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투게더]와 [전파견문록]

2010.03.20 19:46

DJUNA 조회 수:6912

듀나 [자니 윤 쇼]가 [자니 카슨 쇼]류의 미국식 토크쇼를 국내에 소개한 것도 십여년전 일입니다. 그 동안 다양한 연예인 이름들을 달고 수없이 쏟아지던 [자니 윤 쇼]식 토크쇼들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 미국의 연예계와 우리나라의 연예계가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겠죠. 우리나라의 연예계는 그 동네보다 훨씬 작고 친밀한 곳입니다. [자니 카슨 쇼]식의 토크쇼는 너무 형식적일 수밖에 없어요. 밖에서는 팔할이 말을 트고 지내는 사이일텐데 그런 식으로 예의차리며 이야기만 할 수는 없죠. 뭔가 더 해야지.

그러는 동안 다양한 변종들이 나타났습니다. [이홍렬쇼]처럼 게스트들이 요리를 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헤이헤이헤이]처럼 토크쇼와 코미디를 결합한 프로그램도 있었고요.

[해피 투게더]도 토크쇼와 게임쇼의 결합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대충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번째는 게스트들과 진행자들이 옛날 교복을 입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게임을 하는 [학교가는 길]이고 두번째는 역시 게스트들과 진행자들이 퀴즈를 푸는 [퀴즈! 속전속결! 꿇어∼yo!]입니다. [학교가는 길]은 프로그램 시작부터 바뀌지 않았지만 두번째 코너는 세번 정도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교포 출신의 연예인들에게 한글과 기본 상식을 가르쳐 퀴즈 대결을 벌였던 [행복한 대결 막상막하]였다가, 그 다음엔 편을 갈라 옛날 영화나 드라마의 장면들을 재현했던 [쟁반 극장]으로 바뀌었고, 그 다음에 [퀴즈! 속전속결! 꿇어∼yo!]로 바뀌었지요.

파프리카 전체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의도적인 촌스러움과 복고풍의 감정을 통해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려 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촌스러움은 은근히 인공적이에요. 요새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게스트들 중에서 정말 저런 식의 구식 교복을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듀나 어제 한 신춘특집을 보니 교복을 최근 걸로 바꾼 모양이더군요. 전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파프리카 [해피 투게더]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학교입니다. 게스트들과 진행자들은 학생들이고 PD는 교사인 거죠. 그리고 이 학교는 상당히 폭력적인 곳입니다. 얼굴없는 PD가 좁디 좁은 스튜디오 안에 갇힌 게스트들과 진행자들에게 가차없는 체벌을 내리는 이 세계는 조금 섬뜩한 구석이 있어요. 물론 그런 쓴 맛 나는 과거를 오락거리로 전환시키는 것이야 말로 유머의 힘이겠지만요.

듀나 [학교가는 길]은 두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지요. 첫번째는 게스트들이 학창 시절과 연예인 초보 시절 때 겪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가방 토크]라는 섹션이고, 두번째는 이 프로그램의 최고 인기 섹션인 [쟁반 노래방]입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쟁반 노래방]의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녹음된 동요나 가곡, 만화 주제가를 세 명의 게스트들과 두 명의 진행자들에게 틀어줍니다. 이들은 각각 배정받은 소절을 소화해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야 합니다. 열 번의 기회와 세 번의 찬스를 넘길 때까지 노래를 끝내지 못하면 이들은 게임에서 집니다. 음정이나 가사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이들의 머리 위로 쟁반이 떨어지고요.

이 섹션에서 가장 불편한 게 바로 이 쟁반입니다. 전 머리맞는 걸 보는 게 무서워요. 차라리 [위험한 초대]의 물고문이 몇 배 낫습니다.

파프리카 전 연좌제가 더 무서운데요? 쟁반은 실수를 한 사람에게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다 떨어지잖아요.

듀나 글쎄요. 전 거기에 대해서는 별 부담없습니다. 처벌이 모든 사람에게 떨어지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게 게임의 형식에 어떤 폭압성을 부여하지는 않거든요. 처벌이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강요하는 건 사실이지만 원래 그 사람들은 그 게임을 하러 온 사람들이니 그거야 당연한 요구고요. 결정적으로 각 게이머들의 관계는 평등하고 공평하며, 개인과 집단은 비교적 건전한 조화를 이룹니다. 음악 지식과 청취 능력과 같은 개인적인 능력이 민주적인 토의를 통해 전체에 반영되는 거죠.

파프리카 그래도 처벌이 잘못하면 왕따의 집단 심리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듀나 [쟁반 노래방]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지요. 쟁반 떨어지는 것도 재미의 일부이고 이 게임쇼의 진짜 목적은 임무의 완수만큼이나 시청자들을 웃기는 것이니까, 임무에 실패하거나 쟁반을 맞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죠. 이 프로그램의 가장 인기있는 게스트는 어처구니 없이 서툰 게이머였던 이광기가 아니었나요? 원래 이런 프로그램에선 연예인 게스트들이 조금 망가져야 좋죠.

파프리카 그래도 실제 생활에 끼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텔레비전에서 코미디로 끝난다고 그게 실제 세계에서도 코미디로 끝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듀나 글쎄요. 전 여전히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연좌제가 실제 세계에서 그런 결과를 초래하기는 해요. 그 결과가 엄청 치명적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프로그램까지 물고늘어질 필요는 없겠지요.

그리고 전 [쟁반 노래방]이 상당히 좋은 문제풀이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시되는 문제엔 자의적으로 대충 해석해 넘길 수 없는 분명하고 객관적인 정답이 있고, 그 목표에 접근하는 과정은 기억력과 추리력, 청취력과 같은 다양한 능력들을 요구합니다. 시청자들 역시 게스트만큼이나 적극적으로 게임에 참여할 수 있고요. 게임을 끝내고 나면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옛 노래 하나를 완벽히 기억할 수 있으니 그것도 좋죠.

그에 비하면 그 뒤의 코너들은 재미가 좀 떨어집니다. [행복한 대결 막상막하]는 교포 연예인들에게 한국을 가르친다는 '건전한' 핑계로 끌어가긴 했지만 게스트들의 서툰 한국어와 상식을 놀려대는 정도가 조금 심했었지요. [쟁반 극장]은 [쟁반 노래방]과 같은 처벌을 사용했고 대결 구도를 도입해 긴장감을 더하려 했지만 [쟁반 노래방]의 흥미진진한 문제풀이는 없었습니다.

파프리카 전 요새 시작한 [퀴즈! 속전속결! 꿇어∼yo!]를 꽤 재미있게 보거든요. 처음에는 단순한 게임으로 생각했는데, 은근히 변수가 많더라고요.

듀나 어떤 면에서요?

파프리카 우선 기본 규칙을 설명할게요. 여기서는 두 명의 게스트들과 두 명의 진행자들이 PD가 내는 퀴즈를 맞혀야 합니다. 하지만 그 퀴즈를 맞히기 위해서는 무릎 달리기를 해서 먼저 버튼을 눌러야 하지요. 퀴즈를 맞히려면 문제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순발력과 체력도 함께 요구되지요.

여기까지는 단순해요. 하지만 게임은 훨씬 복잡하게 진행됩니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문제의 정답을 알고 있으라는 법이 없거든요. 네 명이 벌이는 게임이지만 승자는 가장 많은 점수를 받은 한 명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승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은 엉뚱한 돌출행동을 벌이기도 해요. 정답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앞 사람을 방해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여성우대출발선이 생기고 문제를 맞춘 사람이 다음 출발선을 지정할 수 있게 된 뒤부터 변수는 더 늘어났고.

[쟁반 노래방]이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클래식 소나타와 같다면 [퀴즈! 속전속결! 꿇어∼yo!]는 재즈 즉흥연주같아요. 결코 스포츠 정신이 충만한 코너는 아니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시청자의 즐거움이니까 상관 없지요. 전 [퀴즈! 속전속결! 꿇어∼yo!]가 꽤 가능성이 있는 코너라고 생각해요. 이 정도면 실력과 체력과 우연이 뒤섞여 꽤 괜찮은 난장판 드라마를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거든요.

듀나 결국 보여지는 대상으로서의 게임이 어느 선까지 뻗어갈 수 있는가를 얼마나 충실히 탐구하느냐에 이 토크쇼/게임쇼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말이군요.

파프리카 그런 면에서 [전파견문록]도 예외는 아니지 않겠어요?

듀나 그렇긴 해요. 이 게임쇼가 성공적인 것도 단순한 승패 이상의 것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지금처럼 순수한 게임쇼가 아니었지요. [전파견문록]이라는 제목도 이 프로그램이 지금의 게임쇼가 아니었던 때 붙여졌던 제목이라 지금은 잘 어울리지 않는 듯 해요. 아무리 '어린이들의 맑고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엿본다'라는 의미를 구겨넣는다고 해도 말이에요.

파프리카 [전파견문록]도 두 개의 코너로 나뉘어져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일종의 전채라고 할 수 있는 [기상천외!! 상상초월!! 요건 몰랐지?!]는 한가지 사물에 대한 아이들의 대답 다섯 개를 맞추는 것이고, [퀴즈! 순수의 시대]는 어떤 단어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보고 그 단어를 맞추는 것입니다. [기상천외!! 상상초월!! 요건 몰랐지?!]는 이전 코너였던 [앙케트 눈높이 100]을 조금 바꾼 것인데, 빙빙도는 의자를 좁아지는 소파로 바꾸고 문제의 형식을 살짝 변형시킨 것을 제외하면 이전 것과 특별히 다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파견문록]이 내세우는 건 '동심'이라는 테마지만 그걸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이건 순전히 퀴즈의 핑계를 제공해주기 위한 것이니까요. 심지어 소문대로 문제를 작가들이 만든다고 해도 게임 자체의 '순수성'이 심하게 떨어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듀나 이 프로그램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야 할 코너는 역시 [퀴즈! 순수의 시대]입니다. 이 코너의 형식은 여러 면에서 주목할만 하죠.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건, 이 코너가 퀴즈의 정답이 무엇인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추리소설에 비교한다면 일종의 도서추리물이지요. 문제가 제시되면 곧 제목이 상대편과 시청자들에게 공개됩니다. 정답을 모르는 건 문제를 푸는 팀 뿐이지요.

시청자들이 정 원한다면 정답이 공개될 때마다 눈을 감고 그 뒤로는 화면 구석을 손가락 같은 걸로 가리면서 문제푸는 팀과 함께 그 도전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것도 재미라면 재미겠지요. 하지만 그건 [전파견문록]이 기대하는 재미는 아닙니다. 이 게임의 진짜 재미는 모르는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엉뚱한' 답을 알고있는 상태에서 게스트로 나온 연예인들이 갈팡질팡하는 걸 보며 즐기는 사디스틱한 쾌락에 있거든요.

파프리카 이 얄미운 사디즘은 게임의 형식에도 반영됩니다. 이 코너에서는 단순히 아이들이 낸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방식을 택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퀴즈를 푸는 사람들이 맞서야 하는 건 문제를 낸 아이들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낸 문제를 바탕으로 힌트를 내주는 상대편이지요. 물론 진행자 이경규 역시 그들의 적수입니다. 바로 그 점이 이 게임과 다른 스무 고개 퀴즈들의 차이점이지요. 보통 이런 경우 힌트를 주는 건 같은 편이어야 하니까요.

종종 전 게스트들이, 이 게임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성공적인 힌트는 결정적인 정보를 거짓없이 제공하면서도 듣는 사람들을 구체적인 다른 오답으로 유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힌트는 처음 하는 게이머들에겐 그렇게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이 프로그램에서는 주영훈과 조형기라는 고정 게스트의 기용과 진행자 이경규의 훼방작전으로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듀나 아까도 말했지만, 이 모든 건 "무엇이 가장 좋은 게임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됩니다. 무엇이 이상적인 게임일까요? 일반적인 게임이라면 양쪽 모두의 기술이 아주 뛰어나서 아슬아슬한 대결을 벌여야겠지요. 하지만 [전파견문록]에서 이상적인 게임이 나오려면 문제 푸는 쪽의 어리숙함이 필수적입니다. 시청자들은 게스트들이 문제를 못 풀 때 더 재미있어하지요.

파프리카 꼭 그런 건 아니지 않나요? 예를 들어 전 서민정과 김나운이 나왔던 에피소드가 참 재미있었거든요. 특히 두 사람이 상대편이 주는 아주 하찮은 힌트를 단번에 잡아내는 눈치실력을 발휘할 때는요. 그건 기술 뛰어난 사람들의 아슬아슬한 대결이 아닐까요?

듀나 서민정의 경우는 힌트를 잡아내고 주는 방식이 굉장히 특이해서 굉장히 빨리 정답을 찾아내도 게임을 잘하는 사람의 능숙함은 느껴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별나고 이상하게 보였지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원래 [전파견문록]의 문제를 쉽게 푸는 것 자체가 그렇게 정상은 아니잖아요. 모두 애들 시선에 맞추어져 있으니까요.

게다가 서민정이 속해있던 전파팀에는 형편없는 게이머인 태진아가 있었지요. 그 때문에 서민정이 어느 정도 정답으로 유도해도 태진아가 그걸 망쳐놓는 작은 드라마가 연출되기도 했어요.

게스트들이 너무 정상적으로 야무지면 그런 재미가 없어요. 잠시 조형기가 전파팀을 떠났을 때 김진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던 에피소드를 기억해요? 너무 수월하게 풀어서 따분했잖아요. 반대로 그 전에 임백천이 그 자리를 대신 했을 때는 너무 못해서 오히려 짜증이 났고요.

지금까지 주영훈과 조형기는 이 건조한 게임에 흥미로운 인간적인 드라마를 삽입해왔었죠. 주영훈이 얄미운 여우라면 조형기는 굼뜨고 느린 곰입니다. 그 때문에 주영훈의 순수팀이 조형기의 전파팀을 이기면 벅스 버니와 대피 덕의 만화와 같은 코믹한 효과를 냈고, 조형기의 전파팀이 그러다 이기면 감동적인(?) 역전의 드라마가 되었어요.

파프리카 새해 들어서는 전파팀도 잘하더라고요.

듀나 그래도 두 사람의 역할이 갑자기 바뀌거나 변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전파견문록]의 재미는 이 살짝 어긋난 게임의 규칙에 반영된 몇몇 개인의 개성에서 나오니까요. (0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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