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워즈] 예고편 소동

2010.02.22 11:07

DJUNA 조회 수:7371

1.

11월 18일 수요일. [스타 워즈 에피소드 I - 보이지 않는 위험 Star Wars Episode 1: The Phantom Menace]의 개봉일까지는 아직 반년이나 남았지만, [스타 워즈] 팬들은 영화관으로 몰려들어, 어린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등장과, 젊은 오비원 케노비, 광선검 결투와 우주선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극장들이 갑자기 타임 슬립이라도 한 것일까요?

실망스럽게도 설명은 보다 진부합니다. [스타워즈] 프리퀄을 배급하는 폭스사와 루카스 아츠가 금요일에 공개할 예정이었던 [스타 워즈] 예고편을 팬 서비스 차원에서 며칠 일찍 개봉한 것 뿐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 발생한 사태는 아마 루카스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을 겁니다. [비상계엄]이 상영중이었던 로스앤젤레스의 모 극장을 예로 든다면, 5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1시에 시작되는 예고편을 보러 극장에 몰려들었고 그 중 3분의 2가 예고편이 끝나자 마자 본 영화는 보지도 않고 영화관에서 나가버렸습니다. 또 그 중 일부는 다음에 시작하는 예고편을 기다리며 영화관 주변을 얼쩡거렸고요.

인터넷에서는 사정이 더 심각했습니다. 2분짜리 트레일러를 다운받기 위해 사흘동안 자그만치 3, 4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스타 워즈] 사이트로 몰려들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운받은 사람들의 수는 훨씬 더 많았을 겁니다. 저 역시 [스타 워즈] 공식 사이트에서는 못 받고 미러 사이트를 뒤져 간신히 다운로드에 성공했으니까요. 제가 다운받은 것은 공식 트레일러가 아니라 인터테이먼트 투나잇에서 방송한 것을 어떤 [스타 워즈] 팬이 Mpeg 파일로 만든 것인데, 이것 말고 다른 스타워즈 팬이 영화관에서 캠코더로 직접 찍어서 파일로 만든 해적판도 존재합니다.

2.

그런데 그게 그렇게 좋았을까요?

"네!" [스타 워즈] 팬들은 외칩니다. "소름이 쫙 끼쳤어요!" 몇몇은 예고편을 보며 눈물을 흘렸고 예고편이 끝나면 극장 측에서는 다시 돌리라는 팬들의 아우성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흠... 그렇다면 이 히트작은 어떤 영화인가요? 길이는 대충 2분 정도 됩니다. "Every generation has a legend ..." 어쩌구하는 자막이 나오면 친숙한 [스타 워즈]의 배경음악이 들리면서 이미지들이 난무합니다. 그 중에는 다양한 괴물들과 외계인, 타투인의 황량한 사막, 거의 기모노나 다름없는 옷을 입은 나탈리 포트먼, 장발을 휘날리는 리엄 니슨, 아직 젖살도 안 빠진 얼굴로 우주를 구할 임무를 부여받은 아나킨 스카이워커(다스 베이더), 광선검을 휘둘러대는 오비원 캐노비 (유안 맥그리거), 회의적인 목소리로 아이에 대해 묻는 사무엘 L. 잭슨, 여전히 동양 철학자처럼 뚱딴지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요다, 새 에피소드의 악당인 다스 마울, 광선검 결투와 우주전 장면이 들어있습니다.

대충 내용도 들어옵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아마도 공식적으로 예언된 인물인가봅니다. 똑똑한 오비원 케노비는 벌써 걱정부터 하고 있지요 ("그 소년은 위험해요. 모두가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왜 그러지 못합니까?") 나탈리 포트먼과 아나킨 스카이워커 역을 맡은 소년의 나이차가 상당히 되니, 아나킨은 연상의 여자를 좋아하는 타입이었나 보군요. 리암 니슨과 유안 맥그리거는 근사해보이고 나탈리 포트먼은 이쁩니다.

그러나 이 정도 재미를 주는 트레일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란은 뭘까요?

멋진 매스컴 플레이?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이틀 일찍 개봉한다는 것을 뉴스로 삼아 예고편을 이슈화하는 계획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인터넷 하이프? 아마도 그것도 맞을 겁니다. 특히 Ain't it Cool 사이트에서는 예고편 공개 이전부터 인터넷의 스타워즈 팬들을 꾸준히 흥분시켜왔지요.

그러나 그렇게 냉소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스타 워즈]는 20년 동안 미국 대중 문화의 일부가 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스타 워즈]가 게임, 소설, 인터액티브 무비, 만화 등등으로 꾸준히 끌어온 팬들도 상당합니다. 이들의 존재 없이는 이 소란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질문.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가 그렇게 엄청난 팬들을 끌어모으는 것일까요? 오해가 있을까봐 말하는데, 저는 [스타 워즈]에 냉소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나온 영화 세 편을 모두 보았는데 모두 재미있었습니다. [스타 워즈] 상식도 조금은 있어서 누가 스톰 트루퍼고 어떤 우주선이 엑스 윙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루크 스카이워커의 액션 피겨를 사고 엑스 윙 모형을 만들고 [스타 워즈] 연보를 만들고 할 정도로 대단한 팬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전 [스타 워즈] 시리즈를 즐겁게 보는 편이긴 하지만, 이런 가상 세계에 몰입하는 사람들을 쉽게 이해할 수준은 아니라는 말이죠.

가슴을 통해 직접 이해를 할 수 없으니 머리로라도 대충 감을 때릴 수밖에 없습니다. 몇 가지 가설들을 두개골 속에서 대충 굴리다 답이 하나 나왔는데, 그건 자기 완결성이 있는 가상 세계에 몰입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꽤 많으며 바로 그런 사람들이 [스타 워즈] 팬이나 [스타 트렉] 팬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왜?' 역시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되니 머리로 다시 추론을 해야 하는데, 아마도 불완전하고 설명이 부족한 실제 세계에서 얻는 갑갑함을 가상 세계에서 찾는 것일 지도 모르겠군요. 따지고 보면 스타 워즈의 가짜 세계는 진짜 세계보다 더 진짜 같습니다. 우리처럼 역사의 군데군데가 텅 비어 있는 게 아니라 꽉 차 있고 스크린 앞에서 노닐던 사람들이 역사책의 글자에 불과한 실제 인물보다 더 진짜 같아 보이는 것도 당연하죠. 게다가 이 가짜 세계는 실제 세계보다 더 다이나믹하고 선악도 뚜렷하지 않는가요? 아, 진짜 세계도 요렇게 재미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성향은 꽤 일반적입니다. 수많은 철학 이론, 종교들이 순전히 앞뒤가 맞고 거창하다는 이유만으로 [스타 워즈] 팬들과 비슷한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르크시즘, 나찌즘, 기독교, 사이언톨로지 등등을 생각해보세요.

슬프게도 앞뒤가 맞는다는 건 그게 사실이란 것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반론은 이런 팬들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앞뒤가 맞는 구조물은 그런 반론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진짜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어떤 비판도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스타 워즈]와 [스타 트렉]은 지구 문명의 발전에 상당한 공헌을 하는 셈입니다. 지구인들의 '팬' 기질을 해소시킬만한 커다란 이슈를 제공하면서도 그게 진짜라고 우기질 않으니 말이죠.

좋아하는 이유가 어찌 되었건, 그들은 앞으로 반 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반 년은 충분히 재미있는 반 년일 겁니다. 이미 수많은 [스타 워즈] 프리퀄 액션 피겨 (유안 맥그리거나 나탈리 포트만 팬들은 주의해서 들으시라!)들이 시장에 나와있고 게임, 책, 음반 역시 쏟아집니다.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면 수많은 [스타 워즈] 프리퀄 사이트로 들어가 떨어지는 [스타 워즈] 뉴스를 주워올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정말로 걱정해야 할 것은 앞으로 나올 세 편이 과연 전편들만한 힘이 있는 작품이 될 것인가입니다. 하지만 그거야 누가 알겠어요? (9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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