과정이 되겠지만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야키니쿠 사례를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저의 개인적 경험이긴 합니다. 


호주에 오기 전에 야키니쿠가 뭔지 몰랐고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물론 저는 10여년 전에 이민을 왔기 때문에 당시 지금과 같은 한류 붐은 아니어도 한국 문화가 현지에서 전혀 낯설지도 않은 상황이었죠. 한국식 BBQ 식당이 시내에 즐비하고 그랬습니다. 어느 날 팀 회식을 하는데 일식당에서 일본식 BBQ인 야키니쿠를 먹자고 제안이 왔습니다. 야키니쿠가 뭔지 몰랐던 저는 '일본식 BBQ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일본은 오랫동안 육식이 금지되었던 문화라 BBQ 음식 문화가 없을텐데..' 그랬더니 한 친구가 아니라고, 야키니쿠는 아주 오래전부터 호주에서 잘 알려진 일본음식이라고 그러더군요. 그런데 이 친구도 궁금했던지 위키백과를 찾아보고 제가 이메일을 보냈어요. '재미있네. 야키니쿠의 기원이 한국 음식이래.'


그리고 뉴욕에 갔을 때 한 유명한 일식집 체인이 야키니쿠를 파는데 , 이 집은 일본식 바베큐라고 소개해 놓고 메뉴 자체를 한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이게 뭐지요? 하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아래 링크는 제가 당시에 듀게 물어봤던 글.) 그 때 뉴욕 토끼님이 야키니쿠는 일본화된 한국 음식으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이해하고 있다고 대답을 해 주셨죠.

http://www.djuna.kr/xe/board/12767437

여기서 드는 의문, 알만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제 직장동료처럼 야키니쿠가 일본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겠죠? 야키니쿠가 현지에 알려진 건 한국식 구이고기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이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야키니쿠처럼 보이는 K-BBQ가 우후 죽순 들어서며 이제 전 세계 미디어에 끝도 없이 등장하는데 아무도 '아니 왜 야키니쿠를 한국 바베큐라고 부르냐?' 라고 의문을 품는 사람이 전혀 없어요. 물론 일본 사람들은 중국인처럼 격렬하게 야키니쿠는 일본 음식이다. 한국인은 훔치지 마라..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죠. 자기들도 그게 한국음식이라는 걸 아니까. 그런데 맥락과 역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응, 야키니쿠는 야키니쿠, 코리안 바베큐는 코리안 바베큐' 이런 것 같아요.  관심이 없습니다. 일본인이 야키니쿠라고 파는 건 야키니쿠고 한국인이 코리안 바베큐라고 파는 건 코리안 바베큐죠. 그리고 모든 영상 자료에서 코리안 바베큐를 마치 인생에서 처음 본 것 처럼 소개합니다.  야키니쿠하고 비슷하다는 생각조차도 안 하는 걸까요?


아무리 미디어가 발달해도 너무 많은 정보속에서 진실을 파헤치는 건 노력이 필요하니까 굳이 사람들이 그런 노력을 할 리도 없고요. 김정은 문재인이 악수할 때 모든 미디어가 '역사적 순간'이라면서 온갖 설레발을 치는 걸 보면서 '아니, 남북 평화와 협력의 순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데 그걸 다 잊어버린거야?'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진짜로 서구 미디어들은 이러한 상황이 마치 처음인 것 처럼 굴었어요. '사람의 불시착' 훠얼씬 이전에 '해빙'이란 드라마가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이걸 기억하지는 않죠. 약 20년의 시간이 지나고 어떤 것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미디어 자료의 폭포를 흘려보내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건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과 학계의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대중적 권위를 지니는 시기도 이미 지난 것 같아요. 장애물은 한국인들이 그렇게 되도록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것인데요. 반전은 중국이 갑자기 처돌아서 '대만은 중국의 일부이다.'처럼 '김치는 중국의 전통 음식이다.'를 국가적 안보 과제로 삼고 모든 중국과의 비즈니스에 이것을 기본적으로 인정할 것...같은 정책을 시행한다거나 유튜브가  Sky news 처럼 내가 어떤 영상을 보든간에 '김치는 중국의 전통 음식' 같은 것을 끊임없이 기본 추천 채널로 뿌려대면 한국인에게는 상당히 힘든 싸움이 되겠죠. 김치의 국적같은 건 그 정도의 중요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거라서요. 트럼프도 대통령으로 뽑힌 적이 있는데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2020년 게시판 영화상 투표 [19] DJUNA 2020.12.13 218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649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14659
115238 그렇고 그런 시간을 지나며 [24] 어디로갈까 2021.01.22 852
115237 영퀴 하나. [8] S.S.S. 2021.01.22 344
115236 중국의 김치공정은 사실일까? [15] Toro 2021.01.22 990
» 미국인의 입장을 강요하기, 김치공정은 어쩌면 성공할 수도. [7] 양자고양이 2021.01.22 569
115234 서녀 명란전을 영업합니다. [10] 칼리토 2021.01.22 513
115233 라쇼몽, 성폭력을 바라보는 필터 [4] Sonny 2021.01.22 685
115232 TV틀면 트롯트밖에 안나오는 느낌이네요 [9] 미미마우스 2021.01.22 583
115231 [회사바낭] 성과급 후기 [6] 가라 2021.01.22 541
115230 Nathalie Delon 1941-2021 R.I.P. [4] 조성용 2021.01.22 151
115229 싱어게인 준결승전을 앞두고 - 30번 가수 편향 게시물 [2] 애니하우 2021.01.22 669
115228 가족과 연 끊으신 분 계신가요? [6] tomof 2021.01.22 789
115227 다키스트 던전... [1] 메피스토 2021.01.21 188
115226 웹소설 하렘의 남자들 - 여황제와 남자 후궁들의 로맨스 판타지, 현실은… [12] Bigcat 2021.01.21 747
115225 켄 러셀의 말러를 봤는데 [4] daviddain 2021.01.21 226
115224 [코로나19] 1년 전의 악몽이 재현되나 떨고 있는 중국 [8] ssoboo 2021.01.21 766
115223 [바낭] 어떤 멍청한 지름의 결과 [21] 로이배티 2021.01.21 815
115222 천원짜리 즉석복권 꼭 5년마다 십만원 되는군요 [6] 가끔영화 2021.01.21 301
115221 소울을 보고(스포 약간) [1] 예상수 2021.01.21 303
115220 [회사바낭] 팀 성과급을 나눌 전권을 받는다면? [24] 가라 2021.01.21 619
115219 황해(2010) [6] catgotmy 2021.01.21 42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